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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Jun 28. 2022

아침 커피야! 고맙다!!!

부탁받지 않은 일을 한 내 문제임을 인정한다

여기 있던 커피 어딨어?

아침이면 아내는 커피를 내려 마시곤 한다. 때론 연한 아메리카노를, 때론 진하게 내려 우유와 함께 라떼로.


아침에 일어나 아내가 마실 커피를 내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한다. 아내가 부탁한 적은 없다. 그저 내가 아내의 관심을 사보려 시작한 일이다.


오늘 아침, 아내가 테이블 위에 놔두었던 커피를 못 봤냐고 묻는다. 아침에 마시려고 했던 커피라고 했다.

설거지하면서 버렸지....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아내가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커피를 내렸다. 늘 하던 대로 연하게.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았다.


"이거 뭐야? 난 오늘 라떼를 마시려고 했는데"


아내가 참 매몰차게 말한다. 아내의 퉁명스러운 말투에 기분이 상해 내려놨던 커피를 싱크대에 쏟아부어버렸다.


그리고는 나도 배설하듯 감정을 쏟아냈다.


"참 너무하네"


내 입 밖으로는 감정의 배설물이, 내 가슴 깊은 곳에서 서운한 감정이 솟구쳤다.


아내와 난 서로를 탓하기 시작했다. 사소한 감정들의 책임전가라는 말이 맞을 듯하다.

왜 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출근하는 동안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기껏 웃음 가득한 가정을 꾸려보겠다고 그동안 노력해왔는데... 그런 노력들이 또 한순간 물거품이 된 것 같아 허망함과 속상함이 밀려왔다.


요즘은 속상하면 말씀을 찾아 듣곤 한다. 유튜브에서 말씀을 찾다가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님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분노 다스리기'란 영상 설교 제목이 눈에 들어와 듣기 시작했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원인을 나 자신에게서 찾는 태도를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말씀을 들으며 아침에 일어났던 일을 복기했다. 그리고 반성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아내는 내게 아침에 커피를 내려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었다. '아침에 커피를 내려주면 아내가 좋아하겠지'라고 생각하며 한 독단적인  행동이었다. 아내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커피를 내려준 내 행동이 반갑지 않을 수도 있다. 고맙다고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오늘 내가 커피를 내리지 않았다면 지금의 이런 서운한 마음을 가진 나도 없었을 것이다.


분명히 아내는 커피를 내려달라고 하지 않았다. 아내는 그저 자신이 라떼를 마시기 위해 내려놓았던 커피가 없어진 이유를 물어본 것뿐이었다.


내 탓이었다.

내 탓이 맞다
이사야 6장 5절
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내가 다 망하게 되었도다
내가 경험한 가정 안에서 상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나는 어떤 눈으로 바라볼 것인가가 중요하다. 똑같은 일을 경험함에 있어서, 어떤 이는 상처를 준 이를 원망하며 시간을 허비하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그것을 자기를 점검하는 기회로 삼고, 그것을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기도 한다.


나는 오늘 아침 아내를 탓했다. 내가 호의를 베푼 것에 대해 매몰차게 말한 아내를 원망했다.


'내가 지금 화가 나는데 이것이 정당한 감정인가'에 대해 되물어야 한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말씀을 들으며 내게 되물었다.


아침에 나의 입 밖으로 나온 화는 나의 잘못된 감정이었다. 근원적으로 내 문제였다. 정당한 감정이 아니었다. 오늘 아침의 분란은 내 탓이었다.


'가족의 두 얼굴'이란 책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가족의 문제는 1+1이다. 부부관계가 힘들수록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시킨다. 서로 성격이 너무 다르고, 애초에 잘못 만났고, 너무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다는 등 상대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붓는다. 불행한 결혼의 이런, 바로 상대방의 실망스럽고 상처 주는 행동이다. 1+1 중 1은 이것이다.

그러나 가정이 불행한 것은 1만 있는 게 아니라  플러스 1이 더 있다. 이것만으로는 힘든 부부와  가족관계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여기에 하나가 더해진다. 그것은 각자 배우자가 어린 시절 경험한 부모의 결혼생활과 그때 받았던 상처이다. 이 둘이 합쳐서 1+1이 이뤄 현재 불만과 짜증, 분노로 일그러진 가족이 된 것이다.


그랬다. 가정 속에서 일어나는 어려움은 내 탓이다. 나의 미성숙함 때문이다.


플러스 1의 원인은 나에게 있다. 어린 시절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가진 우리는 '성인아이'다. 가정의 문제가 잘못 만난 아내, 남편 때문만은 아니다. 이것을 내가 용납하고 수용하고 품어주었다면 내가 더 성숙했다면 충분히 일어나지 않았을 것인데... 내가 부족했던 탓이다.


십자가 안에서 내가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플러스 1이 사라지는 은혜가 내게 나타날 것이라 믿는다.


내 탓임을 인정하자 마음속 원망이 사라졌다. 그리고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일었다.

아침에 부탁받은 일도 아니었는데
괜한 행동으로 분란을 만들었어... 미안해

아내에게 사과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내가 한 감정적으로 내뱉은 말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냥 커피를 내리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커피를 내릴지 물어봤어야 했다. 커피를 내릴 때 진하게 내릴지, 연하게 내릴지 묻고 행동했어야 했다.


내 탓이다. 내가 부족해서 일어난 일이다. 내가 더 성숙했더라면 오늘 아침 아내와 아들 그리고 나도 웃으며 출근할 수 있었을 텐데.... 많이 후회된다....


오늘도 나의 부족함을 또 하나 깨달은 소중한 아침이다.


'커피야 고맙다. 네 덕에 오늘도 귀한 깨달음을 얻었구나'


분명 난 또다시 나를 먼저 돌아보기보다 상대 탓을 먼저 할 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감정이 고개를 들 때면 이 글을 꺼내어 보며 나 자신을 점검할 것이다. 이 글을 반복해서 보다 보면 내게 성숙한 내가 찾아오겠지만 믿음이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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