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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Sep 18. 2018

#18. 중세부터 현재까지를 아우르는

샤또 라꽁브노아이약 메독 크뤼부르주아 2014

코르크를 따니 버터랑 치즈향이 풍긴다. 산뜻한 바람.


맑고 투명한 자줏빛. 와인이 병에서 나와 잔으로 흘러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자줏빛 너머로 노란빛깔이 넘실거리는 듯하다.


한 모금 마셨을때 와인의 매끄러움이 느껴진다. 마치 실크로 입안을 도포한 듯한 착각이 들정도다.


맛은 가볍다. 묵직함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음미하는 중이다.


다시 한모금... 시간이 지날수록 실크처럼 매끄럽던 와인에 산미가 더해진다. 아직까지는 여운이 길지는 않다.


시간을 더 두고 다시 잔을 들었다.


천천히 다시 한모금... 코르크의 향이 느껴진다. 담배향도 살짝. 와인의 빛깔은 내가 좋아하는 매혹적인 루비색으로 물들어 간다. 노란빛이 감도는 자주빛이다.


입안 가득 떫은 맛이 느껴진다. 꿀꺽 삼킬 때 쌉싸롬함이 남는다.

크뤼 부르주아
'Cru Bourgeois'

사실 와인 등급을 잘 모를 시절, '크뤼 부르주아'와 '메독'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와 선택했던 와인이다.


막연하게 좋은 등급이겠지란 기대감에 가성비 좋은 와인일 것이라 믿고 구매했다.


크뤼 부르주아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공식 사이트(http://www.crus-bourgeois.com)에 접속했다. 구글 번역이 없었더라면 생각조차 못했을 일이지만, 지금은 상상이 현실로 그려지고 있는 21세기이니 가능한 일이다.

공식 사이트에 나온 내용을
정리하면 대략 이러하다.

크뤼 부르주아의 역사는 중세 시대부터 시작된다. 중세에는 큰 마을을 부르(borug),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부르주아(bourgeois)라고 불렀다. 중세 시절 프랑스에서 보르도는 큰 도시였다. 당시 보르도에서 큰 포도밭은 귀족만이 가지고 있었고, 부르주아들은 중간 크기의 포도밭을 소유할 수 있었다.


우리가 역사 시간에 배우듯, 부르주아는 생산 수단을 소유한 자본가, 시민, 유산계급 등을 일컷는다. 여기서 언급된 부르주아 역시 당시 다양한 특권을 누리특별시민이었다. 실제로 이들은 12세기 영국 지배하에서 특권을 누린 특별시민으로 우대받았다. 와인과 관련된 내용을 꼽아보자면, 이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에 대한 세금 면제와 수출에 대한 특권이 있었다.

15세기에 들어 부르주아들은 국제 무역활동을 통해 부를 축적하며 많은 포도밭을 소유하게 된다. 이 시기는 보르도 지방에 대한 영국 지배가 끝난 시점, 즉 프랑스의 백년전쟁(1337~1453) 승리 이후와 맞물린다.

백년전쟁에서 패한 프랑스는 영국으로부터 칼레를 제외한 모든 지역을 돌려받게 되고 프랑스 왕권은 더욱 강화됐다. 왕권 강화를 위해 당시 왕인 샤를 7세는 정부 조직을 개편함과 동시에 봉건 귀족들을 견제하기 위해 시민계급과의 제휴를 더욱 강화했다. 부르주아들이 영토 소유권을 가지게 된 것도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는 것이다. 사실 전쟁을 치르면 영토는 만신창이가 된다. 거의 모든 기름진 땅과 지방이 황폐해졌고 경작지는 가시덤불과 숲으로 변했을 정도라고 한다. 이런 토지를 부르주아에게 소유권을 줌으로써 관리하도록 한 것은 아닐까.


국제 상거래를 통해 부를 축적한 부르주아들은 보르도 지역의 최고의 땅을 구입해서 그 땅에 자신의 포도밭이라는 이름을 새겼다. '크뤼 부르주아(Cru des Bourgeois/Cru Bourgeois)'라고 말이다. 크뤼(Cru)는 보르도에서 등급(Class)을 말한다. 이는 곧 부르주아라는 새로운 등급을 만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등급체계가 메독 포도밭의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남들과 다른 차별화된 포도밭이라는개념을 만들고, 이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남다른 연구와 개발이 필요해서다. 크뤼 부르주아 공식 사이트에서는 1740년에는 메독 와인의 등급별 가격을 명시하는 첫번째 시도가 있었다는 언급도 되어있다.


