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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외계인 Apr 23. 2022

베를린, 브랜드 디자이너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갑자기 찾아 온 두번째 이직기

참, 나도 내 인생을 예측할 수가 없다.

영어 알레르기가 극심하던 내가 베를린에서 벌써 5년째 영어로 일하며 밥 값하는 것도 신기할 따름이지만- 무엇보다 한국에서부터 지금까지 세 군데의 회사에서 정직원으로 일하면서 한 번도 같은 직업 타이틀을 가진 적이 없었다.

첫 직장 컨텐츠 기획자, 두 번째 비주얼 디자이너, 세 번째 브랜드 디자이너...


그리고 곧 이직할 새로운 네 번째 회사 역시 마찬가지가 되어버렸다.



(c) Freepik



나는 UX를 배운 적이 없다

요즘 유튜브를 찾아보면 '디자인 경력 없이 혹은 디자인 백그라운드 없이 UX 디자이너 되는 법'이라는 컨텐츠가 참 많다. 대부분 들여다보면 부트 캠프나 온라인 혹은 오프라인으로 UX 코스를 듣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새로운 경력을 쌓기 시작한 경우들이 많다.


내 주변을 보면 UX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부트 캠프 등을 통해 UX를 학습해서 그 쪽 분야에서 일을 시작하기 시작한 사람들. 혹은 처음에는 디지털 프로덕트 혹은 관련 업계에서 일을 하다가 자연스레 UX 쪽에 경험을 쌓아 일하게 된 사람들.


나는 굳이 따지자면 후자 쪽에 가까운 것 같다. 물론 온라인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요즘 UX 트렌드가 뭔지, 다른 디자이너들의 UX 방법론에 대해 배우기도 하고, 혹은 새로운 툴을 배우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부트 캠프에 참여한 적도 없고, 수업을 듣고 UX라는 것을 배운 쪽은 아니다. 전자상거래 혹은 디지털 비즈니스 쪽에서 10여 년간 일하며 배운 경험과 경력으로 자연스레 UX에 대해 학습이 된 쪽에 가깝다.


누군가 정말 깊은 UX에 대한 이론에 대해 나와 논하고자 한다면, 나는 아마도 좋은 상대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것을 이론이 아닌 경험으로 배운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 나와 같은 것은 아니다.




웹디자이너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이직한 S 군

이 친구는 이전 직장의 동료이다. 웹디자인 쪽으로 다년간의 경력을 가진 친구이지만, 이전 직장에서 우리 디자인 팀은 네 명의 디자이너가 모두 비주얼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달고 비슷한 업무를 공유했었다. 그러다가 2년 전, 회사의 웹 프로젝트 진행 방향에 불만이 많았던 S 군은 어느 날 사직을 통보하고 베를린의 유명한 온라인 UX 디자인 코스에 등록할 예정이라고 말해주었다. 이 친구가 말한 UX 디자인 코스는 베를린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곳 중 하나로 가격 역시 만만치가 않았고, 꽤 오랜 시간을 투자해 수업을 들어야 하는 긴-과정의 코스였다. 이 친구는 과감하게 회사를 그만두고 1년가량 코스를 끝내고 포트폴리오를 디벨럽하는데 투자했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이미 웹 디자인 쪽에서 다년간의 경험이 있는 이 친구가 굳이 왜 시간과 돈을 투자해가며 이 코스를 들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 친구 정도 경력이면 사실 조금 더 짧은 단기 UX 코스들을 듣거나, 혼자 독학하여 스스로 포트폴리오를 디벨럽해도 충분하기 때문에... 하지만 이 친구는 본인 나름의 가치관으로 뚝심 있게 해냈고, 결국 1년 후 이 친구는 베를린 탑 5안에 드는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스타트업에 시니어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입사했다.



