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친해지고 적응할 수 있을까하면서 열심히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애를 썼는데 어느덧 시간이 지나면서 복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렇게 잘 보이려고 했던 사람들에게 이별의 슬픔을 주지 않으려고 나 홀로 이별준비를 먼저 한 것 같다 미안해지는 요즘이다.
그래서 소극적이 되었던 것 같기도 하고 정을 주기보다 업무에 더 많은 신경을 쓴듯하다.
찬바람이 옷깃을 스치는 겨울날이 다시 내게 찾아왔다. 창문을 타고 흐릿하게 들어오는 햇빛은 희미하고 조용했다.
'지난해 12월 12일 난 이곳으로 발령났다'
여느 날처럼 커피잔을 손에 쥐고 창밖을 바라본다. 붉게 물든 저녁 하늘 아래, 낙엽은 힘겹게 바람에 흩날리며 땅으로 내려앉고 있다.
마치 내 마음 한편이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다. 이곳에서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파견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고 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는 모든 게 낯설고 어색했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어떻게 해야 이들에게 내가 도움이 되기 위해 온 사람이란 걸 인정받을 수 있을까?'
그런 고민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아침이면 조금 더 단정히 옷깃을 여미고, 낮이면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내 모습을 의식하며 움직였다.
잘 보이고 싶었다.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다.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깨달았다. 그 노력의 끝은 결국 또 다른 이별이었다는 것을.
어느 순간, 나는 조금씩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 방어벽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너무 깊이 정을 주지 않으려 노력했다. 대화 속에서 웃음은 여전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미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결국 인생이란 게, 모든 만남은 결국 이별로 끝난다는 게 다시금 피부로 와닿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40대를 살아가는 나의 하루하루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10대와 20대엔 모든 것이 거창했다. 성공이라는 거대한 산을 오르고 싶었다. 사람들이 나를 우러러보기를 바랐다. 나와 함께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인 삶을 꿈꿨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진심으로 나를 이해하고 아껴주는 몇몇 사람들과의 따뜻한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가족들과 웃으며 저녁을 먹고,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게 내 하루의 전부가 됐다. 그게 나를 더 사람답게 만든다고 믿는다.
‘50대가 되면 어떤 마음일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또다시 이별을 준비하며 홀로 감정을 삭이고 있을까?아니면 더 성숙해져서 그 순간순간을 마음껏 즐기고 있을까?'
어쩌면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떠날 준비가 아니라, 머무는 동안 최선을 다하는 것이리라...
나는 다시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창밖으로는 붉은 노을 아래 삼삼오오 모여 퇴근길에 오르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두꺼운 외투를 여미고 한 손에는 가방을 든 채 빠르게 걸어가는 모습은 분주하면서도 익숙한 하루의 마무리를 느끼게 했다.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나도 모르게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남아 있는 시간 동안 나 역시 나만의 따뜻한 기억을 만들어갈 기회가 아직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떠난다는 사실에 집중하기보다는, 함께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을 더 사랑하자고 다짐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그날의 따뜻한 햇살 같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삶이란 결국, 만남과 이별의 반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모든 만남 속에서 내가 남길 수 있는 건, 하루하루 만들어가는 소중한 기억들이다.
떠날 때 슬픔보다는 미소를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오늘이야말로 진짜 내 삶의 의미가 아닐까.
퇴근길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남아 있는 시간 동안 나 역시 나만의 따뜻한 기억을 만들어가자고 조용히 다짐했다. 좋은 기억만 남기기 위해 하루하루를 소중히 채워가기로...
사람들은 영원을 꿈꾸고, 영원하자고 약속하며 다짐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어쩌면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이 더욱 찬란히 빛나고, 지나간 시간은 추억으로 남아 우리를 더 깊이 살아가게 만드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