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드니 칫솔모에 따라 맛이 다르다
칫솔이 사라졌다
가방에 넣어둔 것 같은데 감쪽같이 사라졌다. 24시간 근무인데 좀 난감했다.
'오늘 하루 양치를 게을리한다고 무슨 일이 있으랴? 참지 모'
안일하게 생각했다. 출근해 점심을 먹었다. 조금 찝찝했지만, 참았다. 참을만 했다. 저녁을 먹었다. 1시간여가 흘렀다. 입안에 찝찝함이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편의점에 갔다
칫솔을 사고 싶었다. 이에 혀가 닿았을 때의 찝찝함이 너무 싫었다.
'뭘 살까?'
한참을 살펴봤다. 요즘 칫솔 모양에 따라 치석이 잘 닦이는지 안 닦이는지에 대한 감이 생겼다. 다른 사람 이는 몰라도 내 이에 잘 맞는 칫솔 모양은 알고 있다.
1+1 행사 안 하네
칫솔도 가끔씩은 행사를 한다. 그런데 오늘은 그날이 아니었다. 다른 편의점으로 갔다. 마찬가지로 1+1행사 상품은 없었다. 그냥 골라야 했다.
조금 전 편의점 보다 이 곳 편의점은 종류가 많지 않았다. 다시 되돌아 갔다.
구매하기로 마음 먹었으니 이제 가성비를 꼼꼼히 확인했다. 가격은 다양했다. 싼 건 1800~5500원까지. 5500원 짜리는 이전에 써 본 적이 있다. 한 번 써 봤지만, 참 좋았던 기억이 있다. 칫솔질이 구석구석 잘돼서 매우 유쾌했던 기억. 하지만 그 돈을 주고는 사지 못하겠다. 5500원...
눈높이를 낮췄다. 굳이 그렇게까지 살 필요가 있나 싶었다. 집에 가면 사둔 칫솔이 많아서이기도 했다.
여행용 키트를 위주로 살폈다. 치약과 칫솔이 함께 들어가 있는 것보다 케이스가 있어서였다. 당장 가방에 넣어둬야 하니 케이스가 필요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케이스만 파나 살펴봤지만, 없었다.
칫솔 모양이 참 저렴하네
여행용 키트의 가격대를 살폈다. 2900~3500원까지 가격은 비교적 큰 차이가 없었다. 가격은 이 정도면 괜찮다고 판단했다.
이제 칫솔의 본연의 목적인 칫솔모를 비교해야 했다. 다 비슷비슷해 보였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은 없었다. 다 저렴이들이었다. 칫솔과 치약을 함께 넣어 이 가격이니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 해도 칫솔모가 보이지 않도록 포장한 것은 반칙이다. 칫솔모의 모양을 봐야 내 치아에 맞을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후회하기 싫어 칫솔모가 보이지 않는 것은 제외했다. 그러고 나니 두 개가 남았다.
2900원짜리와 3500원짜리. 상대적으로 비싼 제품의 칫솔모는 평범했다. 1000원짜리와 비슷해보였다. 상당히 별로였다. 저 칫솔로 양치하면 잇몸이 아플 것 같았다. 저렴한 것으로 눈을 돌렸다. 의외로 칫솔모의 끝부분에 신경을 쓴 게 티가 났다. 사기로 했다.
치키치키 차카차카
초코초코촉
화장실로 갔다. 칫솔에 치약을 묻히고 칫솔모의 감촉을 느꼈다. 탱글탱글한 칫솔모가 잇몸을 간지럽혔다.
생각보다 상당히 좋았다. 칫솔의 대에도 탄력이 상당해 칫솔질하는 내내 리듬을 탔다. 경쾌한 느낌이었다.
어릴 적
칫솔에 대한 추억
어릴 때는 칫솔질하는 게 참 지겨웠다. 양치한다기보다는 의무감에 몇 번 쓱싹하는 정도였다. 주변에 칫솔질을 열심히 하는 아저씨들을 보면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어쩜 저리도 열심히 칫솔질을 하실까'란 생각에 경이롭게 여기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그렇다. 상당히 오래 양치한다. 칫솔질에 상당한 공을 들인다. 이 안쪽부터 잇몸까지 꼼꼼히 양치한다. 그러다 보니 칫솔모의 맛도 느낄 줄 아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칫솔모의 모양에 따라 느껴지는 감촉에 따른 맛의 차이랄까. 내 치아 모양에 잘 맞는 칫솔모도 알게 됐다.
흠...
나이가 들면서 나도 참 많이 변한 것 같다. 칫솔모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고르는 것부터 칫솔모의 촉감을 느끼는 것까지.
'나이가 들어가면서 입맛이 변하듯, 건강을 더 챙기는 것도 자연스러운 거겠지...'라며 위안을 삼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