UX 분야에서 15년간 일한 M 군

현재 디지털 에이전시에서 시니어 UX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M 군은 다년간 UX 컨설턴트로 일하며 경력을 쌓았고, 내 UX 멘토이다. M 군이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UX라는 전공이 없어서, 그쪽 분야를 전공하거나 공부한 것은 아니다. 다년간 UX 분야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맡으며 경험으로 UX를 익히고 공부한 케이스. 그래서 내가 맨 처음 UX 쪽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며 '유명한 OOO UX 코스를 들어볼까?'라고 이야기했을 때, 극구 반대하며 이론은 이미 인터넷에도 공부할 자료가 차고 넘치고, UX는 그렇게 단순히 단기간 코스를 들어서 공부를 끝낼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고 말했었다. 트렌드도 방법론도 계속 바뀌기 때문에 계속 업계 동향도 살피고, 공부를 끊임없이 해야 하는 분야임을 강조했었다. 이 친구의 조언을 받아들여 별도의 코스 없이 나는 스스로 부족한 부분의 UX 파트를 독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는 나에게는 그것이 맞는 길이었고,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단 일주일 만에 결판난 나의 이직기

사실 지금 회사에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 프로베이션 기간에 있었기 때문에 구직활동을 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종종 링크드 인으로 이직 제안을 받긴 했지만, 이제 회사 옮긴지 6개월 차에 막 접어드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았었다. 현 직장은 이전 직장보다 연봉도 높고, 회사 분위기는 릴랙스했으며, 무엇보다 완전 탄력근무제라 내 마음대로 시간을 조절해서 일할 수 있어서 꽤 만족스럽게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직활동을 하고 있는 상황 아니라도, 링크드 인은 항상 업계 관련 다양한 정보들이 올라오기 때문에 심심하면 한 번씩 들어가서 보곤 하는데- 채용 공고 추천 란에 포지션 하나가 눈에 띄었다. 온라인으로 다양한 브랜드의 의류, 화장품 등을 판매하는 회사에서 시니어 프로덕트 디자이너를 구한다는 것. 사실 패션 관련 회사에서 한 번쯤 일을 해보고 싶었고, 만약에 패션업계에서 일을 하게 된다면 크리에티브 부서보다는 IT나 UX/UI 쪽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회사를 옮긴지 6개월 정도 밖에 안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이미 준비된 이력서와 커버레터도 있었고, 포트폴리오도 재정비를 마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잡 공고를 읽어보니 내가 원하는 업무 방향과 맞았고, 주저 없이 바로 지원서를 제출했다.


그동안 내가 진행하던 프로젝트 내에서 UX를 다룬 적은 있지만, 사실 'UX 혹은 프로덕트 디자이너' 타이틀을 달고 풀타임으로 일을 한 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포지션 자체도 시니어였기 때문에 그다지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경험 삼아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을 한 것에 더 가까웠다.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


지원서를 제출하고 정확히 하루 만에 Talent manager에게 연락이 왔다. 1차 스크리닝 인터뷰를 보고 싶다고- 서로 가능한 가장 빠른 날짜가 그 주 금요일이었기 때문에 바로 금요일 오전을 골라 그렇게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첫 번째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금요일, 스크리닝 인터뷰 with Talent manager

사실 첫 번째 라운드 인터뷰는 질문이 뻔하다. 보통 인사과 매니저나 탤런트 매니저 혹은 리쿠루터가 30분 정도 기본적인 질문들을 묻는다. 자기소개, 경력, 지원 사유, 희망연봉, 시작 가능일 등. 취업과 이직을 통해 이제 이 정도의 질문들은 눈을 감고도 대답을 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도 출신의 탤런트 매니저는 본인 소개와 간단한 포지션 & 회사에 대한 소개를 마친 후, 나에게 기본적인 질문들을 몇 가지 묻기 시작했다. 인터뷰를 보던 그날 정말 '그분'이 오셨는지 유독 말이 술술 잘 나왔고, 인터뷰 분위기도 꽤나 좋게 흘러갔다. 그리고 성격 시원시원한 탤런트 매니저는 내 경력이 마음에 든다며 인터뷰 말미에 바로 다음 인터뷰 날짜를 잡아주었다.


