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구나
혼자 입사해서인지 말동무가 없었다. 온종일 하는 일이라곤 모니터 보기였다. 난 담배도 피지 않아 화장실 가는 일 외엔 사무실에 앉아있었다. 답답했지만 잠깐 바람을 쐬러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까지 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하는데... 괜히 밉보이기 싫었다. 동기가 있었으면 수다라도 떨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커졌다. 어쩌면 아쉬움이 내 친구였을지도...
이런 나를 더욱 힘들게 한 이들이 있다. 몇몇 선배들... 나를 장난감 취급하는 선배도 있었고 어떤 아이인지 탐색하거나 군기를 잡으려는 이들도 있었다. 이런 행동들이 나를 더욱 외롭게 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6개월 먼저 입사한 선배가 공시 당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정색하면서 나를 바깥으로 불렀다.
"야. 너 선배 앞에서 말조심해"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좀 억울했다.
"저..... 무슨 일 있었나요...?"
"야! 네가 모르면 어떡해! 개념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불호령이 날아왔다.
"윗기수 선배가 너 태도가 엉망이라고 나한테 교육 똑바로 못 하느냐고 뭐라고 하잖아! 조심해라 나한테 피해 주지 말고..."
이건 뭐 밑도 끝도 없었다. 그냥 지가 맘에 안 들면 나한테 와서 말하면 되는 걸 가지고 왜 윗기수한테 뭐라고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솔직히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당시 업무용으로 메신저를 쓰고 있었다. 몇몇 선배는 내게 자주 말을 걸어왔다. 호기심이라 생각하지만 짓궂은 측면이 있었다.
"넌 입사해놓고 인사도 제대로 안 하느냐"는 식이었다. "마주친 적이 없어 인사를 못 했다"고 했더니 계속 트집을 잡아댔다. 괘씸죄가 적용된 것 같았다. 억울했다.
몇 번을 겪고 나서 난 대처법을 알게 됐다.
"죄송합니다"
이 말이 정답임을...
가끔 이 후에도 공격이 날아오기도 했다.
"죄송하면 다냐?"
그 말에 답도 안다.
"저... 그게... 조만간 술이라도 한잔 사겠습니다"
하지만 정말 진상이 있기도 하다.
"그래? 그럼 좋아. 근데 난 양주밖에 안 먹는다"
이런 경우는 정말 몸서리치게 싫지만...
"아... 네...(미친 거 아냐 내가 일해봤자 한 달에 얼마나 번다고 후배한테 양주 타령이야...)
라고 혼잣말을 할 뿐이다.
물론 이들은 진짜로 내게 술을 얻어먹지는 않는다. 그냥 얄궂은 스타일의 사람이었다. 남들이 곤란해 하는 것을 보면서 그걸 즐거워하는 그런 유형이랄까. 애들로 따지자면 개구쟁이 스타일이다.
6개월 선배가 가능한가에 대해 궁금하신 분이 있을 수 있어 부연 설명을 하자면, 온라인 매체의 경우 인력 유출이 많다 보니 뽑는 기간이 짧다. 보통은 1년을 기준으로 공채를 시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타사 기자와도 1년을 기준으로 선후배를 자른다.
누구냐 넌?
여느 때처럼 출근했다. 그런데 오늘은 뭔지 모르게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차근차근 사무실을 훑었다. 못 보던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앗!!! 드디어 동기가 생긴 건가!!!@_@ '
그 사람들을 차근차근 훑어봤다. 그런데 나랑 달랐다. 뭔지 모를 아우라가 느껴졌다. 여유도 묻어났다. 정장에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모습이 진짜 기자 같았다. 멋있었다. 내가 범접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었다.
동진이 안녕?
그중 한 명이 내 이름을 친근하게 부르며 다가왔다. 회사에 입사하고 처음으로 듣는 살가운 목소리였다.
"안녕하십니까. 신동진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해~"
'누굴까...? 누굴까...?'
알고 보니 얼마 전 경력 특채를 한 모양이었다. 경력 특채는 출입처에서 알음알음 일 잘하는 선수를 추천받아 비밀리에 진행하는 방식이다.
'아 이런 나이스 한 선배가 생겼다니 참 다행이다.'
난 그들의 존재만으로 안도감이 생겼다.
이날 입사한 경력 기자는 3명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한 명이 더 들어왔다. 아마도 내 기억엔 그렇다... 그들은 나와 입사 동기라고 하며 친동생처럼 아껴줬다.
회사에서 마주치면 그들은 먼저 내게 인사를 건네줬다. 아주 쿨하게. 무더운 여름날의 시원한 에어컨같이...
다음 주에 계속...
에필로그
신입사원은 어쩌면 조직에서는 어린아이 취급받기 십상입니다.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일수록 더 그렇죠.
신입은 조직문화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눈치를 많이 봐야 합니다. 상사들의 스타일도 빨리 파악해야 하고요. 눈치 없으면 업무라도 잘해야 하는데 긴장하고 있는 상태에서 제 실력을 100% 발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혹시 기수 문화가 있는 조직이라면 선배 기수를 빨리 외우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대화를 하면서 압존법에 따른 불필요한 실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간혹 자신의 후배를 자기보다 선배로 신입이 호칭하는 것을 못 견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조심해야 할 이들은, 아직 적응을 못 한 신입의 모습을 즐기는 이들입니다. 조직 내에 이런 이들은 꼭 있습니다.
신입이 조직문화에 적응하기 전까지 어리바리한 게 너무나도 당연한 통과의례 같은 건데 말이죠.
신입이 조직에 빨리 적응해서 맡은 바 업무를 잘 처리하게 해줘야 하는데 이런 쓸데없는 거로 힘들게 하면 안 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신입 사원에게 이런 짓궂은 장난을 치는 사람들치고 일 잘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제가 겪어본 바로는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