얼마 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면서 프랑스의 봉건체제는 무너졌고, 다양한 특권을 누리던 특별시민인 부르주아의 특권도 무너졌다.

크뤼 부르주아라는 포도밭도 이 시기에 타도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까


물론 크뤼 부르주아가 역사속으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부르주아들은 수세기 동안 크뤼 부르주아 와인을 더욱 개발하며 수출을 이어갔다. 19세기 초 집계된 크뤼 부르주아는 300곳 정도였고, 그들이 만든 크뤼 부르주아 와인은 다른 포도밭에서 만든 와인 가격보다 높았다고 한다.


1858년에 발행된 M. d'Armailhac(다르마이약) 보고서에 따르면, 최상위 부르주아(senior bourgeoi)가 34곳, 상위 부르주아(good Bourgeois)가 65곳, 일반 부르주아(ordinary bourgeois)가 150곳이었다.


하지만 20세기 초에 들어서면서 크뤼 부르주아는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1차 세계 대전(1914~1918)으로 독일, 러시아 등 주요 해외시장을 잃어버린데 이어, 1929년 경제 위기를 겪으며 크뤼 부르주아의 면적과 수가 줄어들게 된 것이다.


이후 크뤼 부르주아는 성장과 함께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된다.

본격화되는 등급화

1932년에는 보르도 중개상들이 메독의 444개의 크뤼 부르주아를 3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했다. 정부의 승인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30년 뒤인 1962 년 5월 21일에 최초의 노동조합 형태의 '크뤼 부르주아 협회'(a Crus Bourgeois union)가 뽀이약(Pauillac)에서 창설됐다. 이 단체는 메독 지역의 크뤼 부르주아(Crus Bourgeois du Médoc) 소유주의 이익 도모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협회는 등급이 높은 순부터 낮은 순으로 ▲크뤼 그랑 부르주아 엑셉시오넬 ▲크뤼 그랑 부르주아 ▲크뤼 부르주아 이렇게 3등급으로 나누었고, 이 등급화는 1966 년과 1978 년에 두 차례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이런 이야기도 있다. 협회가 창설되면 협회사 가입 수가 그 협회의 대표성을 나타내게 마련인데, 당시 1962년 협회가 만들어지면서 가입자 수는 94개에 그쳤다고 한다. 당시 크뤼 부르주아는 총444개였는데 이는 21% 정도 수준이다. 다행히도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다양한 홍보를 통해 가입자 수는 늘어났지만, 정부에서 인정하는 공식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논쟁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2003 년 6월 17일, 성직자 법령에 따라 크뤼 부르주아 협회는 'Crus Bourgeois du Médoc'의 등급표를 공식화한다. 등급이 높은 순부터 낮은 순으로 ▲크뤼 부르주와 엑셉시오넬 (Crus bourgeois excptionnels) ▲크뤼 부르주와 쉬페리외르 (Crus bourgeois supérieurs) ▲크뤼 부르주아 (Crus bourgeois) 3등급으로. 서류를 제출한 490개 샤또 중 249개만이 공식화 대상이 되었다.


당시 등급 구분을 위해 18명의 전문가를 구성하여 심사위원을 꾸렸지만, 형평성 논란이 일었고, 급기야 등급에서 탈락한 샤또가 법원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송을 걸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2007년 보르도 행정 재판소는 2003년 6월 17일에 공표된 메독 크뤼 부르주아(Crus Bourgeois du Médoc) 등급제도를 취소하고 '크뤼 부르주아(Crus Bourgeois)' 표기를 금지됐다.


하지만 프랑스 농림부 장관이 승인한 2009년 10월 20일 법령과 2009년 11월 16일 법령에 따라 크뤼 부르주아(Crus Bourgeois) 등급은 다시 공식화되었고, 레이블 표기도 허가됐다. 물론 재승인된 등급 제도는 종전과 많은 차이가 있었다. 2003년 논란이 되었던 형평성에 대한 대폭적인 수정이 있었던 것 같다.

