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유태인으로써는 지옥에 다름아닌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 중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로고테라피이다. 즉 '생에의 의지'인 것이다. 생에의 의지는 단순히 살아남는 의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일생을 바쳐 만들어가야할 목표이고 그것을 위해 생은 바쳐져야 한다는 것이다. 낙천적으로 보일 수는 있겠지만 그런 의지를 가진 사람에게 운도 따라오는 법이다. 빅터프랭클이 의사로써 일생을 바칠 일생의 과업이 있었기 때문에 극한의 상황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기적은 일어났던 것이다.
수용소의 정치범들에게 가장 고통을 주는 것은 채찍도 아니고 배고픔도 아닌 자신이 언제 풀려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기약없는 기다림이긴 하지만 언젠가는 풀려난다는 확신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한다면 말그대로 호랑이한테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처럼 28명중에 한사람만이 살아온다는 아우슈비츠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저자처럼 죽음과 삶을 가르는 많은 분기점을 극복하는 운도 따라줘야 하는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런 운이 따라준다고 할지라도 희망을 포기하는 순간 가혹한 환경을 버티던 육체마저 주저앉게 되고 마는 것이다.
병원에서도 극한 죽음의 고비를 넘기는 것은 의술이나 간호가 아니라 결국 환자의 의지다. 항암치료의 고통을 이겨내는 의지만이 암세포를 죽일 수 있다. 고통에 대한 굴복이나 미래에 대한 체념은 자신의 생을 포기하는 것이고 의지가 꺽인 환자는 곧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분명 인간의 의지와 신체 사이에는 모종의 관계가 있으며 그것은 우리의 무의식 안에서 서로 매개하고 있다. 무의식은 인간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격은 환경과 욕망이 축적된 것이다. 그 무의식 속에 있는 인간의 욕망은 모종의 책임감으로 나타난다.
인생에 있어서 실패와 좌절은 본인만의 것이 아니다. 실패한 후에도 남은 인생을 살아나가야 하며 거기엔 또 다시 새로운 목표가 세워진다. 꼭 성공한 인생이 아니라도 그런 도전으로 인해 인생은 다채롭게 되는 것이며 그토록 찾아헤매었던 행복이나 기적의 순간은 뜻하지 않게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