재미있는 점은 다음 인터뷰 초대장을 보내며 함께 바로 디자인 과제를 보내주었다. (인터뷰 중 나는 이 과제에 대해 들은 바가 없었다.) 보통 디자인 과제를 하이어링 매니저 인터뷰 전에 보내주고 제출 후 마음에 들면 그다음 단계 인터뷰를 잡아주거나, 인터뷰를 먼저 하고 그 후에 마음에 들면 과제를 보내주거나 하는데, 이런 경우는 또 처음. 채용공고가 올라온 지 한 달 정도 된 걸 감안하면, 포지션에 맞는 사람을 찾는 게 어려워 빠르게 채용을 해야 하는 상황이거나 이미 거의 최종 단계까지 올라간 후보가 있어서 템포를 맞추기 위해 빠르게 진행하려고 하는 경우 - 둘 중의 하나로 짐작되었다.


과제 내용과 함께 이메일에는 디자인 과제는 Hirinig manager 인터뷰 전 혹은 Technical interview (다음 단계) 전에 보내달라는 것이다. 마침 주말이었고, 그래서 차라리 잘됐다 생각했다. 평일에 현재 회사의 업무를 마치고 다시 디자인 과제 하겠다고 컴퓨터와 씨름하느니, 차라리 주말에 바싹 파이팅 하자 마음먹었다.




주말, 디자인 과제 - Dashboard redesign

이 회사는 그룹 내에 여러 개의 패션 e-commerce 브랜드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모든 브랜드를 아우르는 하나의 셀러 센터(seller center)를 가지고 있다. 셀러 센터는 물건을 직접 구매하는 고객(customer)을 위한 사이트가 아니라 각 사이트에 물건을 판매하는 셀러(seller)들을 위한 공간이다. Amazon으로 친다면 고객들이 방문하는 Amazon 웹을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사실 소프트웨어 쪽이나 대시보드를 디자인은 해본 적이 없는지라 어찌 보면 전혀 새로운 분야의 디자인이었고, 주어진 시간은 10시간 내외. 그 사이에 디자인 과정, 와이어 프레임, high-fi 프로토타입을 보여줘야 하는 과제였다. 그 말인즉슨 디자인 과정뿐 아니라 시각적 완성도도 보여줘야 하고, 그 와중에 각 리디자인 설계 이유를 정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시간은 짧고 해야 할 것은 많았다.


전혀 처음 해보는 디자인 쪽이라 급하게 대시보드 디자인과 셀러 센터 디자인 등에 대해 리서치를 했고, 관련 UX 리서치나 디자인에 대해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그 후에는 현 디자인에서 재설계 해야 할 포인트를 파악하고 각각에 맞게 디자인을 시작했다.


보통 와이어 프레임 단계는 어떻게 설계할지가 결정되면 정말 심플하고 빠르게 그려나가는데, 아직 내가 인터뷰를 봐야 할 사람들과 일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정확한 전달을 위해 low-fi가 아닌 mid-fi 정도의 와이어 프레임을 설계했고, 리서치를 근거해 high-fi를 위한 구체적인 UI를 잡아나갔다.


과제를 진행하는 것이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무언가 전에 접해보지 못한 주제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하고, 디자인을 완성했을 때 느껴지는 희열과 뿌듯함이랄까... 그렇게 바로 월요일 아침 내 디자인 과제는 전송되었다.




화요일, hiring manager 인터뷰 with Head of product

과제를 제출하고 바로 다음날 예정된 하이어링 매니저와의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하이어링 매니저는 누군가를 그 포지션에 고용하는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 한마디로 미래의 보스. 이 포지션의 하이어링 매니저는 프로덕트 팀 전체를 이끌고 있는 Head of prouct이다. 1시간 동안 잡힌 인터뷰에서 기본적인 질문들과 함께 조금 더 심도 있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보통 프로덕트 헤드나 매니저들은 직접적인 디자인 테크닉에 관련된 질문보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 그것을 대하는 자세, 프로덕트 디자인에 대한 전반적인 경력에 대한 질문 등을 묻는다. 디자인이나 특별히 한 프로젝트에 대해 기술적인 부분을 묻는다기보다는 전반적인 경력이나 프로덕트에 접근 혹은 일하는 방식에 대해 묻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러한 인터뷰 질문들은 이미 어느 정도 예상이 되는 질문들도 있지만, 사람이나 포지션에 따라 어떤 질문을 할지 예측할 수가 없음으로 질문에 따라 민첩하고 센스 있게 대답하는 순발력이 필요하다.


