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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Apr 17. 2024

그럴 때가 있다

하루종일 자꾸만 꼬여간다 싶을 때

몇 주 전 일이다


아침부터 마음이 맑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뭔지 모를 뿌연 날이었다. 미세먼지로 가득한 그런 느낌.


회사로 출근하는 길 유독 사람이 많은 것처럼 느껴지고 내 옆에 선 이는 끼여있는 나와는 달리 자신의 힘을 과시라도 하듯 온몸에 힘을 주고 서있다. 그 좁은 공간에서 기어이 유튜브를 보겠다고 주변사람들을 밀치고 있는 게 눈엣가시처럼 보이는 날이다.


보통 아침 출근길 7호선은 건대입구에서 많은 이들이 하차한다. 여기서부터 보통은 앉아갈 수 있다.


이날도 앉았다.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분이 내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고 그 앞에 있던 분이 앉았다.


'이런...'


하필이면 쩍벌남이다. 나는 다리가 닿는 게 불편하여 쩍벌남에게서 내 무릎을 떨어뜨리려 양쪽 무릎에 힘을 꽉줘 무릎을 모으기 시작했다. 


쩍벌남의 다리는 점점 더 넓게 벌려졌다. 그의 무릎이 자꾸 신경이 쓰여 책 속에 글자가 눈에서 튕겨나갔다.


팀장님 잠시 얘기 좀 해요


출근했다. 부랴부랴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가려는데 직원분이 나를 불러 세우며 할 얘기가 있다고 하셨다.


회의하는 내내 어떤 이야길 저리도 무거운 표정과 낮은 어조로 얘기하는지 걱정돼 집중할 수 없었다.


회의 끝나고 나와 티타임을 하니 청천벽력 같은 단어가 내 귀를 날카롭게 후벼 팠다.


"저 퇴사하려고요"


마음이 촥하고 가라앉았다. 마음속 먼지가 더욱 뿌옇게 내 마음을 집어삼켜 버릴 듯 나를 덮쳐오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젠 미세먼지가 아닌 모래폭풍이 되어 마음속에서 회오리쳐대기 시작했다.


오늘은 내게 너무 가혹한 날 같아
울고 싶어졌다


마음속 모래폭풍은 점점 더 내 마음을 어둡게 만들고 있었다. 내 마음속 수많은 자아 중 여리고 여린 내가 울고 있는 것 같은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이 느껴져 내 마음속 깊이 숨겨두었던 우울함이 고개를 들어 내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오늘을 내려놓자'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나를 자유롭게 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둘러싸고 내가 원치 않는 값들이 들어오니 오늘은 내 마음을 파도 위에 올려놓은 듯 물결이 치는 대로 움직이게 둬야겠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내가 살아갈 날들 중에 하루가 사라지는 것이 속상하지만 그래도 마음을 지켜야 하니 결단을 내려야 한.


그렇게 하루가 흐르고
이틀이 지나고


오늘도 아침에 쩍벌남을 만났다. 쩍벌남과동행으로 아침에 너무도 많은 에너지를 소진한 느낌이라 힘든 하루가 시작됐다.


그렇게 나를 괴롭히던 쩍벌남과 헤어지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마인드 컨트롤하고 출근해서 업무를 보며 바삐 움직이다 보니 이제 나를 둘러싼 힘든 날들이 조금씩 멀어지는 게 느껴졌다. 엉켜버린 실타래가 조금씩 풀어져 뭔가 마음속에 답답함이 해소되어 가는 느낌이랄까.


반가운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뿌옇기만 했던 답답했던 마음은 조금씩 날이 개듯 맑아지는 듯  느껴졌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맑아지는 느낌이구나'


많이 그리웠다. 이 맑아지는 느낌. 화창한 봄날처럼  해가 쨍하고 비추는 완벽한 '날씨 맑음'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다리면 왠지 잠시 후면 파랗고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가 되는 그런 마음이다.


퇴근길


오늘부터 직원분의 자리가 비었다. 허전하긴 하지만 그도 그만의 비전과 목표 그리고 계획을 가지고 자아를 찾기 위해 떠난다고 하니 응원해 주기로 했다.


오늘  그의 빈자리로 인해 업무의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오늘 하루 정신없이 보냈다.

 

말 그대로 정말 쉼 없이 일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


'그래 이게 인생이지'


오늘도 난 그렇게 살았다. 뿌연 날은 뿌연 대로 맑은 날은 맑은 대로.


매일이 완벽할 수 없다. 비 오는 날도 있고 장대비가 쏟아져 온몸이 우산을 받쳐도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기도 한다. 예상치 못한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하루를 보내기도 하고, 무더위로 온종일 정신이 혼미하게 보내기도 한다. 더위를 어떻게 먹을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더위 먹은 듯 헛소리를 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늘 마음이 맑길 원하는 건
내 욕심이겠지


살아간다는 것은, 삶이란, 단순하지 않다. 단순할 수 없다. 살아있는 것들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수많은 경우의 수가 일어나서다. 내가 가만히 있는다 해도 나를 둘러싼 상황과 환경은 수없이 변화한다. 좋게도 나쁘게도. 내가 아무리 애써도 늘 좋을 수만은 없다.


날씨도, 마음도, 사람관계도, 업무환경도 늘 좋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현실엔 존재하지 않는다. 시련의 연속이고 강요된 선택 속에서 고민과 갈등이 반복된다.


좋은 선택도 있을 수 있지만 최선이라 생각했지만 최악의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그게 인생이다.


인간이기에 늘 실수하고 회개하고 또다시 실수하고 회개하고 자책하고 하기를 반복하는 것이 인생이다.


욕심을 비우자. 열심히 살되 결과가 늘 좋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자.


최선을 다하자.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후회하지 말자. 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음에 감사할 수 있도록 애쓰자.


목표는 명확하게 하되 꼭 이뤄야 한다고 반드시 이뤄낼 거라고 착각하지 말자. 이루면 좋은 거지만 반드시 이뤄진다는 보장은 없다.


그게 인생이다. 그게 내가 오늘 나를 위해 나를 다독여야 하는 방법이다.


나는 오늘도 그렇게 살아간다. 오늘은 내려놓고 좀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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