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에게 결핍된 것

[관촌수필] 이문구

by GONDW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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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로는 훌륭한 문학작품이 나올 수 없다"는 당시 세인들의 편견을 한 순간에 잠재운 대문호가 괴테이다.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그리고 그의 필생의 대역작 '파우스트'를 통하여 "독일어를 완성시켰다"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유려하고 아름다운 문체를 만들어내었던 것이다.


이같이 어떤 나라나 민족의 언어가 훌륭한 문학작품으로 화할때 그 언어는 화려하게 빛이 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정서는 그 언어만이 제대로 표현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번역된 외국고전문학은 많지만 우리가 그 고전의 참맛을 느끼기 어려운 이유가 그들의 정서와 그들의 언어를 우리의 정서와 언어로 완벽하게 치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어를 아름답게 만들고 한국어를 사용하는 우리들의 정서를 잘 나타내어 한국어에 대한 자부심과 감동을 선물한 문학작품은 그동안 있었을까?


그리고 있다면 과연 어느 작가의 어떤 작품이 될 것인가?


필자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위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이문구의 '관촌수필'을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문구의 언어들은 토속적이고 생활적이다. 장터에서 만난, 말 잘하기로 소문난 입담꾼이 막걸리라도 한 사발 들이키고 풀어내는 사설처럼 막힘이 없고 유려하며 어느새 그의 이야기에 신명이 나고 리듬감조차 느껴지는 것이다. 처음 들어보는 충청도 사투리가 툭툭 튀어나와도 우리는 얼추 그 뜻을 유추한다. 글을 읽다가 멈추고 국어사전을 펴들 틈을 주지 않는다. 글을 읽는 재미에, 그 리듬감에, 그냥 그대로 계속 읽어나가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있다.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듯이 한 문단을 쭈욱 읽어내고 나서야 “캬아~”하는 감탄사와 더불어 글맛의 짜릿함에 취한다.


굴곡 많았던 근현대사를 관통하면서 유서 깊은 마을 관촌의 해체는 반상서열의 해체임과 동시에 우리만이 가지고 있던 인간미 넘치는 공동체와 토속적인 정서의 해체였다.


유년기에 같이 뒷산에서 뒹굴던 동네 친구들과, 건넛방에서 이불솜을 타며 두런두런 말을 나누던 아주머니들, 관촌에 얽힌 많은 사람들의 생로병사, 희로애락이 전쟁, 산업화, 농촌 공동체의 붕괴와 더불어 작가의 기억속에만 남겨진 채 그 주인공들은 뿔뿔히 흩어져버린 상황에서 작가는 그들을 추억한다.


많은 기성세대들이 어릴 적 추억의 요람이었던 농촌의 고향을 다시 찾지만 옛것은 남아있지 않다. 물동이, 호미자루 내던지고 말만 들은 서울로 이쁜이도 금순이도 단봇짐을 쌌던 세대들이 옛 추억에 다시 고향을 찾았을 때는 새마을운동으로 인해 농촌마저도 예전의 그 공동체의 모습은 아니었다. 더 이상 공동체와 자신이 먹을 것을 생산하는 농사가 아닌, 환금을 위해 농사를 짓게 된 사람들의 모습에서 예전의 공동체의 모습은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문구는 생전에 스스로 “옛것을 좋아하고 옛것을 찾기를 원하는 사람”이라고 줄곧 말하던 작가였다. 지금은 명불허전이 되고 ‘이문구 소설어 사전’(민충환:2001년)까지 나온 우리문학계의 가장 빛나는 보석같은 작품이 된 ‘관촌수필’이지만 이문구의 생애는 극히 검소했다.


옛것에 집착하다니 보수적이나 반동적인 작가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그는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가 6.25때 죽음을 맞이함으로 인해 풍비박산이 난 빨갱이 딱지가 붙은 집안 출신이었다. 그리고 등단 이후에는 민중문학과 문학의 사회성을 역설한 무크지 - ‘실천문학’의 대표로써 80년대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이문구의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구수한 말들을 읽어나가고 있노라면 어느덧 우리는 지난 세월을 마주하게 되고 따뜻함과 더불어 애상(哀想)에 잠기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 결핍된 것은 무엇인지, 우리가 걸어온 길은 어떠하였는지, 과거의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이 되어있는지, 그들도 우리처럼 종종 과거를 추억하며 “그때가 좋았지”라며 빈 웃음을 짓고 있을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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