보통 나의 경우는 인터뷰 담당자와의 면접 분위기에 많이 좌우되는 편이다. 상대방이 소위 압박면접 분위기의 고자세로 나오면 미리 준비한 대답이나 이미 알고 있는 것도 버벅 버벅. 하지만 이번 인터뷰 같은 경우는 분위기가 제법 화기애애했다. 물론 중간중간 날카로운 질문들이 날아왔지만, 대체적으로 인터뷰 분위기가 상당히 부드러웠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름 잘 봤다는 인상이 들었지만- 몇몇 질문에 대해 생각보다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인터뷰를 마친 후 정확히 2시간 만에 탤런트 매니저에게 다음 인터뷰 스케줄을 잡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무려 90분가량의 마지막 관문을 맞이하게 되었다.




수요일, Technical interview with Product manager & Product designer

그리고 Team interview with Soft engineer lead

마지막 관문이자 가장 큰 관문- 바로 테크니컬 인터뷰다. 보통은 팀 멤버나 이해관계자 (Stakeholders) 즉, 해당 포지션에 대해 가장 잘 알고, 가장 함께 일을 많이 하게 될 멤버들과 함께 보는 인터뷰이다. 당연히 질문 수준은 더 심도 있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


70분간 이어진 테크니컬 인터뷰에서는 각자 서로 자기소개와 함께 포지션과 회사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 후, 바로 디자인 포트폴리오 리뷰 - 기존 작업했던 포트폴리오 중에 1개 혹은 3개를 꼽아 리뷰하며 질의응답을 한다 - 혹은 제출한 디자인 과제를 프레젠테이션 하며 질의응답을 받는 형식이다. 이번 인터뷰의 경우 제출한 디자인 과제에 대해 내가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 가령 왜 이렇게 재설계를 했고, 왜 그러한 가설을 세웠으며, 이로 인한 기대효과는 무엇인지 등등 - 중간중간 프로덕트 매니저와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질문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다행히 분위기가 압박 면접이라기보다는 꽤 화기애애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고, 나도 그에 힘입어 상대적으로 긴장하지 않고 편안하게 막힘없이 질문에 답을 해나갈 수 있었다.


70분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30분간의 휴식 후 바로 다음 인터뷰가 이어졌다. 소프트 엔지니어 리드와 진행되는 30분간의 팀 인터뷰. 아무래도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포지션 특성상 소프트 엔지니어와의 팀워크는 절대적이기에 서로 알아가라는 의미에서 잡힌 인터뷰이다. 서로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고 각자 궁금한 것을 묻는, 인터뷰라기보다는 서로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지 체크해 보는 미팅에 더 가까운 인터뷰였다.




목요일, 잡 오퍼 콜 from Talent manager

그동안 인터뷰를 보면 탤런트 매니저가 바로바로 연락을 주었기 때문에 만약에 합격을 했다면 목요일 정도에는 연락이 올 것이라 생각했다. 십 년보다 더 길게 느껴졌던 하루.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업무를 마치는 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연락은 오지 않았다. 결정하는 데에 시간이 조금 더 걸리거나 아니면 잘되지 않았나 보다 하고 생각할 때쯤- 전화가 울렸다.


그리고 들려온 반가운 소식 '오퍼'!

탤런트 매니저 왈, 프로덕트 매니저와 그 외 팀원들이 내 디자인 접근 방법과 프로세스가 마음에 들었다 말하며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아 프로덕트 헤드와 상의한 후 나를 채용하기로 했다고! 즐거움에 들떠 한참 탤런트 매니저와 통화를 하고, 계약서 작성을 위한 개인 정보(여권이나 비자 카피본)을 보내주면 계약 담당자가 계약서 작성을 해서 연락을 줄 것이라고 했다.




