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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동희 Jun 25. 2023

헤어지지만 함께 가는 길입니다

퇴직하시는 선배님에게

세상을 살아가면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짧은 만남이 긴 인연으로 이어지는 사람도 있고, 긴 만남이 있었으나 짧은 인연으로 끝이 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만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관계가 소중한 것이겠지요.


선배님은 2021년 10월에 여기 오셔서 지금 퇴직하시니 저희와는 결코 긴 만남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짧은 만남이지요. 그러나 저희들 기억에는 오랜 만남으로 남아 있습니다. 좋은 관계가 짧은 시간을 긴 인연으로 만들었습니다. 소탈하고 격의 없는 성품은 당신을 오히려 더 높은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존중하게 만들었습니다. 가까이 갈 수 있었기에 당신을 알게 되었고, 당신을 알 수 있었기에 당신의 내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떠난 자리에 좋은 향기가 남는 사람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퇴직하고 나서도 후배들에게 안부전화를 받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헛되지 않은 직장생활을 한 것이다.”


선배님은 분명 그런 사람입니다. 앉아 계셨던 자리가 허전하고, 문득 잘 계시는지 궁금해지는 그런 분이지요. 늦은 밤 전화해도 언제나 그 목소리 그대로 반겨 주실 분이지요. 일을 하다가도 이럴 때 선배님이라면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 생각하게 되는 분이시지요.


김경훈 시인의 글에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헤어져서 서러운 것이 아니고 곁에 있을 때 더 잘해주지 못해 아쉬운 거란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옆에 있을 때 소중함을 모르다가 떠난다고 하니 이제 같이 할 수 없음에 아쉬워합니다. 늘 옆에 당연히 계실 거라는 무의식은 선배님이 제 일상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었겠죠. 그저 일상이라는 영역에서, 좋은 선배여서 편하다는 나의 이기적 관계 설정에서, 잊어버렸던 그러나 그러지 않아야 할 소중한 사람이었던 선배님을 이제야 다시 보게 됩니다. 너무 늦게서야 깨닫게 됩니다. 


내 생존의 경작지인 이 회사에 28년 전 입사하여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졌습니다. 28년이라는 세월 동안 겪은 만남과 헤어짐으로 단단해진 마음근육은 이제 익숙할 시점도 되었으련만 그래도 헤어짐은 힘이 들고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헤어지더라도 다시 만나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다시 만날 기회가 줄어가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고 그래서 조금씩 헤어짐이 힘들어져 갑니다. 헤어질 수밖에 없는 만남도 어려워져만 갑니다. 


힘든 헤어짐의 이별을 오늘 우리는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이 오지 않기를, 조금만 더 늦게 오기를 원하였지만, 시간은 우리의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떠나는 사람과 남아야 할 사람이 서로를 보내야 할 때임을 알고 정리하라고 재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배님이 지금 서 계신 그 자리에 우리도 멀지 않아 서게 될 것임을 알기에 선배님을 기쁜 마음으로 보내 드릴 수 있습니다.   


퇴직하는 선배와 남아 있는 후배와의 관계를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아름다운 동행’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별을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별을 동행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직장에서 맺어진 사람사이의 관계가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자전거의 앞바퀴와 뒷바퀴를 보며 선배와 후배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앞바퀴는 힘을 받지 않지만 방향을 잡아줍니다. 뒷바퀴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추진하는 힘이 있습니다. 사람의 힘을 체인으로 연결받아 앞으로 나아갑니다. 선배와 후배는 이와 같습니다. 선배들이 이끌어 준 길을 따라 후배들이 밀어주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선배가 갈 길의 방향을 잡아주고 후배는 땅을 박차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앞과 뒤의 관계이지만 동행하는 것입니다. 함께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름다운 동행입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많은 답이 있겠지만 그중의 한 사람은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아닐까요. 우리는 외모가 멋지거나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 중에서 물러날 때 아쉬움만 남긴 사람, 추한 사람,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사람 또한 많이 보았습니다. 하지만 선배님은 그 그림자가 멋지게 드리운 사람입니다. 그림자가 아름답게 비치는 사람입니다. 큰 나무에 그림자가 크게 짙게 드리우며 많은 사람을 감싸 안듯 선배님이 남긴 그림자에 많은 후배들이 영향을 받고 그리워할 것입니다.


선배님 

경작하시는 텃밭에서 작물이 자라듯 이제는 꿈꾸시던 행복이 자라게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퇴직은 ‘다시 태어나는 출생’입니다. 태어나서 인생 1막 60년을 살았으며 이제는 인생 2막 극장에서 다시 출발하는 삶입니다. 아이가 첫 발걸음을 내디디듯 용기 있게 발걸음을 떼시고 행복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인생 1막 보다 더 멋진 인생 2막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떠나시는 걸음마다 꽃길이 되고 행복한 길이 되세요


 - 어느 텃밭에서 그을린 채 막걸리를 드실 모습을 그려보며  후배가 글을 올려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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