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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NDWANA Aug 02. 2019

죽음이라는 화두

[죽음의 한 연구] 박상륭



읽기 어렵다는 박상륭의 이 소설의 힌트는 제목에 나와있다. 말그대로 죽음에 대한 연구이자 탐구이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주인공 '나'의 행적을 면밀히 보면 그나마 이 소설을 읽기가 조금 수월할지도 모르겠다. 소설 첫 부분에 행려승의 갑작스런 죽음을 접한 주인공은 죽음에 대한 호기심이 싹튼다. 일단 살인을 먼저 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일면을 보게된다. 이후 어떤 한 노승까지 죽이게 되고 그 노승이 죽은 줄 알았던 자신의 스승임을 알게 된다. 그로부터 화두격인 해골을 받게 됨으로써 주인공은 죽음에 대한 화두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유리라면 마을에서 수도부, 장로의 손녀와 정을 통하게 되면서 주인공은 점점 더 죽음에 가까이 가게 된다. 주인공은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지만 그로부터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죽음을 덤덤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죽음에 대한 탐구의 종지부를 찍는다.  



주인공은 겉보기엔 스님이고 소설의 내용은 불교, 기독교, 주역, 기타 여러가지 종교과 사상의 내용이 현란하게 펼쳐지지만  주인공은 스님과는 거리가 멀다. 죽음이라는 화두를 가진 구도자일 뿐이다. 그리고 죽음은 모든 것과 절연시키는 것이고 인간에게 있어서 근본적인 공포이다. 모든 종교는 죽음을 향하여 그 가지가 뻗어져 있으며 죽음 너머의 해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즉 죽음이라는 공포를 넘어서야만 해탈이나 구원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주인공이 죽기전에 반드시 해야할 것은 죽음의 공포를 넘어서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화두를 가진 구도자적인 입장에서는 필연이다. 죽음의 공포를 넘어선다는 것은 현세에서의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말한다. 조르쥬 바타이유의 말대로 에로티시즘은 공포를 무릅쓰는 역설적 쾌감이다. 수도부와, 목사의 딸, 장로의 손녀와의 질펀한 정사는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죽음의 예행연습이다.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역겹고 왠지모를 구차함으로 가득한 유리라는 현세에서 주인공은 광야의 예수처럼 40일간의 구도를 마치고 죽음에 임하게 된다.
 


죽음은 개인적인 의미로 해탈이나 구원과 통하는 화이트홀의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남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어떤 계시적 역할도 하는 것이다. 예수의 죽음이 그러하였고 많은 희생적인 죽음이 그러하였다. 죽음의 너머를 결코 알 수 없는 현세에서는 죽음의 피안을 조금이라도 엿보기 위해 죽은 자들을 현세에 다시 살려내려고 한다. 주인공이 죽음을 앞두고 동굴에서 벌이는 장로의 손녀와의 3일간의 교합은 요나가 고래뱃속에서 3일만에 살아 돌아오는 과정이고, 예수가 무덤에서 3일만에 부활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장로의 손녀는 씨를 잉태함으로써 주인공의 죽음의 제의의 흔적은 유리에 남겨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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