금요일, 최종 계약서 from Head of administration

모든 것은 정말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 최종 계약서는 점심때쯤 도착했다. 중요한 계약서 컨디션 - 연봉, 휴가 일수 등등 - 은 이미 조율이 끝난 상태라 사실 계약서에 그냥 사인을 해도 되지만, 내 쪽에서 명확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질문 이메일을 보냈고 모든 답변과 함께 사인을 할 수 있는 최종 계약서가 금요일 저녁에 도착했다.


코로나 이후로 대부분의 회사가 직접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 않고, DocuSign 등과 같은 온라인 계약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사인을 한다. 보통 내가 먼저 사인을 해서 보내면, 회사 쪽 대표(보통은 회사 founder나 CEO)가 사인을 해 최종 사인이 된 계약서가 PDF로 전달되는 방식이다.


사인을 마치고 계약서를 보냈다. 이제 정말 끝!




월요일, 최종 사인된 계약서 그리고 온 보딩

주말 내에 회사 대표가 사인을 했고, 월요일 아침 어드민 헤드에게 양쪽 모두 사인을 마친 최종 계약서가 날라왔다. 그리고 온 보딩의 시작. 물론 본격적인 온 보딩은 보통 회사 첫 출근하기 2-3일 전 혹은 첫 출근날부터 시작된다. 회사에 내가 제출해야할 서류들 - 세금 번호, 사회보장 번호 등등 - 을 안내받고, 제공받고 싶은 소프트 웨어와 하드 웨어의 선택이 이루어진다.


새로 들어갈 회사의 경우 맥북프로와 띵크 패드 사이에 선택을 할 수 있었고, 나는 맥북프로를 선택했다. 말로만 듣던 M1 맥북프로를 드디어 써보는! 그리고 홈 오피스와 온 사이트가 선택사항이기 때문에 집에 제대로 된 근무환경을 세팅할 수 있는 500유로가량의 지원 비용을 받게 되었다. 예를 들어 책상이나 의자, 헤드셋이나 마우스 등 크고 작은 장비들 중 내가 필요하고 원하는 것을 골라 500유로 한도 내에서 구입할 수 있는 것. 그 외에도 회사 직원으로써 어떠한 혜택들을 받을 수 있는지 간단한 안내가 담긴 이메일을 받았고, 입사를 축하하며 본격적인 온 보딩은 첫 근무일 3일 전에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일반적인 채용 과정 hiring process

포지션에 상관없이 보통 베를린에서 채용 과정은 첫 인터뷰부터 최종 오퍼를 받기까지 적어도 3주, 길게는 한 달 이상 걸린다. (독일 대기업의 경우 3개월까지도 걸리는 경우를 보았었다.) 보통 인터뷰를 보면 그다음 단계 안내 혹은 인터뷰 확정까지 일주일 정도가 소요된다. 최종 단계까지 인터뷰를 마치고 오퍼를 받는데 길면 3주까지도 소요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여름휴가 시즌이나 이스터, 크리스마스 등 홀리데이 시즌 중간에 채용 과정이 진행된다면 이 채용 과정 타임라인은 더욱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


일반적인 채용 과정과 나의 이직기는 이전 포스팅을 참고.


베를린, 디자이너 취업 절차 https://brunch.co.kr/@earthstranger/11


베를린, 디자이너 이직하기 https://brunch.co.kr/@earthstranger/19


이번에 이직한 포지션의 경우 회사 입장에서도 빨리 사람을 고용해야 하는 입장이었고, 나 역시 이번 달 (3월) 안에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 못하면, 현 회사와의 notice period 때문에 5월이 아닌 6월부터 새 회사로 출근이 가능하다는 점을 초반부터 분명히 해왔다. 한마디로 나를 빨리 채용하고 싶으면 최대한 빠르게 채용 과정 및 계약을 진행하여 3월 안에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점을 못 밖은 것.


덕분에 보통 한 달 넘게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지칠 때쯤 끝나는 기나긴 채용 과정 대신 조금 intensive 하긴 했지만 단 일주일 만에 모든 채용 과정을 끝내고 계약서를 받아 마무리할 수 있었다.






