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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뭇별중한별 Jan 10. 2022

"기다려!"라고 말하자

“기다려!”


누나의 말이 떨어지자 짱구 놈은 마치 다른 개가 된 듯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쩔쩔맸다. 

어릴 때 내가 키웠던 짱구라는 이름의 이 개는 2살이 되자 덩치가 나만해져서는 맨날 밥그릇을 뺏듯이 가져가 처먹는 것도 모자라서 내가 사과라도 물고 갈라치면 올라타서 뺏어먹기도 일쑤였던 아주 골치 아픈 놈이었다. 그랬던 그놈을 우리집에 놀러 온 사촌누나가 한 시간 만에 저렇게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놈은 누나가 들고 흔드는 고기 조각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헥헥 대는 입에서는 군침을 줄줄 흘리면서도 달려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 놈이 나를 그토록 괴롭히던 놈이 맞나? 어쩜 저렇게 되지? 하면서 나는 누나와 짱구를 한참 동안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먹어!”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짱구 놈이 날듯이 덤벼들어 고기를 삼키는 모습을 보며  누나는 보란 듯이 나에게 말했다.


“이렇게 길들이면 되는 거야. 

기다려! 

이 한 마디면 된다고”




요새는 내가 어릴 때보다 개를 키우는 것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반려동물의 개념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관련 시장과 산업도 커지고, 성숙한 반려문화도 자리를 잡아가는 세상이다. 그러면서 여러 진통도 생기고 있음을  여러 매체를 통해 느낄 수 있다. 

“개는 훌륭하다”라는 프로그램도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점들을 보여주고, 강형욱이라는 해결사가 이를 바로잡아 주면서 생기는 여러 에피소드와 지식들을 소개하는 좋은 프로그램이라 생각한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 참으로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만나게 되는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문제 케이스가 반려동물을 의인화하는데서 나타나는 문제라는  점이다.


아무리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상대라고 할지라도 개는 사람이 될 수 없다. 개의 본능이 따로 있고 타고난 욕구가 사람과 다르며 자극을 통해 받는 스트레스도 다르다. 하지만 문제적 견주들은 본인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면서 개와 더불어 살아가려고 한다. 개를 사람 취급해주는 게 가장 좋은 것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에서만 생각하는 것이다. 개가 그것을 원하고 좋아하는지는 관심이 없고…

개가 어떤 것을 더 좋아할까? 주인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것? 아니면 주인과 동등한 사람 노릇을 하는 것?




생 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에서 관계란 길들이고 길들여지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서로 길들이고 길들여진다는 것은 한쪽의 일방적이 아닌 동시 작용인 것인데, 길들이는 것은 능동적이며 자의적이지만, 길들여지는 것은 수동적이고 타의적인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어서인지 현대의 우리는 길들이기 자체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길들이고 있는 것인지 길들여진 것인지를 분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반려동물에게 길들여져 스스로를 ‘집사’의 역할에 충실하지는 않은가? 농담이 진담이 되는 순간처럼 말이다.


우리를 구성하는 몸과 정신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스마트폰이 없이는 잠시도 기다리지를 못하고, 커피가 마시고 싶으면 ‘아아를 수혈’한다. 인내라는 것은 구시대적 개념이고, 무절제는 스스로를 위한 위로가 된다. 순간의 쾌락이 최고의 가치가 되고, 그것을 방해하는 자가 나타나면 극도로 화가 나서 폭력도 서슴없이 행사하기도 한다. 

이 것들은 사실 모두 몸에게 길들여진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조금만 정신차렸으면 그렇게 살지 않았을텐데라고 나중에 후회하는 것이다. 이렇듯 몸의 욕구에 저항하지 못하고 길들여진대로 사는 삶의 종착점은 낭비, 탐욕, 나태, 흉폭 등의 비참한 말로뿐이다. 




“기다려!”


우리는 이제 길들이기를 시작해야 한다. 몸이 이끄는 삶에서 벗어나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말이다.

몸의 요구를 의식적으로 통제하는 것으로 길들이기를 시작해보자. 배고픔을 느낄 때 5분만 기다렸다가 먹고, 커피가 마시고 싶으면 1시간을 참았다가 마신다. 스마트폰 없이 지루함을 달래보고, 몸이 거부하는 다른 것(운동 등)을 의식적으로 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내 몸은 내 것이고 주인은 나야! 나는 내가 더 긍정적이고 훌륭하게 되길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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