2024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구정아 작가를 만나다
구정아 작가는 일상에 깃든 ‘영혼’을 찾아내 디지털 세계부터 공원에 이르는 다채로운 공간을 캔버스 삼아 조각, 페인팅, 드로잉, 텍스트, 영상, 설치 등의 매체로 가시화하고 때로는 비가시화한다. 누군가는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지나쳤을 흔한 재료를 가지고 공간에 시적으로 개입하고, 보이지 않는 향기, 온기, 소리에 중요한 역할을 부여하는 섬세한 작업으로 국제적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일상에서의 끊임없는 발견을 예술로 세심하게 풀어내 관객의 참여를 불러일으키고, 생각과 감각을 자극한다. 이번 2024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작가는 오픈 콜 형식으로 도시나 고향에 얽힌 향기, 냄새에 대한 기억을 수집한 “한국 향기 여행(Korean scent journey)을 통해 한국의 국가적 초상을 그려낸다.
추억이 향을 남긴다면 어떤 모습일까? 추억 속 향기는 즉각적으로 감정과 기억을 뒤섞어 단숨에 과거의 한순간이나 경험, 특정 장소와 사람을 떠올리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흔히 얘기하는 오감 중 가장 예민하고 추억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후각은 공기 속에서 시간의 흐름과 함께 옅어지다가 필연적으로 사라지는 미지의 영역이다. 누군가의 흘러간 시간 속에 밴 향을 완벽하게 추출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여정일 수도 있다. 마음에 새기고 간직한 개인의 기억은 시간이 흘러 변형되거나 희미해지기도 하는 까닭이다. 이렇듯 보이지 않고, 금세 달아나는 향을 포착하는 시도를 예술에 접목해 온 구정아의 신작이 2024 베니스 국제미술전 〈오도라마 시티(ODORAMA CITIES)〉에서 공개된다.
구정아 작가는 매일매일 흘러가고 사라지는 일상의 장면에서 시를 발견하고 평범한 사물에서는 상상의 신비를 포착하고 탐구해 왔다.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작품 세계 속 경계 너머를 지향하며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작가가 향에 주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6년 아트 나이트 런던에서 위임받아 채링 크로스(Charing Cross) 지하철 역사 안, 용도를 상실한 플랫폼에서 장소 특정적인 〈오도라마(ODORAMA)〉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당시 공간을 가득 채운 향은 동남아시아 원산지의 나무를 100년간 숙성시킨 침향이었다. 작가는 폐쇄 전 사람이 오가며 남긴 소음과 활기의 흔적이 한 데 먼지처럼 쌓여있던 지하 플랫폼을 다시 향으로 메워 사람들을 모여들게 만들고 새로운 드라마를 각색해 나갔다. 이 작품에는 향기를 의미하는 “오도 (Odor)”와 드라마의 “라마 (Rama)”를 더해 〈오도라마〉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보다 이른 2010년, 뉴욕 디아 아트 파운데이션(Dia Art Foundation)에 초대되어 디아가 보유한 미술관 3곳에서 선보인 〈CONSTELLATION CONGRESS(천체집합)〉 프로젝트를 위해, 작가는 도시의 조향사를 만났고, 그 결과 “Before the Rain” 향이 특별 제작되어 갤러리를 메우기도 했다. “섬세한 랩 (laboratory) 구조나 조향사와 나눈 대화 등도 이야기를 제작해 가는 아주 소중한 재료로 쓰였다”고 작가는 회고한다. 구정아가 만들어낸 우주 속에는 흐르는 물소리가 덧대져 하모니를 이루며, 그야말로 보고, 듣고, 향을 맡는 감각을 일깨우는 전시가 완성되었다.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모호하게 혼재시켜 관람객에게 익숙한 듯 낯선 체험을 선사한 작업 방식은 훗날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향을 주제로 인식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오도라마 작품으로 이어지는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2024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공간에 들어서면 농촌, 마을, 도시를 대표하는 향이 순식간에 관객을 베네치아에서 한국 어딘가로 이동시킨다. 이번 여정은 고향에 대한 잔향을 찾는 오픈 콜에 참여한 참가자가 공유한 북한의 향기 풍경까지도 아우르며, 여러 도시를 대표하는 향을 제작 설치해 한국의 집합적인 초상을 탐색한다. 어떤 향기는 자연을 묘사하고, 다른 사연에서는 역사와 경제, 산업의 모습을 읽게 한다. 개인적인 이야기 속에는 분단국가 역사에서 비롯된 가슴 아픈 사연도 접수되었다. 2024 베니스 비엔날레의 큰 주제인 “이방인은 어디에나(Foreigners Everywhere)”와 오도라마 시티가 어떻게 공명할지에 대한 질문을 작가에게 던졌다. “모든 곳에서 살고 일합니다(Lives & Works Everywhere)”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예술가는 “예술은 공생과 공동의 미래를 창조한다”며, “〈오도라마 시티 ODORAMA CITIES〉 프로젝트에 참여한 외국인들은 대한민국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주체자의 성격을 가진다”는 답을 건넸다.