크뤼 부르주아 선정 과정

크뤼 부르주아의 등급을 받기 위해서는 뷰리 베리타스(Bureau Véritas)라는 독립 기관에서 적합성 평가를 받아야 한다.


1단계 : 농장의 적격성 심사

농장에 대한 자격 심사가 이뤄지며, 특정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적합성 평가에서 인정받게 되면 시음회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자격 심사를 받아야 한다.


2 단계 : 품질 적합성

크뤼 부르주아가 되려면 최소 품질 수준 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전문가로 구성된 블라인드 테스트에 와인을 출품해 평가를 받아야 한다. 패널 점수는 와인이 '크뤼 부르주아'가 될 자격이 있는지만을 판단한다.


이렇게 통과된 와인은 '크뤼 부르주아'에 가입되고 '크뤼 부르주아(Cru Bourgeois)'자격을 얻게 된다.


크뤼 부르주아 협회는 이렇게 선정한 크뤼 부르주아를 2010년부터 매년 9월, 새로운 빈티지를 선정하여 공개하고 있다.

크뤼 부르주아의 특별한 스티커

크뤼 부르주아 협회에서는 2010 년 빈티지부터 크루 부르주아 뒤 메독 (Cru Bourgeois du Médoc)의 모든 병에 소위 인증 스티커를 부착하도록 했다.


이 스티커에는 'Cru Bourgeios'로고와 함께 QR코드 및 고유번호가 적혀있다. 이는 소비자에게 품질을 보증한다는 차원의 접근으로, 위조 방지를 위해 보안 장치도 마련했다고 한다.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찍거나, 크뤼 부르주아 공식 사이트(http://www.crus-bourgeois.com)에서 해당 코드를 입력하면 진품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샤또 라꽁브 노이약 2014

샤또 라꽁브 노이약 2014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국내에서 얻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인 레뱅드메일 홈페이지에도 이 와인에 대한 설명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라셀라의 경우에는 자신들이 취급하는 와인에 대한 정보를 꾸준히 업데이트해주고 있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 내게 와인은 단순히 마시는 차원이 아니라, 와인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알아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와인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 조차 자사 웹페이지에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황당한 일이다.


또하나 내가 산 샤또 라꽁브 노이약에는 빈티지가 2014였음에도 크뤼 부르주아의 특별한 스티커가 붙어있지 않았다.


공부하고 나니 뭔가 찜찜하다. 뒷면 레이블도 완벽한 한글패치가 된 버전이었다. 그동안 마셨던 와인의 레이블과 달랐다. 보통은 원산지 나라 언어로 와인 관련 내용이 적혀있는 레이블에 수입사의 한글 패치 버전이 붙곤 했는데... 레뱅드메일 와인에 대한 불신이 싹트는 순간이다....


우여곡절 끝에 샤또 라꽁브 노이약 2014에 대한 정보는 '크뤼 부르주아 협회' 페이지를 통해 인했. 번역하고 이를 이해하기 쉽게 쓰기 위해 고생은 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할 수 있는 기록을 제공해준 크루 부르주아 협회에 감사할 따름이다.

샤또 라꽁브 노이약 매끄러움의 비밀

역시 메를로였다.


샤또 라꽁브 노이약은 메를로 60 %, 카베르네 소비뇽 8 %, 카베르네 프랑 2 %, 쁘띠 베르도(Petit Verdot)  2 %가 블랜딩됐다. 평균 30년이 된 포도 나무의 포도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사실 이 와인은 상당한 역사적 의미를 품고 있는 와인이기에, 초심자에게는 어려운 와인일 수 있다. 크뤼 부르주아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어쩌면 와인 등급의 역사에 한 줄기를 알게 되는 것과 같아서

고단하지만 보람된

이번 글은 정리하는데 두 달여가 걸렸다. 알아봐야 할 것도 많고 번역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만큼 다른 글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고 이것을 정리하는데에도 굉장히 정신적 노동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렇게 정리를 하고나니 성취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이것도 와인이 주는 희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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