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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찌 Oct 03. 2020

낯설지만 익숙한 냄새

잊을 수 없는 기억


'응?!'


갑자기 정신 차린 나는 눈알을 굴려 한 바퀴 둘러본다.

어두워진 방 안엔 어렴풋이 옷장과 티비 그리고 바닥엔 요강이 보인다.


째깍째깍


벽에 달려있는 시계는 6시가 넘어가고 있다.

낯설지만 익숙한 냄새가 난다.

이걸 홀아비 냄새라고 하던가?

하지만 도무지 기억이 안 난다.

혼탁한 안갯속에 길을 잃어 방황하는 기분이다.


'여기가 어디지?'

'아들?!'


집에 혼자 있을 어린 아들이 생각난다.

배고파 아빠를 찾을 아들을 생각하니 심장이 뛰고 동공이 커진다.

마지막 기억을 억지로 떠올려 보지만 아들과 같이 목욕탕과 마트를 같이 간 기억만 맴돈다.

우리 아들이 너무 보고 싶다.


'여기가 어딘진 몰라도 우선 벗어나자'


일어서려는 찰나 다리에 힘이 풀린다.


'나에게 뭔 짓을 한 거야!'


나는 기어가다시피 문으로 간다.

그리곤 손잡이를 돌려보지만 잠겨있다.

안이 아니라 밖에서 잠금이라...


'감금? 그렇다면 분명 난 납치된 거야!'


방문에 귀를 기울여보지만 밖엔 아무도 없는지 조용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띠. 띠. 띠. 띠리리


현관도어락 소리와 함께 이쪽으로 누군가가 온다.


끼익-


불이 켜지고 웬 덩치 있는 중년의 사내가 식사를 들고 들어온다.


"저녁 드세요."


무미건조한 표정과 말투였지만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입맛은 없지만 이 곳을 벗어나려면 우선 먹어야 한다.


"여.. 여기는 어딥니까?"

"..."

"당신은 누구시죠?"

"..."


사내는 말없이 내가 밥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만 볼뿐이다.


"저기요. 전 집에 가야 합니다. 어린 아들이 혼자 절 기다리고 있어요."

"..."


사내는 아무 말 없이 방문을 닫고 나간다.

밥을 먹었더니 기력을 좀 회복한 것 같다.

얼마 지났을까?

방문이 다시 열린다.


"약 드실 시간이에요."

'약?!'


사내는 물컵과 약을 건네준다.


'분명 이 약이 날 이렇게 만든 거야.'


나는 빠져나갈 궁리를 하며 머뭇거린다.

그리곤 약을 물과 함께 삼키는 척하며 크게 내뱉는다.

콜록! 콜록! 좀 더 심하게 기침을 하며 외친다.


"물...! 물 좀...!"


사내는 크게 당황하며 물을 가지러 자리를 뜬다.


'이때다!'


나는 그 순간 젖 먹던 힘까지 써서 그곳을 빠져나온다.

맨발이라도 상관없다.

어서 집으로 가자.

뒤에서 사내의 외침이 웅얼웅얼 들리는 듯하다.


시간이 얼마나 되었을까?

웅크리고 자던 중 따뜻한 햇살이 느껴진다.


'밤이라 멀리 못 가고 근처 건물 지하에 들어왔었지...'


날씨가 따뜻해서 다행이지 추운 겨울이었음 얼어 죽을 뻔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가본다.

이제부터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가야 할지 새하얀 백지장이다. 

방황 중 낯설지만 익숙한 냄새가 난다.

엇 그래서 둘러보니 익숙한 목욕탕도 보이고 마트도 보인다.

아들과 함께 했던 기억이 살아난다.


'동네... 그래! 우리 동네야!'


갑자기 머릿속 안개가 걷히며 집으로 가는 길이 또렷이 기억이 난다.

동네는 예전의 그것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동네가 이렇게 변했나?'


어찌어찌 집에 도착했지만 현관엔 열쇠 구멍 대신 낯선 물체가 달려있었다.


'응? 이게 뭐지?'


잘못 온건가 싶어 둘러보지만 분명 우리 집이 맞다.


"아들! 아빠 왔다!"


인기척이 나며 문이 열린다.

그런데 웬걸?

아들이 아닌 웬 덩치 있는 중년의 사내가 날 맞이한다.


"아휴! 오늘은 또 어디 있다 왔어요? 그러길래 젊었을 때 술 좀 작작 마시지!"


이 중년 사내는 누구길래 우리 집에 있나? 어안이 벙벙하다.

.

.

.

갑자기 정신 차린 나는 눈알을 굴려 한 바퀴 둘러본다.

어두워진 방 안엔 어렴풋이 옷장과 티비 그리고 바닥엔 요강이 보인다.


째깍째깍


벽에 달려있는 시계는 6시가 넘어가고 있다.

낯설지만 익숙한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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