구정아는 예술을 집단 지성과 삶의 자연스러운 활동이 융합한 것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맥락에서 조향사 외에도 철학가 에두아르 글리상과 협업 출판한 책을 전시하고, 시인, 무용가 나아가 스케이트 보더와도 협업한 작가의 행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집단 창작과 개인 활동에 접근 방법이 상당히 다른 작가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협업한 프로젝트 실행에 앞서 역할의 분배는 개개인이 다른 맥락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프로젝트 활성화 방법을 연구하게 하여 프로젝트를 더욱 풍요롭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집단지성이 형성되고 압축되면 더 재밌게 작업할 수 있어요. 개인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실행은 너무나 달라서 마치 나뭇가지들이 침묵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어두운 선과도 같죠”라고 작가는 덧붙인다.
이번 전시로 구정아 작가는 이설희, 야콥 파브라시우스 감독과 2020 부산비엔날레 이후로 두 번째 협업을 이루게 되었다. “향기와 냄새로 대한민국의 미래상을 그리는 방식과 전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오픈콜 방식을 통해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분들과 협업할 수 있다는 가능성 등이 신선하게 다가왔다”며 한국관을 대표하게 된 소회를 밝힌 작가는 “이제까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경험을 〈오도라마 시티 ODORAMA CITIES〉프로젝트를 통해 제공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한국관 공동예술감독 야콥 파브리우스는 2023년 4월 선임된 이래 “세 달 동안 한국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 해외로 이주한 한국인, 한국을 찾는 사람들에게서 향기에 대한 기억을 수집해 한국의 향기 여행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기획했다”며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아주 흥미로운 전시”라고 소개했다. 하루하루 기분 좋은 다이내믹을 실감하고 있다는 구정아 작가는 “이제까지 해온 나의 작업을 정밀하게 이해하고 있는 두 예술 감독과의 공동작업은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라며, “두 예술 감독의 안내로 방문할 수 있었던 숲이나 제작공정의 과정에서 스쳤던 현대화된 기술과 기업가의 리서치 공간, 작품의 제작을 논의하기 위해 방문한 사무실의 모습까지 새로운 영감을 선사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번 한국관 전시를 위해 향수 브랜드 논픽션(NONFICTION)과의 협업으로 마스터 조향사, 도미닉 로피옹(Dominique Ropion)과 함께 〈오도라마 시티 ODORAMA CITIES〉향을 개발했다. 구정아 작가는 앞서 오픈 콜을 통해 수집한 600여 편의 이야기에서 추출한 키워드를 세대별로 분류하고, 이와 관련된
상징적인 향료를 찾아 조합시켰다. 한국의 시대상에 얽힌 향의 기억으로 탄생한 16가지의 향, 그리고 전시
주제를 포괄하는 하나의 향수까지 총 17가지 향기의 여정을 전시장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한국의 도시, 고향에 관한 향수 어린 순간들을 떠올리게 해줄 “매혹적인 평온과 폭발적인 에너지”를 통해 이색적인 향기 체험이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비전문가에게도 미술의 매력을 알리고 보다 쉽게 접근하는 예술 여정의 나침반이 되고자 하는 아트드렁크 가이드북을 참고할 독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전시를 관람하면 좋을지 귀띔해 달라고 작가에게 요청했다. 나의 작품이 “모든 세대를 위한, 세대를 초월한 대화에 관한 것”이라던 작가는 “〈오도라마 시티 ODORAMA CITIES〉 프로젝트는 새로운 한국의 미래를 그려보는 고밀도 향기 여행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봄비에 피어난 야생화나 여름 소나기와 같은 일들은 비록 사라져도 우리에게 충분함을 선사하죠”라며 기억에 남는 다음의 구절을 읊었다.
