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일 많던 날. 베네치아 가는 길.

여행 19일. 이탈리아 9일.

by 어린왕자

2014년 6월

피렌체에서 베네치아로


피렌체를 떠나는 기차 시간은 점심때쯤. 그래서 기차 시간 전까지 잠시 게하 밖에 나가 아르노 강을 따라 걸었어.


아르노 강이 맑지는 않아. 여기도 초록라떼지. 하지만 냄새는 나지 않아서 불편한 건 없었어. 그래서 강과 그 주변에서 사람들이 다양한 여가 활동을 하고 있었어. 배를 타는 사람들도 있고, 농구를 하는 사람들도 있고, 카페에서 차와 함께 강을 보며 여유를 즐기는 이도 있었어.


형이 살 물건이 있어서 여기저기 매장을 다녔어. 그러다 강 주변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어제보다 습도가 점점 높아지는 것이 느껴졌어. 그리고 비 냄새가 강해졌지. 곧 소나기가 올 거 같았어. 그래서 게하로 발걸음을 돌렸어. 잠깐 그전에 매장 한 곳을 더 들리려는 순간 비가 쏟아졌어. 가게 앞에서 비가 줄어들기를 기다렸어. 그러다 비가 조금 약해지자 냅다 뛰었지. 그래도 머리가 다 젖어버렸어.


피렌체


게하에서 다시 씻고 나니 떠나야 할 시간이었어. 그런데 점점 비가 강해지는 거야. 소나기 같았던 비가 굵어져 버렸지. 피렌체의 비 구경하는 것도 좋겠지만 이 비 속에서 캐리어와 백팩을 메고 역으로 가는 것이 걱정이었어. 다행히 역과 그리 멀지 않아 빠르게 갈 수 있었지만 많은 비라 조금 젖고 말었어.


역 입구에는 때이니 만큼 우산 파는 아저씨들이 급 늘었고, 역 안도 사람들이 아주 많았어. 비가 갑자기 와서 그런지 역에 다들 발이 묶인 듯 보였어. 우리도 어디 가지 못하고 점심을 간단히 여기서 먹기로 했어. 역임에도 음식점이 많이 보이지 않아서 맥도널드로 향했어.




맥도널드


안에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조금 망설여졌지만 딱히 선택권이 없었어. 그리고 한국과 달리 정말 패스트푸드라 주문하면 자판기에서 꺼내듯이 조리된 햄버거를 바로 주더라고. 게하에서 다시 씻고 하느라 시간이 빠듯했기에 주문도, 계산도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은 갈 수가 없지.


우선 빈자리를 찾으러 갔어. 사람은 엄청 많은데 다들 테이블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놔두고 가더라. 그나마 깨끗한 작은 테이블이 딱 하나 비어서 그곳에 우선 짐을 놔두었어. 여긴 안전한가 봐. 대부분 관광객이라 서로의 짐을 보호해주는 게 아닐까? 그리고 우리 짐이 커서 들고 가면 줄에서 보여. 그래서 짐을 놔두고 긴 줄에 섰어.


패스트푸드라 줄은 생각보다 빠르게 줄었고, 형은 먼저 받아갔어. 내가 주문한 햄버거는 조리된 것이 없어서 줄 옆에서 잠시 기다리면 금방 나온다고 점원이 말했어. 다른 걸 주문하고 싶었지만 바빠서 그런지 대꾸를 할 수 없게 하더라고. 줄 뒷사람도 급하다는 듯 냅다 낚아채서 그냥 그렇게 멀뚱히 한참을 기다렸어. 나 말고도 같은 이유로 다른 분도 내 뒤에 섰지. 그렇게 한 명 두 명 늘어 새로운 줄이 생겼어.


그러다 나이가 좀 있으신 아저씨가 어디서 나타난 건지 빠른 걸음으로 점원에게 오더니 큰 소리로 따졌어. 그분은 나처럼 따로 줄 밖에 있으신 분이 아니었는데 영어인지 이탈리어인지 너무 빨리 말씀하셔서 잘 모르겠지만 햄버거를 왜 안주냐라고 하는 거 같았어. 점원도 가만히 있지 않고 받아치더라고. 그러다 주방에 있는 햄버거를 가리키며 더 소리 높여 말했어.


