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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May 07. 2020

너의 에너지는 너를 위해 써

세상엔 완벽한 조직은 없어...절대 사람을 피해 이직하지마

선배 얼굴 한번 봐야죠

며칠 전 스치듯 바람결에 날아온 후배의 안부인사. 미세하게 떨리는 후배의 목소리는 나로 하여금 그의 말을 흘러가게 놔둘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게 하여 우린 지금 이 자리에 마주 앉아있다.


요즘 내 주머니 사정을 알았는지, 후배는 순댓국을 먹자고 했고 소위 '맛집'이라며 내게 위치를 공유해줬다.

출처: 구글맵(화목순대국)

광화문 일대를 워낙 잘 안다고 생각했던 자만감 때문에... 난 주변을 헤매다 10분이 늦어서야 순댓국집에 도착할 수 있었고, 후배는 미리 와서 눈치가 보였는지 내것까지 이미 주문을 해놓은 상태였다. 다행히 도착하자마자 순댓국이 나왔다.

무슨 일 있어?

앉자마자 무슨 일이 있는지부터 대뜸 꺼냈다.


"여기 순댓국집이 맛집이에요. 늦게 오면 기다려야 해요"라며 후배는 딴청을 피웠다.


그랬다. 11시 40분 이르다면 이른 점심시간이었으나 이미 좌석은 꽉 차 있었고, 작은 문 밖으로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순댓국을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미안... 일단 먹자. 여기 분위기를 보니 오래 대화를 나누며 느긋하게 먹는 건 민폐가 될 수 있겠다"


사장님이 테이블 회전을 위해 눈치를 주는 건 아니었지만, 밖에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보니 안 그래도 요새 경기가 어려운데 테이블 회전을 빨리 해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가볍게 저녁 반주가 하고 싶다면 이 곳을 추천한다. 저녁 6시쯤 선배와 함께 간단히 반주를 할 겸 들렀는데 느긋하게 대화를 나누며 소주에 순댓국을 안주로 먹으니 참 좋았다. 식당이 주는 나름의 운치도 그날의 분위기를 한층 더해줬다.
순댓국

초기 1920년대와 30년대 순댓국은 돼지 삶은 물에 내장을 넣고 기호에 따라 우거지와 함께 끓인 국이었다고 한다. 순댓국에 순대가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붕어빵에 붕어가 안 들어간 거처럼 말이다.

순댓국이라 하는 것은 돼지 삶은 물에 기름을 건저 버리고 우거지를 넣어 끓이면 우거지가 부드럽고 맛이 좋다. 그러나 이 국물에 그냥 내장을 썰어 넣고 젓국을 처서 먹는 것은 술집에서 하는 상풍이다. 이 국물에다가 된장을 걸러 붓고 무나 우거지와 콩나물, 소고기까지 넣고 끌여야 맛이 좋다. 이 국은 많이 먹으면 설사가 난다. (1931년 10월 3일 자 동아일보 中)
출처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동아일보 1931년 10월 3일 자

그러다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지금과 같은 순댓국이 된 것으로 보인다.

1946년 손정규의 《우리 음식》에는 돈장탕(豚腸湯)이라 하여 돼지고기, 선지, 찹쌀이나 녹말가루, 숙주나물, 배추김치 등을 잘 섞어 양념한 뒤 돼지 창자에 넣고 끝을 묶어 삶아서 그 삶은 물에 잘라 넣어 먹는 음식이 기록되어 있다. (출처 : 육경희 순대실록 2017)
진한 순댓국을 흡입하고
근처 커피숍으로 이동

광화문은 커피숍이 참 많은 곳이다. 하지만 그만큼 어딜 가나 커피숍엔 수많은 인파로 만원이기 일쑤다. 후배를 나의 아지트인, 한적한 커피숍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눴다.


"선배 너무 힘들어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후배는 새로 이직한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예전 회사의 좋은 부분과 지금 회사의 안 좋은 부분을 비교하며 부정적 요인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가 지금의 일터로 변경하고자 결심했을 당시만 해도 그는 분명 현재 회사의 안 좋은 부분과 이직할 회사의 좋은 부분을 비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이직하고 나니 좋은 부분보다 아쉬운 부분, 부족한 부분에 더 신경 쓰며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이었다.


"잘 생각해봐. 우리는 늘 무언가를 소유하고자 해. 사랑도 직장도 물건도 말야. 그런데 이상하지. 늘 가지기 전에는 그(그곳, 그것)만 있으면 될 것 같았는데.... 막상 내 것이 되고 나면 한동안은 좋지만 이내 좋은 것보단 아쉬운 부분, 부족한 부분에 집중하며 토로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니 말이야"


사실 이 세상 어느 조직도 완벽한 조직은 없다. 그 어떤 조직에서도 말이다. 그건 이상일뿐이다.


"똘아이 불변의 법칙이란 거 들어봤지? 내 경우를 돌이켜봐도 그래. 지금 직장에서 날 괴롭히거나 정말 꼴 보기 싫은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싫어 이직하면 이직한 곳에는 상똘아이가 둘이나 있더라고. 어딜 가나 사람 때문에 힘든 건 피할 수 없는 거야. 절대 이직은 사람이  싫어 도피하듯 하면 안 돼. 어차피 똘아이를 피해 나와 다른 곳에 가면 거기에는 상똘아이가 제곱으로 있을 테니까 말야. 만약 그곳에 똘아이가 없어서 네가 너무 행복하다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해... 네가 상똘아이일 수 있어.... 네가 어느 새 네가 그토록 싫어했던 괴물인 상똘아이가 된 것일 수 있어.... ㅎㅎㅎ"

"(정색하고)지금 네가 고민하는 것도 맞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일단 너무 힘들면 다음 플랜을 짜 보자. 하지만 명심해야 하는 건. 이직을 고민한다 해도 사람을 피해서 하는 건 아냐. 네 목표와 비전을 이루기 위해 이직하는 거지. 목표와 비전을 명확히 하고 지금 상황에서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해야 할 것들에 집중해봐. 현재의 부정적 인식은 어차피 네게 도움이 되지 않아. 네 에너지를 너를 위해 쓰도록 노력해봐"


후배와 1시간 여의 진지한 상담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혼잣말을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어느 순간 너도 알게 될 거야. 40대가 되어보면...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고민이 의미하는 바를...  부디 40대가 되어 후회하지 않길 바랄 뿐이야... 집중해야 해... 너의 에너지를... 너를 성장시키기 위해... 너의 미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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