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통, 외로운펜잡이, 엉클리 선배
경력 기자들의 면면
경력으로 온 선배들은 다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었다.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지만 정말 멋진 선배들이다. 인간적으로도 훌륭한 인성을 지녔다. 그들은 이미 매체의 영향력을 초월한 지 오래다.
낭만허세
한 명 한 명을 소개하자면, 한 명은 필력이 대단했다. 난 앞으로 그를 '낭만허세'라 부를 것이다. 낭만허세가 소설을 썼다면 난 무조건 사서 볼 것이다. 그 정도로 문장력이 훌륭하다. 스르륵 쳐대는 키보드 리듬에 단 번에 기사 한 건이 만들어진다. 그야말로 청산유수다. 글 속에는 그만의 특유의 감성이 녹아있다. 마성이라 부를 정도로 그의 감수성은 풍부했다.
다만......
과도한 감성으로 평상시에는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기도 했다. 감정 기복이 너무 심해던 탓이다. 굉장히 변덕스러운 날씨 같다고나 할까...
사실 나도 낭만허세에 좀 지쳤다. 차차 그와 관련한 에피소드를 풀어나갈 예정이다. 낭만허세라고 작명한 이유에 대해서도 풀어보겠다.
마음통
다른 한 명은 재계 스나이퍼다.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가 올리는 고급 정보에 난 늘 혀를 내둘렀다.
난 그를 여기서 '마음통'이라 부를 것이다. 그는 진심으로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법을 알고 있다. 그는 늘 진심으로 사람을 대했다. 감정에 솔직했지만 부담스럽지 않았다. 늘 위트와 진지를 적절하게 배합했다. 매력적으로.
그래서일까......
그는 이제 마흔을 바라본다... 근데 아직 미혼이다... 물론 연예는 끊긴 적이 없다...(선배... 살짝 디스 해서 죄송합니다... ㅎㅎㅎ)
그리고 나머지 두 명. 여자 선배와 남자 선배. 그들은 부동산 전문기자로 영입됐다.
외로운펜잡이
여자 선배는 '외로운펜잡이'라 부르고 싶다. 늘 외로워 보였다. 마음이 여린데, 술 한 잔 할 때면 내가 나쁜 기자로 성장할까 봐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기자라는 호칭이 잘 어울리는 선배다.
늘 동화 같은 사랑을 꿈꾸는 순수한 선배이기도 하다. 우연 인 듯 우연 아닌 우연 같은 인연을 기다린다고 할까... 내가 알기론 아직 백마 탄 왕자는 나타나지 않았다.......(선배께도 죄송 ㅋㅋㅋㅋ)
엉클리
남자 선배는 '엉클리'라 부르고 싶다. 친근한 인상에 무서운 친화력을 가지고 있다. 순수한 영혼을 지녔다.
다만, 말이 좀 많은데다 톤이 높다 보니 사내에서 시끄럽다는 평가를 받곤 했다. 하지만 선배들은 그런 그를 좋아했다. 갈굼에 애정이 들어갔다고나 할까.
나 역시 선배를 좋아한다. 가끔 생뚱맞게 전화해도 늘 반겨준다. ㅋㅋㅋ
유쾌한 거인
경력 선배들은 상당히 유쾌했다. 선배라고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았다. 친한 형, 누나 같았다. 그들은 나를 친동생처럼 아껴줬다. 내게 기자 생활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늘 힘든 거 없냐고 물어봤다. 내가 말하기 전에 그들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신기했다.
그들은 취재원을 만날 때에도 날 꼭 데리고 다녔다. 늘 취재원들 앞에서 나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부끄러울 정도로...
그들에게 매체력은 중요치 않아 보였다. 그들이 쓰는 기사가 그들의 명함이었다. 취재원들은 그들의 취재력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들은 출입처에서만큼은 메이저급 기자였다. 취재원과의 신뢰관계도 두터웠다. 부러웠다. 그들은 당시 내게 너무도 큰 거인들이었다. 난 늘 고민했다. '나도 저런 신뢰관계를 쌓을 수 있을까'라고...
