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문을 열고 나오니,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차 위에도, 길 위에도, 내 신발 끝에도.
하늘은 온통 고요했고, 거리에는 하얀 이불이 덮인 듯 평화로웠다.
첫눈은 내게 낯설고 반갑지만, 동시에 무겁고 조심스러운 존재기도 하다.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출근길 조심해"
어쩌면 그 말은 내게 던진 한마디일지도 모른다. 조심해, 너 자신.
결혼한 지 어느덧 13년이 되었다. 시간은 언제 이렇게 흘러갔을까.
결혼 초반에는 나도 풋풋했고, 모든 것이 도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한발 한발 조심스레 걸어가는 고슴도치 같다. 세월은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지만, 동시에 나의 가시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유하게 말하지 못하는... 내 작은 울타리 속에 갇혀 사는 나를 본다.
어젯밤에는 유독 그 생각이 깊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왔을까? 내 삶은 그저 '괜찮은 하루'들의 반복이었나, 아니면 더 나은 내가 되려는 몸부림이었나...'
12월은 늘 그렇다. 한 해를 보내며 뒤돌아보게 만든다. 지난 11개월 동안 나는 무엇을 이뤘는지, 무엇을 놓쳤는지, 그리고 무엇을 사랑했는지. 나를 사랑했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시간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가끔은 나 자신이 너무 부족해 보여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더 친절할 수 있었는데, 한번 더 웃을 수 있었는데, 좀 더 함께할 수 있었는데....'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문득, 고슴도치도 결국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나의 가시도 나를 보호하기 위한 도구였을 뿐... 다만, 이제는 그 가시를 조금은 부드럽게 다듬고 싶다. 다른 이들을 찌르지 않도록, 나 자신도 다치지 않도록...
삶은 헤밍웨이의 문장처럼 짧고 간결하지만, 그 안에는 깊은 용기가 있다.
"세상은 모두를 부수지만, 부서진 뒤에도 강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부서진 적이 있었고, 그 부서짐 속에서 조금씩 다시 강해지고 있는 중이다. 첫눈처럼, 내 삶도 아직 새로울 수 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를 규정하지 않듯이, 내일의 나는 지금보다 나은 모습을 꿈꿀 수 있다.
눈길을 걸으며 나는 다짐했다.
'더 나은 내가 돼야 해'
내가 아내에게 보내던 "조심해"라는 말처럼, 나 자신을 향한 따뜻한 말도 아끼지 않겠다고. 고슴도치처럼 살더라도, 이제는 그 가시 위에 부드러운 눈이 내려앉기를기도하는 마음으로...
첫눈은 희망을 품은 약속이다. 차갑지만 따뜻하다.
나도 그러한 사람이 되고 싶다. 부족함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그 용기 속에서 희망을 품는 사람. 내가 살아온 지난 40여 년 세월 속에서 길을 잃었다고 느껴질 때, 내 발자국이 그 눈 위에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