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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Dec 24. 2017

꼬깃꼬깃한 누더기 양말

행복했던 나의 유일한 어릴적 크리스마스 기억

엄마 산타할아버지는 언제 오셔?

어릴적 크리스마스 이브날이면 엄마한테 물어보곤 했다. 설렜던 그날 밤의 기억. 어릴적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 이렇게 넷이서 한방에서 잠을 청했다. 자그마한 온돌방에 나란히 누워 산타할아버지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그 시절.


문득 그때가 떠올라 오랜만에 노트북을 열었다.


산타할아버지가 꼭 오셨으면 좋겠어

누나와 난 이불을 뒤집어 쓰고는 속삭였다. 나의 부푼 기대와는 달리 누나는 별 감흥이 없어 보였다. 나보다 6살이나 많은 어른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누난 내 산타할아버지에 대한 환상을 깨지는 않았다. 그저 나를 어린아이 취급할 뿐이었다.

선물을 받으려면 양말을 걸어놓고 자야지!

크리스마스 관련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속에서는 빨간색과 초록색이 멋드러지게 디자인이 된 무릎까지 올 법한 목이 긴 양말을 크리스마스에 널어놓았다.


하지만 내겐 그런 양말은 없었다. 뭐가 그리 화가났는지 하늘향해 솟구친 날카로운 엄지발톱 덕택에 내 양말 엄지발가락 쪽은 늘 해져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날이면 알록달록한 양말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했다. 그때는 그랬다. 예쁜 양말을 머리맡에 두고 자면 산타할아버지께서 더 크고 좋은 선물을 주고 가실 것만 같았다.


장롱 서랍 사이에 껴놓은 양말

난 양말을 머리맡에 두고 자곤 했다. 하지만 우리집에 산타할아버지는 왠일인지 매년 오시지 않으셨다. 솔직히 몇번 오셨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너무도 행복했던 기억 하나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그날도 크리스마스 이브날이었다. 산타할아버지가 오셨으면 하는 바람을 가득 품고 잠을 청했다. 왠지 이번에는 오실 것만 같았다. 엄마도 내게 말씀해주셨다.


"일찍 자야 산타할아버지가 다녀가시지?"


'아 맞다 양말! 엄마 말씀대로 오신다면 나를 잊어버리지 않게 해야 하는데!!!'


"엄마 나 양말 새거 없어? 알록달록해서 눈에 잘 띄는 거!"


엄마를 졸랐지만 있을리 만무했다. 내가 가진 양말 중에서 목이 긴 양말,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보이는 양말을 골랐던 것 같다. 그리고 양말 발목쪽을 장롱 서랍에 사이에 끼웠다. 지금 기억해보면 협탁같은 그런 것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떤 선물을 받을지 너무도 설레서 잠을 못이루다 겨우 잠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묵직해진 양말

크리스마스 날 아침 일찍 깼다. 아침이 오기만을 바랐던 내게 아침이 찾아왔다. 일어나자마자 장롱 서랍으로 직행했다. 양말 코가 축 쳐져 있었다. 너무도 기뻤다. 양말을 꺼내 들었다. 찰랑찰랑 동전소리가 들린다.


부푼 기대를 안고 양말 속으로 손을 집어 넣었다. 차갑고 묵직한 것들이 손에 잡혔다. 동전이었다. 500원 짜리와 100원 짜리 동전들이 수북히 들어있었다. 1000원은 됐던 것 같다.


뛸듯이 기뻤다. 그때 오락실에 게임이 50원 하던 시절이었다. 문방구 앞에 있는 오락기는 20원, 30원이었다. 1000원이면 오락을 20번 넘게할 수 있는 내겐 큰 돈이었다.


그날의 흥분을 감추지 난 아직도 기억한다. 너무도 행복했던 순간이자, 나의 유일한 어릴적 크리스마스 기억이기도 하다.


가끔은 어릴 적 그때로 돌아가고 싶기도 하다

크리스마스 날이면 즐겨보던 구두쇠 스쿠르지, 영화특선 등의 추억 속 순수했던 내가 그리울 때가 있다. 어느덧 나는 마흔을 앞둔 이가 됐다. 머리카락 사이로 흰머리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피부에도 검은 점들이 늘어나고...


만 5살 주산학원을 다니며 암기공부와 주판을 두들기던 아이

학원에서 공부하다 배가 고플때면 짭쪼름한 코딱지를 파먹으며 히죽히죽 웃던 아이

아버지가 어디선가 얻어오신 뒤 초록색 페인트로 깔끔하게 칠해주신 세발자전거를 타고 자그마한 마당에서 깔깔대며 무한히 원을 그리던 아이

학원 끝나고 산동네에 있는 집에 가기 위해 가파른 계단 수백개를 올라가다 응가가 마려워 참다참다 중간에 바지에 응가를 하곤 울어버린 아이

엄마가 보고파서 엄마가 일하는 가게를 찾았다가 뭐가 그리 필요했는지 기어올라가다가 다리미에 팔을 데였던 아이

연탄보일러가 너무도 소중했을까 아니면 연탄보일러의 따뜻함을 직접 느끼고 싶었을까 연탄보일러 위에 앉아버려 엉덩이에 별무늬가 박힌 아이


요즘 아들의 모습을 보며 내 어릴적 모습을 떠올려보곤 한다. 벌써 이렇게 어린 날이 그리우면 안되는데... 아직도 난 더 이뤄나가야 할 것이 많은데...

더 후회없이 살기 위해 노력해야 겠다

마흔을 앞두니 생각이 많아진다.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넘어갈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서른 아홉이 되고 곧 마흔이라고 생각하니 상념이 많아진다.


아들이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한다.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그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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