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한 다음날엔 내 모든 것을 우울함이 지배해서다
술 조절을 하지 못하고 만취한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우울함과 마주한다.
공허함과 인생의 덧없음이랄까.
매일매일 열심히 잘 살고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살다가도
술마신 다음날에는
내 모든 것이 부질없어 보인다.
그렇다보니 요새는
저녁 술자리를 만들지 않으려 애쓴다.
술자리에서 술조절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아예 자리를 피하는 방법을 택했다
만취한 다음날
나를 기다리고 있을
우울함을 만나고 싶지 않아서다
지금 내 앞에 우울함이 웃고 있다
'넌 그래서 안돼! 그것봐 넌 또 꽐라가 됐잖아'라며
날 비웃고 있다
온갖 비아냥을 해대며
우울함은
내 마음을 헤집어 놓는다
그동안 이성을 부여잡고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온
가치있는 삶을 살기 위해 애써온 내 모든 것을 부정하며
어김없는 난 기도한다. 하나님께.
어제 조절하지 못하고 마셔댄 저를 용서해달라고
내게 쏘아대듯
나를 비난하는 우울함의 공격을
난 오늘 감내해야 한다
내 마음 속 우울함은
늘 나를 기다리고 있다
술만 있으면 언제든 나를 지배할 수 있다며 자신하고 있다
난 사실 술이 무섭다
정확히는 술마시는 자리가 두렵다
술을 마시면 조절하지 못하고 마셔댈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우울함과 마주해야 하는 다음날이 너무 고통스럽다
그래서 술마신 내가 싫다
술 마실 땐
유쾌하고 즐겁다
내 마음속에 쌓인 먼지같은 이야기들을 토해낼 때에는 시원함도 느낀다
하지만
다음날이 너무 고통스럽다
다음주에도 술자리가 있는데
감사한 분들과 저녁자리가 있는데
지금 난 그 다음날이 겁난다
살아간다는 건 고통이고 두려움이란 걸 잘 안다
그럼에도 살아가는 건
열심히 살다보면 느낄 수 있는 기쁨, 행복, 성취감있어서다
하지만 우울함은
내가 살아가는 이유인 그 모든 것을 한순간에 무력화시킨다
오늘 내 앞에 있는 우울함은 더 강력해졌다
점점 더 강력해져서 내 앞에 나타나는 것 같아 무섭다
내 지난날의 모든 소중한 마음들을 짓밟는 우울함이
내 마음을 고통스럽게 한다
이렇게 글이라도 써야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지금의 이 마음을 글로 남긴다
미래의 나에게
경고하고 싶어서다
"술을 마셔야 하는 날 이 글을 꼭 봐야해
난 네가 다시는 우울함과 마주하지 않았으면 해"
"가장 좋은 것은 저녁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지만
넌 술을 안 마시는 걸 못하잖아. 그러니 제발 마시려는 너를 통제해"
"어제의 나로 인해 오늘의 나는 지금 우울함 속에서 힘겹게 버티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
제발 기억해. 술마신 다음날 네 모습을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