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지금이 행복입니다.
퇴근을 하고 집에 왔습니다. 텅 빈 공간에 가라앉아 있던 공기가 가벼운 파문을 일으킵니다. 크지 않는 내 집이 넓고 크게 보여 다시 살펴보게 됩니다. 낯익은 가구와 살림살이가 내 집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막내아이가 외가에 갔습니다. 여름방학이라 간 것입니다. 막내아이는 친가와 외가를 통틀어 가장 어린 녀석입니다. 중학교 1학년이지만 여전히 철부지 아이 같습니다. 귀여움을 받게 잘 생긴 외모와 집안의 막내라는 위치가 어우러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집안 서열 1위의 존재입니다. 아버지인 나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부동의 위치에 있습니다. 이 가족의 우주계에서 아이는 중심에 있고 나는 이 우주계의 변두리에 있는 위성입니다. 그래도 행복합니다. 이 행복한 세계는 나를 통하여 만들어진 세상이고 꿈꾸던 세상입니다.
아이와 같이 있을 때는 집이 비좁았습니다. 여기저기 다니며 떠들고 쉬지 않고 움직여 집안 구석까지 그 아이의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빈 공간입니다. 아이 하나가 잠시 집을 비운 것에 불과한데 전혀 다른 세상으로 변해 있습니다. 빈 공간 가득 차있는 어색함과 그리움은 바닥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여 나를 감싸고 있습니다.
비어 있습니다. 가득 찼던 공간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크기는 몸집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영향력입니다. 관계입니다. 그 사람에 대한 나의 인식과 관심입니다. 존재가 있어야 인식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인식이 있어야 존재도 하는 것입니다. 존재한다 한들 인식하지 못한다면 나에게 있어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아이의 존재로 인식하지만 아이에 대한 인식과 영향력이 존재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아들이 내일 돌아온다고 하니 하루를 더 기다려야 합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지금입니다. 보고 싶은 누구를 기다리는 것이 행복입니다. 지금도 시간은 가고 있으니 볼 수 있는 그때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시계를 볼수록 시간이 더디게 가고 있습니다. 시계를 잠시 저쪽 편에 두고 아이가 오면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