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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Nov 27. 2022

연애와 결혼 사이

후배의 결혼 청첩장을 받아 들고 "나 같은 실수는 하지 않길 바라"

차장님 내일 오전
티타임 가능하십니까?

신입사원이라며 찾아와 인사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대리가 됐고 이제 결혼한다며 내게 커피 한 잔 가능한지 묻는다.


점심 일정과 저녁 일정은 서로가 도저히 맞출 수 없는 상황이라 티타임으로 대신하기로 했는데, 내일 오전에 여유가 생긴 듯했다.


"오늘은 제가 커피 사겠습니다"


"그래 그럼 오늘은 얻어마실게"

어서 줘~ 청첩장

"차장님 바로 본론인가요?"


"그럼! 너나 나나 시간을 쪼개서 사는 사이인데 굳이 인사치레하며 불필요한 썰을 풀 정도로 우리가 어색한 사이 아니잖아 ^^"


그의 주머니에선 나온 청첩장이 내게로 건네졌다. 그리고 청첩장 봉인 스티커 아래에 내게 쓴 글이 적혀있었다. 처음 우리가 서로 인사를 하고 지난 5년여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었다.


"이야~! 손글씨까지 써주니 감동인데! 이렇게 한 명 한 명에게 손글씨를 담아 적는다는 게 고된 일일 텐데 정말 고마워! 특별한 편지라 평생 간직할게"


"아내가 될 여자 친구가 이렇게 건네보면 어떻겠냐고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좋을 것 같아서 써봤어요"


나의 결혼 준비하던 때가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아내에게 저질렀던 말과 행동으로 인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준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이제 그럼 난 답례를 해야 할 때네

"결혼하면 좋은 말만 해주고 나쁜 말은 허공에 날려버려... 그리고 아무리 사소한 거짓말이라도 그건 지금 서로 믿고 의지해나갈 수 있는 신뢰를 한 순간에 깨뜨려버릴 수 있으니 꼭 기억해. 이 두 가지는 내가 10년 결혼생활을 하면서 가장 후회하는 것이기도 해"


"네 차장님"


"사실 연애할 때에는 서로가 자기만의 시간이 있다 보니 보고 싶을 때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웃고 헤어지잖아. 그게 좋은 이야기든 나쁜 이야기든 서로 공유하면 위로도 해주고 격려도 해주고 같이 웃어주기도 하고 말야"


"서로의 시간을 존중해주라는 거군요"


"그렇지. 나의 어두운 면을 상대가 모두 이해해주고 모든 것을 위로해줄 것이라는 것은 현실과는 차이가 있더라고. 당장 나만 생각해도 내가 마음의 여유가 없는데 옆에서 그것도 하루 종일 불평불만만 한다면 너무도 힘들 테니 말야. 사실 내가 그랬어. 회사생활 힘들다. 이래서 답답하다 저래서 그렇다 그런 식으로 투덜투덜거리면서 아내한테 찡얼찡얼거리기 일쑤였지. 그랬더니 아내가 지쳤어"


"아..."


"아내가 나랑 결혼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던 나의 모습은 이런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아니었을 테니 말야"


"네 차장님 꼭 기억할게요"


"아냐 아냐! 그냥 네 정성스러운 손 편지에 대한 답례이니 듣고 잊어버려도 돼. 다만 미리 경험하고 말한 것이니 나 같은 실수를 너는 안 했으면 하는 것뿐이야. 근데 다들 비슷하게 살아가더라고. ㅎㅎ"


"넵 차장님"


꼭 기억해.
결혼이라는 게 내 단점까지 공유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야

너무 늦게 깨달아버렸다. 결혼이라는 것, 결혼을 했으니 이래도 된다는 것은 없는데 말이다.


외롭고 힘겨운 하소연은 '결혼과 연애 사이' 그 어디쯤인가에 앉아 내 마음과 나눠야 하는 것이다.


왁스의 '황혼의 문턱'의 노랫말처럼...

'어느새 키 큰 어른이 되어 험난한 세상을 겪어보니 산다는 게 정말 쉬운 게 아니더라'


누구나 힘들다.

누구나 사는 게 고통스럽다.

그렇다고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에게 내 힘듬과 내 삶의 고통의 무게를 지게 해서는 안된다.


난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난 너무도 많은 나의 힘듬과 나의 삶의 고통의 무게를

내 평생 반려자에게 지게 하려 했다.


할 수만 있다면

다시 그때로 돌아가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어쩌면 오늘 후배에게 한 말은 내가 30대 초반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인 듯싶다.

아들 너도 꼭 기억하렴

삶의 무게는 함께 지면 더욱 무거워진단다.

그러니 남에게 같이 메고 가자고 하지 말고

힘들더라도 혼자서 감당하는 훈련을 하렴.


지금 아직 어린 너이지만,

네 모습을 보다 보면

이미 네가 그런 깨달음을 얻어 너 스스로 잘 이겨내는 것 같아 대견하기도 하구나.


네가 결혼할 즈음,

아니면 네가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할 시기에 이 글을 봤으면 좋겠구나...


아들, 넌 내게 축복이고

네 덕택에 내가 살아가며 많이 웃고 있단다.


삶은 원래 힘겹고 고통스러운 것이고,

삶은 원래 늘 외로움과의 싸움이란다.


그러니 나는 왜이런가 의문을 품기보다

어떻게 하면 오늘 하루를 더 많이 웃을 것인가

어떻게 해야 오늘을 즐겁게 보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이가 되렴.


나이가 들수록

마음이 굳어져 상처가 생기면 쉽게 곪으니 그것도 명심하고.


2022.11.27.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을 보며 흐뭇하다가도
그만큼 너에게 주어지는 삶의 무게가 더해지는 것에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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