그때, 나도 알아챘어. 맞아, 햄버거는 이미 한참 전에 나와있었지만 점원이 신경 쓰지 않은 거였어. 점원이 얼른 미안하다고 하면서 주던데, 아저씨부터 주는 거야. 그리고 내 뒤에 서 있던 사람도 주고. 머야 나는 쌩까나 싶었어 '나도 내꺼는?' 묻자 두 손을 들면서 잠시 기다리라더니 주방에 가서 가져다주더라고. '와!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쏘리쏘리만 반복하더라.


따지던 아저씨가 한마디 더 보태시길래 나는 따지던 아저씨 옆에 일행처럼 서서 항의하는 눈빛을 보내다가 아저씨와 같이 그 자리를 떠났어. 왠지 인종차별인가 싶어서 화가 나서 아저씨 뒤를 이어받아 따지며 점원의 덥수룩한 턱수염을 뽑아버리고 싶었지만 그 시크하던 표정은 사라지고 멘붕 온 표정을 보니, 말자 싶었어. 줄도 엄청 길고, 대리만족을 느낄 만큼 아저씨가 엄청났거든. 그리고 같이 기다리던 다른 분들은 햄버거를 받고 자리를 떠났는데, 계속하기도 그렇잖아?


햄버거를 받고 짐을 놓은 자리로 가자 짐이 없는 거야. 순간 엄청 당황했지만 형이 불러서 자리를 옮긴 걸 알았어. 형은 이미 먹고 있더라고. 형이 '왜 이렇게 늦었냐'라고 묻길래 자초지종을 말해줬더니 '이탈리아 서비스 왜 이렇냐?'라고 했지. 정말 여기 친절한 곳이 몇 군데 없어. 역시 레스토랑 정도 가줘야 하나 싶었어.


그리고 누가 햄버거 싸다고 했냐? 로마에서 먹고 두 번째로, 결코 유럽에서 햄버거가 싸지 않아. 이런 일이 있어서 그런지 유럽에서 맥도널드는 가지 않았어. 맛이나 가격이나 한국이랑 비슷해. 이탈리아는 직접 체험했고, 나머지 국가는 한국인이랑 이야기할 때마다 맥도널드 싸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당했다고 했어. 대부분 대학생들이 돈이 부족해서 맥도널드 갔는데, 너무 비싸서 치즈버거만 먹었다고 한 경우가 몇 번 있었어. 치즈버거는 1유로거든. 즉, 치즈버거만 싸다는 거. 치즈버거만 3개씩 먹었다는 한 한국 대학생 말로는 유럽 여행객을 위해서 치즈버거만 하나에 1유로라고 해. 하루에 3개 아냐. 한 끼에 3개야. 왜냐면 버거가 작아서 건장한 대학생이라면 3개는 먹어야 되거든.


아무튼 햄버거랑 감자를 다 먹으니 비가 점점 거세졌어. 그래서 조금 더 앉아있다가 기차 출발 10분 전에 플랫폼으로 나갔어. 제시간에 기차가 도착해서 비를 맞지 않고 탔어. 그렇게 피렌체를 떠나 다음 장소로 향했어. 피렌체 다음에 봐~~

피렌체 유화




안녕~ 베네치아


피렌체를 벗어나자 비가 오기는커녕 맑아졌어. 심지어 비 흔적도 없었어. 직행은 아니고 중간에 한 군데 정차하는 기차였어. 창밖을 바라보며 두오모와 미켈란젤로 광장에서의 기억들을 떠올렸어. 그러다 잠깐 잠이 들었고 출발한 지 2시간 지나 산타루치아 역(Stazione di Venezia Santa Lucia)에 도착했어.


이곳은 베네치아야. 베네치아를 가려면 비행기도 있지만 기차나 차를 추천해. 왜냐면 Liberty Bridge 통해 바다 위를 지나 베네치아 본섬으로 가기에 마치 다리를 통해 다른 세계로 간다는 느낌이 들거든.


역을 나오면 버스를 타야 해. 베네치아는 평범한 바퀴 달린 버스가 없어. 구시가지에는 도로가 없거든. 대신 특이한 버스가 있지. 그것은 물 위로 다니는 배 버스인 바포레토(수상버스).


