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에는 이렇게 살겠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유독 가슴에 와닿는 글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고 명문장이라 하더라도 나와 공명되지 않으면 남의 글에 불과합니다. 글과 내가 같이 울리고 공감대로 이어지면 작가의 글이 아닌 내 글이 됩니다. 유치원생이 쓴 글이라도, 글과 내가 동아줄로 연결되어 있는 듯한, 한 몸으로 묶인 듯한 글을 만나게 되면 그 글은 살아 숨 쉬는 글이 되며 나의 이야기가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글도 인연이 있다는 생각을 하여 봅니다.
최근에 읽은 노희경 님의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책에서 한참을 바라보았던 문장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 자신에게 사랑받을 대상 하나를 유기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문장에 맺혀있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나를 돌아봅니다. 내가 더 사랑할 수 있었는데, 내가 상처받기 싫어서, 나를 지키느라 남을 보지 않았습니다. 사랑의 눈으로 보고 다가설 수 있었지만 외면하였습니다. 바쁘다는 쉬운 핑계로, 귀찮다는 내 중심의 핑계로, 그리하면서 지금껏 살았습니다.
내가 가족을, 이웃을,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더 사랑하면서 살 수 있었는데 시간만 헛되이 보냈습니다. 그게 유죄입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감옥에 갇혀 외로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신을 가둔 채로 말입니다. 나를 내려놓고 나 아닌 존재를 바라볼 수 있다면 사랑을 얻게 됩니다. 나를 비워야 사랑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사랑은 나를 비우는 만큼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러하지 못한 것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 하나가 전부여서, 나 혼자만으로 가득 차 있어서, 사랑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두지 않아서, 사랑할 무언가를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6월은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겠습니다. 아니 사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랑하겠다는 그 단정적인 말은 아직 나에게 힘든 부담과 두려움으로 다가오기에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래도 노력은 하겠습니다. 노력이라는 말이 책임을 어느 정도 회피하는 하기 쉬운 편한 말일수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에 다짐을 새기며 잊지 않겠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시도 조차 하지 않으려는 나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 보려는 가능성의 세계로 이끄는 말이기도 합니다. 내 가족, 내 이웃, 내 동료,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다가오는 한분 한분 모두 유기하지 않겠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입니다. 사랑이 이끄는 대로 나아가는 행복한 6월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