In a way 어쩌면
It was fun 안개 속에서
Not to see mount Himalaya 히말라야를 보지 않았기에
In foggy rain 재미있었던 건지도 몰라요
작업의 과정에서 습득한 지식을 기억하고 노트/스케치하고, 다시 환기하며 반복하는 일들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구정아 작가. “한국 향기 여행(Korean scent journey)”을 통해 의도한 것은 어쩌면 평범한 일상에서 발견하는 경이로움과 풍요로움이 아니었을까. 아드리아해가 한눈에 보이는 경관을 가로막지 않도록 유리 소재로 지어진 곡면 건축물은 기억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장소로 거듭난다. 바다와 하늘 너머로 실려 이곳에 당도한 향이 그려낸 드라마 속에서 잠시 눈을 감고 온전히 각자의 그리운 추억 속으로 빠져들어 보자.
한국 미술과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세계 최대의 현대미술전인 베니스 비엔날레가 2024년 60회를 맞이했다. 미술계의 올림픽이라 여겨질 만큼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행사로 꼽히는 베니스 비엔날레는 크게 주요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으로 이뤄진 메인 전시와 60개 이상의 국가 파빌리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자르디니와 아르세날레 지역으로 나뉘어 펼쳐진다. 세계적인 국제미술전이 100주년을 맞이하던 1995년, 자르디니에 들어선 26번째 국가관으로 한국관을 건립하며, 한국 현대미술과 건축을 세계에 알리기 시작했다. 88 서울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있던 1986년, 이탈리아관 부속건물에 4평 남짓한 공간을 배정받아 ‘더부살이’ 전시를 꾸리며 처음 참가한 후 9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대표작 〈다다익선〉의 주역이기도 한 백남준 작가에게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건립은 오랜 염원이었다. 1993년, 독일 통일 후 첫 비엔날레에서 독일 국적 없는 작가 최초로 독일관 공동 대표로 나서서 화제를 모은 거장은 황금사자상을 수상한다. 베네치아시 당국과 미술계 관계자는 물론 한국 정부 고위 관계자에게도 필요성을 역설한 그는 한국관 건립 일등 공신이었다.
내년에 한국관 건립 3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역대 한국관 미술 전시에 참여한 작가 30여 명의 개별 작업을 총망라한 〈모든 섬은 산이다〉 특별전을 몰타 기사단 수도원에서 개최한다. 여기에 베니스 비엔날레 재단이 공식 지정한 병행전시 중 한국 작가 전시가 아래와 같이 예정되어 있다.
광주비엔날레 30주년 기념 아카이브 특별전 〈마당-우리가 되는 곳〉
유영국 〈무한 세계로의 여정〉
이성자 〈지구 저편으로〉
이배 〈달집태우기〉
더불어 갤러리 현대(신성희 개인전)와 다국적 작가공동체 나인드래곤헤즈(Nine Dragon Heads)까지 “노마딕 파티(Nomadic Party)”를 주제로 전시를 선보인다. 아울러 본전시에는 한국계 작가 4인이 이름을 올렸다.
김윤신, 여성 1세대 조각가
이강승, 퀴어 역사를 예술로 엮어온 작가
이쾌대, 한국 근대사의 비극을 딛고 예술혼을 꽃피운 거장
장우성, 한국화의 독자적 유형을 추구한 화백
한국 미술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반영하듯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는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한국 관련 프로그램이 기다리고 있으니 굵직굵직한 전시를 놓치지 않도록 동선을 미리 확인하자.
artdrunk SEOUL 2024 Spring Issue Features 기고를 위해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