역을 나오면 버스 승차권을 파는 곳이 있어. 거기서 내일까지만 머물 예정이라서 24시간 이용권을 구매했어. 즉 하루 동안 아무 때나 탈 수 있어. 주의해야 할 것은 반드시 이용권을 개찰? 개시? 해야 해. 안 그러면 검문 시 벌금 물어야 돼. 역 앞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캐리어를 끌고 탔어. 배가 그리 크지 않았지만 붙어서 타니 제법 많은 사람이 탈 수 있었어.


게하 근처 정류장에 도착해서 캐리어 끌고 가니까 확실히 불편하더라. 한 사람 지나기도 좁은 골목을 캐리어를 끌고 가면 마주오는 사람은 비켜줘야 해. 다행히 사람들이 친절해서 다들 비켜주었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지나갈 수 있었어.


게하에 도착했더니 여기도 오버 북이 되어서 방이 바뀌었어. 스탭들 방이라는데, 그럼 스탭들은 어디서 자나? 우리만 쓸 수 있다고 해서 불만은 없었어.


이곳은 한인 게스트하우스로, 여기 스탭들 너무 어리더라. 가장 나이 많은 직원이 얼마 전 군대 제대했다는데, 뭔가 걱정이었어. 왜냐면 한국에서 들은 바로는 대학생들 알바로 써서 숙식 제공한다는 이유로 최저 인건비도 안 주고 사람을 쓰기에 다들 경험이 적다 보니 문제가 생긴다고 하더라고. 요즘에는 뉴스에도 나서 알 사람 다 알지. 사장은 개입을 안 하는 거 같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 조금 불안했지만 하룻밤만 있으면 되니까 별일 없겠지 했어. 그리고 베네치아 숙소는 물가 때문에 많이 비싸. 그래서 이곳이 좀 싼 건가?


아카데미아 다리




아카데이마 다리 (Ponte dell'Accademia)


게하에 짐을 풀고 바로 밖으로 나갔어. 저녁에 월드컵 마지막 한국전이 있기에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었어. 본섬은 걸어서 충분히 구경할 수 있다고 해서 걸었지만 좁은 골목마다 사람들이 많아서 시간이 부족한 우리에게는 사치였어. 그래서 다시 운하 쪽으로 나와 바포레토를 탔지. 목적지는 산마르코 광장으로 정했어. 베네치아의 중심지니까 들려야겠지.


광장 전 아카데이아 정류장에 내렸어. 지나가다 아카데미아 다리를 보니 풍경이 너무 좋은 거야. 그래서 그곳에 내려 다리 위를 올라 풍경도 보고 사진도 찍었어. 운하 위로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이 보이고, 돔이 엄청 이뻐. 해 질 무렵이라 더 풍경이 예뻤던 거 같았어.


아카데미아에 다리에서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산 마르코 광장 (Piazza San Marco)

구글맵으로 가는 길을 확인하고 좁은 골목을 통해 광장으로 걸어갔어. 여기 집들은 섬 위에 지어진 게 아니라 바다 위에 지어졌어. 그래서 1층이 바다에 잠긴 집 같았지. 문 앞에 계단이 물아래 있거든. 정말 희한한 광경이었어.


그리고 골목에 현대 매장이 있는 게 묘하게 신기했어. 섞이지 않아야 될게 잘 섞여 있다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작은 운하마다 곤돌라들이 다니고 있었어. 배가 검은 색인 건 알고 있었는데 곤돌리에레들이 옷 규정이 있는 건 처음 알았어. 모두 비슷한 티에 검은 바지를 입고 있었어. 선글라스도 아마 세트인 듯.


매장들을 지나다 보면 오래된 고급진 건물이 보여. 그리고 그 건물을 지나갈 수 있는 길(통로)이 있고, 안내판에 광장으로 가는 길이라고 표시되어 있었어. 그래서 그곳을 지나자 산 마르코 광장이 짜잔~ 건물이 따닥따닥 붙어있으니 먼가 비밀통로 같은 느낌이 있었던 거 같아.


