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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NDWANA Aug 12. 2019

낭만고양이

[수고양이 무르의 인생관] 호프만



아주 특이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호프만이 독자에게 무엇을 말하려했는지도 혼란스럽다. 전혀 다른 두개의 이야기가 있고 그 두가지의 이야기는 마지막에 가서야 하나의 고리로 연결된다. 그러나 그 고리가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따로 따로 썼어도 되었을 법한 두개의 소설을 하나로 만들기 위한 형식상의 장치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   



굳이 그 의미를 부여하자면 소설속에서 이성적이고 말과 행동이 똑부러지는 멋진 고양이인 무르의 이야기와 우유부단하고 혼란스러운 악장인 크라이슬러를 둘러싼 정신없는 이야기는 현실에서의 호프만과 호프만이 귀여워했다는 고양이를 투영한 것이므로 호프만 스스로 복잡하게 얽힌 자신의 문제와, 단순하게 보이지만 영악한 고양이를 대비시키는 소설적 효과를 위해서였다고 볼 수 있겠다. 그것이 호프만이 굳이 두개의 이야기를 단락별로 번갈아 배치한 큰 이유일것이다. 동물의 이야기는 명료하고 평면적 캐릭터가 등장하는 반면에 인간의 이야기는 이랬다가 저랬다가하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인간관계의 사슬들이 이리저리 얽히고 있다. 책을 읽어내려가는 독자는 무르의 이야기를 매우 흥미있게 읽는 반면에 몇 페이지가 지나면 다시 나타나는 궁정과 왕자와 공주와 수도원의 얽힌 이야기에 짜증을 낼 정도의 심리상태가 된다. 



인간의 이야기는 온갖 악다구니가 쳇바퀴 도는듯 벌어지는 것이라 읽으나 마나한 것이고 이 소설의 주인공인 낭만고양이 무르의 고고한 자존심과 열렬하고 로맨틱한 사랑, 굳건한 우정과 경세적인 인생관을 음미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마지막에 가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호프만이 의도한 것이었다면 그는 매우 짓궂은 작가이다. 



많은 풍자의 장치가 있었다고 하지만 지구를 반바퀴 날아와 번역이 되는 순간 언어와 풍습의 상이함으로 인해 언어유희와 위트의 기발함은 대부분 날아가고 태풍맞은 감나무 처럼 별볼일 없이 되는 것은 이 소설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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