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진의 와인에 빠지다] 4화 - 와인의 온도
"과장님 안 더우세요?"
오늘 아침, 옆자리에 앉은 대리님이 핀잔을 준다. 얇은 스웨터에 경량 구스다운 조끼를 껴입은 내 모습이 보기에도 많이 더워 보이나 보다.
난 따뜻한 게 좋다. 곰탕을 먹을 때에도 바람막이 자크를 목 끝까지 추켜올리고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면 곰탕 한 그릇을 다 비울 때쯤 몸 안 깊은 곳에서 따뜻한 기운이 올라오면서 몸 전체를 뒤덮는 느낌이 든다. 너무 좋다. 물도 냉수보다는 정수를, 따뜻한 물과 정수를 혼합한 마시기에 기분 좋은 따끈한 물을 마신다. 몸 안에서부터 올라오는 뜨끈뜨끈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는 느낌이 참 좋다.
내 왼쪽자리 대리님은 나와는 정 반대 체질이다. 더운 것을 견디기 힘들어 한다. 쌀쌀한 날씨에도 반팔티에 반바지를 입는 상남자라고 할까.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니, 좋아하는 온도가 다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온도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어 더 쉽게 속마음을 나눌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을 지녔다. 만약 누군가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 상대가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온도를 갖춘 장소에서 이야기를 나눠보길 권한다. 대화가 좀 더 매끄럽게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와인도 마찬가지다. 와인의 본래 맛을 즐기기 위해서는 마시는 환경, 즉 와인이 좋아하는 온도를 지켜주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레드와인은 12~18도, 화이트 와인은 5~12도가 마시기 좋은 온도다.우리가 레스토랑에서 화이트 와인을 시키면 얼음통에 와인을 담아 주는 것은 와인의
최적 온도를 맞추기 위함이기도 하다.
와인을 마시기에 최적 온도를 찾는 방법은 간단하다. 인터넷 포털에 와인 이름을 검색해서 와인에 대한 상세 설명이 있는 페이지를 살펴보면 된다.
사실 와인의 최적 온도를 찾겠다고 마실 때마다 온도계를 들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내 경우 요즘 훈련하고 있는 것이 있다.
목욕탕에 갔을 때 냉탕(20~22도)에 손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면서 그 느낌을 손에 익히려고 한다. 처음에는 많이 놀랐다. 20도가 생각보다 많이 차가워서다.이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한다. '이것보다 조금 더 차갑다고 생각이 들면 레드와인의 적정 시음 온도인 15~18도 정도가
되겠구나'라고. 15~18도는내가 좋아하는 장기숙성형인 까베르네 쇼비뇽이 주 품종으로 들어간 레드 와인의 적정 시음 온도다.
손이 따뜻한 내 기준에서는, 손으로 병을 잡았을 때 레드와인은 '서늘하다', 화이트 와인은 확실히 '차갑다'고 느껴지면 마시기 좋은 온도다.
혹시 와인을 사 왔다가 하루 이틀 정도 보관해서 마셔야 하는 상황이라면 냉장고 채소실에 보관하면 된다. 굳이 와인 입문 입장에서 와인셀러를 살 이유는 없으니 말이다. 채소실의 경우 3~5도 정도를 유지한다. 채소의 생명은 신선함이기 채소실은 높은 습도를 유지하도록 설계됐다. 물론 채소실에서 보관한 와인을 마실때는 시간이 필요하다. 꺼내 30분~1시간 반 정도 놔두고 손바닥으로 병을 만져보면서 마시기 좋은 온도가 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흔히 와인은 살아있다고들 말한다. 병 속에서 숙성과정이 진행되고, 보관 상태에 따라 와인의 향과 맛이 달라져서 일 것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우리도 마찬가지다. 나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의 온도와 교감하며 살아간다. 상처를 주면 그 사람과의 관계가 망가지게 되지만 서로 잘 보듬고 살아가면 훌륭한 인연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