기자는 기사로 말하는 거야
선배들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단독을 쳐내기 시작했다. 마치 준비라도 한 듯... 업계가 가장 민감해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단독은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내가 왔노라 여기에 내가 있노라'라고 세상에 외치는 것 같았다.
난 마음통 선배와 외로운펜잡이 선배 이렇게 셋이서 소주 한 잔 기울이는 걸 좋아했다.
그럴 때마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말이 있다.
"좋은 기자는 자기의 진가를 기사로 말하는 기자야. 명심해".
날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말이었다.
"이런 선배들을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으랴..."
당연히 이 두 선배는 당시 내가 존경하는 인물이었다. 늘 내가 쓴 기사를 꼼꼼하게 읽고 피드백을 해주기도 했다. 아무리 바빠도 내가 기사 봐달라고 조르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기사를 고쳐줬다. 첨삭 선생님처럼 친절했다. 글 못 쓴다고 나무라지 않았다.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들은 내 기자 생활의 개인과외 선생님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정말 행운아다.
이들은 나보다 더 힘들게 살아왔구나...
그들은 내게 세상의 이치도 깨닫게 해줬다. 술이 얼큰하게 취할 때면 내게 그들의 힘들었던 과거 초년병 시절에 대해 얘기해줬다. 그들도 초년병일 때 지금 당신들 같은 훌륭한 선배들로부터 술 한잔을 기울이며 인생을 배웠다고 했다.
내게 애착이 가는 것도 그들의 옛 모습이 내게서 느껴져서라고 했다. 아등바등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내게서 측은함을 느꼈다고 했다.
세상에는 참 많은 기자 타이틀을 가진 이들이 있다고 했다.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사로 나의 존재를 알려야한다고했다. 출입처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기자는 기자가 아니라고 했다. 그저 영업사원일 뿐이라고 했다. 내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기사를 써야 한다고도 했다. 늘 겸손해야 한다고도 했다.
늘 마음에 새겨두고 있는 말이다.
여보세요...
마음통 선배과 외로운펜잡이 선배 모두 애주가였다. 특히 마음통 선배는 술 기운이 올라 기분이 좋아지면 독한 술을 즐겼다.
선배와 난 선배 집 앞 맥주집에서 막차를 하곤 했다. 선배는 40도짜리 럼(?)주를 마셨고 난 늘 그 옆에서 생맥주를 홀짝 홀짝 들이켰다. 요즘은 종종 술이 취해 반쯤 눈이 감길 때면 그와 맥주집에서 인생을 논하던 때가 그립기도 하다.
난 어느덧 성장해 그 선배의 연차가 돼 있다. 그 선배가 당시 그토록 독한 술을 들이켰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요즘도 술이 거하게 취할 때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선배들에게 들었던 귀한 조언들이... 그들과 인생을 논하던 기절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반쯤 감긴 눈으로 전화기 속 주소록을 뒤적인다...
에필로그
짐작하신 대로 전 당시 상당히 어리바리했습니다. 누가 봐도 신입이었죠. 경력 선배들의 기품은 늘 제게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르는 게 없었습니다.
특히 마음통 선배와 외로운펜잡이 선배는 제 기자 인생의, 그리고 글쓰기 인생의 두 번째 스승님이기도 합니다. 그들에게 전 처음으로 박스 기사의 구성과 흐름을 배웠습니다. 도무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막막했던 제게 깨달음을 준 선배들이었죠.
전 지금의 제 후배들에게도 이런 선배이고 싶습니다. 하지만 꼰대란 소리 들을까 봐 쉽사리 조언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아직 꼰대가 될 연차는 아니거든요 ^^
멘토와 꼰대의 차이 아시죠? 멘토는 자문을 구했을 때 그 애 맞는 조언을 해주는 선배이고, 꼰대는 묻지 않았는데 잘난척하면서 지적질하는 선배라는 사실을 말이죠. ㅎㅎ
전 이 차이를 늘 명심하려고 노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