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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Nov 16. 2024

가을저녁, 아들의 첫 곱창

비록 기름진 곱창으로 배탈을 얻었지만, 기억하고 싶은 날

아빠~
오늘 곱창 어때?


선선한 바람도 어느덧 제법 매섭게 느껴지는 가을이다. 퇴근하고 반가운 이, 내 절친이자 나를 아주 많이 사랑해 주는 아들의 목소리다.


우리는 집 근처 곱창을 파는 작은 식당으로 향했다.


"아들 갑자기 곱창은 왜 먹고 싶어 졌어?"


"응 오늘 수업시간에 곱창 관련한 이야기가 나와서 곱창 맛이 궁금해졌어"


난 아들의 곱창이 먹고 싶어 졌다는 이유가 당황스럽고 어이없긴 했지만, 그보다 기쁜 마음이 더 컸다. 아들의 첫 곱창 시식을 함께 하게 되어 소중한 추억 한 조각을 함께 할 수 있게 됐다는 기쁨 때문이다.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 안은 오래된 외관과 다르게 꽤 활기찼다. 주방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곱창과 고기가 익는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메뉴는 간단했다. 곱창과 오겹살.


이미 가게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실내에는 5개 정도의 테이블이 있었는데, 가족단위 손님들로 만석이었다.


"사장님, 자리가 다 찼나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고, 사장님이 환하게 웃으시며 바깥자리도 괜찮다면 앉아도 된다고 하셨다. 손님들의 주문이 이어지는 와중이라 정말 정신없으실 상황임에도 사장님의 말투와 눈빛에는 조금의 짜증도 없었다.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이웃이 걱정하며 답해주는 것 같았다. 사장님의 그 친절한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출입문 앞에 우리를 위한 야외자리가 마련됐다.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13살 요크셔 '우니'도 함께 앉아서 함께 식사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밖에서도 괜찮겠지?"


아들과 아내를 향해 물었다.


"괜찮아. 오늘은 바람도 없고 강아지도 함께 있을 수 있으니까."


아내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장님 여기 곱창 2인분 부탁드려요"


"오겹살이 정말 맛있어요. 한 번 드셔보세요!"


사장님이 추천해 주셨다. 곱창과 오겹살의 조합은 어떤지 궁금해 주문했다.


요크셔 '우니'는 아내 품에 안겨 연신 코를 킁킁 거리며 군침을 삼켜댔다. 저녁을 먹고 나왔는데 기름진 냄새가 식욕을 자극하듯. 하지만 이제 노견이 된 우니의 건강을 생각해 요즘은 나와 함께 우니는 식단 조절 중이다.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자야 오래 산다는 것을 알기에 우니에게는 요즘 철저하게 건강식단을 해주고 있다.


먼저 오겹살이 나왔다. '치익~'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고소한 향기를 품어냈다.


"오겹살은 직접 구우시면 되고요, 곱창은 초벌 해서 가져다 드릴게요."


사장님이 설명해 주셨다.


오겹살은 정말 일품이었다. 곧 나올 곱창이 더욱 기대됐다.


"아빠 곱창은 언제나와?"


오겹살을 맛본 아들도 곱창이 기대되는 양 내게 곱창이 먹고 싶다며 물었다.


"오겹살을 다 먹고 나면 나오나 봐"


그랬다. 오겹살을 다 먹으니 사장님이 곱창을 가져다주셨다.


"치이이익~~"


곱창과 함께 익혀진 파 그리고 곱창을 볶으며 나온 기름이 불판으로 쏟아지듯 옮겨졌다. 곱창을 불판에 옮겨주시며 사장님은 집게로 직접 곱창 먹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곱창 하나에 이렇게 파 그리고 소스를 찍어서 맛보면 참 맛있어요. 한번 먹어보세요"


아들은 사장님이 수저에 올려준 곱창과 파 그리고 소스를 입안으로 집어넣고 오물오물 맛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들은 본인 입맛에 맞았는지 사장님이 알려주신 대로 곱창을 먹기 시작했다.


"아들 맛있어?"


"응 맛있어 고소해"


오겹살은 육즙이 풍부했고, 곱창은 기름졌지만, 고소했다.


나는 아들이 곱창을 먹는 게 신기하면서도 기특해 말을 건넸다.


"이거 진짜 맛있다! 근데 조금 기름지네"


곱창과 오겹살을 맛보며 이곳 식당이 참 정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부부의 인품도 좋으셨고, 아들에게 말을 건네주시는 모습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정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이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사람 냄새가 나는 정겨운 공간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공기도 선선해서 좋았고, 지글지글 불판에 구워지는 소리도 좋았고, 맛도 좋았고, 아내와 아들 그리고 우니와 함께 한 식사 시간도 좋았다. 모든 게 행복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날 밤....


잠이 들기 위해 누우니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러길 몇 차례 반복했다.


배탈이 났다. 오늘 마지막으로 먹은 것이라곤 곱창과 오겹살뿐이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아까 먹은 곱창의 기름기가 내 장에는 너무 과했을 수 있겠구나'

나는 반성했다.


'요즘 콜레스테롤 수치가 너무 올라가서 식단 조절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곱창이 아깝다고 너무 욕심을 부리며 먹었구나'


하지만 식당이 원망스럽진 않았다.


모든 게 좋았다. 맛도 분위기도 가족과의 대화도. 모든 게 완벽했다.


비록 나는 배탈은 났지만, 내 기억 속에 그 식당은 어르신 노부부의 따뜻함으로 기억될 것이다.


'기름기에 익숙하지 않은 내 장을 생각했었더라면 내가 조심했어야 하는 건이었다'


나는 오늘의 분위기, 사람들 간의 정이 너무 좋았다.


오늘의 가을 저녁, 아들과 함께 처음 맛본 곱창의 기름진 맛.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이다. 소중한 추억을 더욱 깊게 새겨주는 건 해프닝인데, 오늘의 배탈은 소중한 추억을 더욱 잊지 않도록 해주는 귀한 조미료가 되어 내 기억에 더욱 오래도록 남도록 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화장실을 드나들며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 다음엔 우리 곱창은 좀 담백하게 먹고 오자"


오늘, 그리고 가을, 그리고 우리 가족이 곱창과 함께 한 그 순간, 나는 훗날 오늘을 기억하고 싶다. 미소가 지어질 것 같은 소중한 추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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