Why 프로덕트 디자이너?

사실 프로덕트 디자인 분야에 오랜 시간 열정을 불태우신 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꼭 '프로덕트 디자인' 분야를 원해서 이직을 한 것은 아니다. 물론 나는 디지털 프로덕트를 만들고, 사용자를 분석하는 UX 분야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꼭 그 분야, 그 직업 타이틀이라 이직을 결심한 것은 아니다. 늘 그렇듯 '그때' 내가 '흥미를 느끼는 그것'을 따라 결정을 한 것뿐이다.


내가 직업을 결정하는 이유는 항상 복합적이다. 이번에도 그렇다. 단순히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서 이직을 한 것이 아니라, 그 '회사'에서 내가 하는 그 '일'이 마음에 들기 때문에 이직을 하는 것이다.


이번에 이직하는 회사의 경우 결정을 하게 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글로벌 회사 그리고 글로벌 마켓

회사가 글로벌해도 보통 내가 하는 일은 로컬에 한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내가 글로벌 기업인 애플에서 일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기업은 전 세계에 퍼져있는 글로벌한 회사이지만, 보통 내가 독일에 있는 애플에서 일을 한다면 독일 혹은 유럽 시장에 관련된 일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이전 두 회사들도 베를린에 본사가 있는 회사들이었고, 다른 유럽 내 마켓에서 판매를 했지만, 역시 유럽 시장에 한정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회사의 경우 우리 부서에서 다루는 프로젝트 자체가 전 마켓을 아우르기 때문에 독일에서 일을 하지만 아시아, 남미, 오세아니아 등 다른 대륙의 마켓까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이미 한국 시장과 유럽 시장의 경험이 있는 나로선, 새로운 마켓의 경험을 쌓는 새로운 도전이 마음을 설레게 하고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패션

평소 패션이나 라이프스타일에 관심이 많았다. 그렇다고 패션 용어나 이론을 줄줄 외우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내가 원하는 스타일대로 옷을 입고, 내 공간을 내 스타일대로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항상 한 번쯤은 패션 회사에서 일을 해보면 재미있겠다 생각했었다. 그 분야의 비즈니스는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식으로 작용하고, 어떻게 흘러가는지 궁금했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또 다른 비즈니스 분야에 대한 이해와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탄력 근무

코로나 시국이 2년쯤 지나다 보니 베를린의 대부분 회사에서 재택근무에서 다시 오피스로의 복귀, 혹은 하이브리드 - 재택과 온 사이트 근무가 혼합된 형태. 보통 일주일에 2-3번 정도 요일을 정해 오피스에서 일을 하고, 나머지는 재택근무를 하는 형태-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재택근무와 완벽한 탄력 시간제 근무에 익숙해져 버린 나는 다시 오피스로의 복귀가 그리 반갑지 않았다. 오피스에 무조건 가기 싫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의지가 아닌 회사의 '반 강요'에 의해 돌아가는 것이 싫다는 것이다.


새로운 회사는 완벽한 탄력 근무제. 9 to 5가 없다. 그저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일하고 데드라인만 맞추면 아무도 나의 근무 시간을 추적하지 않는다. 그리고 재택근무와 원격근무도 자유롭다. 원하면 출근, 원하면 재택, 원하면 다른 나라에서도 근무가 가능하다. (물론 독일 외의 나라에서 근무하는 것은 보험, 세금 등의 문제가 있음으로 회사에 보고가 필요하다.)






새로운 회사로의 첫 출근을 앞두고, 몇 주간의 짧은 휴식기를 갖고 있다.

사실 어느 회사에 입사해서 이렇게 단기간에 이직을 해본 적은 처음이라 아직도 조금은 얼떨떨하다.


잠깐의 휴식을 즐기면서 또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묵혀두었던 UX 책도 다시 꺼내보고 주변에서 디지털 프로덕트나 디자인에 관련된 책들도 추천을 받아 읽고 있다.


이 새로운 도전이 또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또 다른 도전에 설레는 기분 좋은 기다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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