곤돌라와 곤돌리에레


그 길을 따라 걸으면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카페 플로리안(Caffe Florian)이 있어. 누가 봐도 엄청 오래돼 보여. 카페 앞에서 실내악 연주가 되고 있어서 지나가는 길이었지만 마음이 평화로워졌어.


그대로 쭉 걸어 나가면 광장의 상징인 산 마르코 성당이 보이고, 그 옆에는 두칼레 궁전이 있어. 성당과 궁전의 모양은 다소 의외였어. 동로마 성당이나 중동의 모스크와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이색적이었지. 나중에 터키 가서 본 아야 소피아랑 색은 다르지만 비슷한 형태로 색은 블루모스크랑 비슷해. 둘이 합쳐놓은 느낌이랄까. 더욱이 사람들 사는 일반적인 건물은 로마나 피렌체에서 봤던 모양과 크게 차이가 없었기에 더욱더 이질적이거나 이색적이었어.

가까이 가보면 성당이 주인공이라 그런지 엄청 화려해. 공사 중이라 한쪽 돔이 비계에 가려져 있는데도 화려함을 자랑했어. 더욱이 장식들이 대부분 고딕 양식 같은데, 너무 화려해서 덕지덕지 느낌까지 날 정도야. 나에겐 투머치였지. 왠지 베네치아 부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었어?


정말 이질적이다 못해 다소 뜬금없다고 생각된 건 그 앞에 있는 종탑이야. 흰색과 회색으로 널찍한 사각형 모양의 건축물들이 대부분인 광장에서 종탑은 붉은 벽돌이고, 혼자 뾰족해. 아마 혼자 따로 만들어졌나 봐. 더욱이 광장 가운데에서 보면 투칼레 궁전을 가리고 있어. 일부러 이렇게 튀게 만든 건지 모르겠어. 감시탑 목적이 큰 건가? 피렌체 두오모와 세트인 종탑을 보고 와서 눈이 높아져서 그럴지도 몰라.


카페 플로리안


두칼레 궁전은 직사각형으로 동로마(비잔틴) 스타일이야. 궁전 앞의 무늬는 동로마를 지나 중동 느낌까지 날 정도였어. 킹보다는 술탄이 살았을 거 같았거든. 베네치아에 킹과 술탄은 없었지만 말이야. 화려한 무늬와 조각들이 반복적으로 디자인되어있어서 화려함과 단조로움의 아름다움이 잘 조화된 느낌이었어. 그리고 먼가 지붕 쪽에는 고딕 양식의 장식들이 있는데, 성당보다 과하지 않은 거 같아 괜찮았어. 특히 하얀색이 정말 마음에 들었어. 이탈리아는 공국과 공화국으로 이루어져서 그런지 궁전이라 불리는 곳들이 번쩍번쩍함이 없어서 엄청 화려하지 않아 좋았던 거 같아. 그래서 광장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축물이었어.


두칼레 궁전


궁전을 따라 해안을 가면 건너편에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이 보였어. 섬 하나에 성당뿐이야. 그래서 섬 전체가 성당처럼 보였어. 다르게 말하면 바다에 떠 있는 성당이라고 할까? 그래서 묘한 분위기가 느껴졌어. 광장에는 이렇게나 사람이 많은데 건너편 섬에 사람이 보이지 않아서 더 그런 느낌이 들었던 거 같아.


해안을 따라 걸어가다 왼쪽으로 유명한 탄식의 다리를 볼 수 있었어. 감옥 가는 길이라 그런가 썩 좋은 느낌은 아니었던 거 같아.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좌) 과 탄식의 다리(우)


벌써 해가 지고 있었어.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보다 일찍 해가 지는 느낌이었어. 서쪽 해안 도시에서 동쪽 해안 도시로 와서 그런가.


어느덧 축구 볼 시간이 다 됐어. 그래서 바로 앞의 정류장에서 바포레토를 타고 게하로 향했어. 배 위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사진을 찍었어. 확실히 대운하 주위에 화려한 건물들이 많이 보였어. 대부분 공화국 시절 부호들의 저택이었다고 해. 당연히 현재 소유자도 부자겠지?


베네치아의 저택




여행에서 별 일


게하로 돌아왔더니 또 방이 바뀌었데. 4인실이지만 우리 둘만 쓴다고 했어. 그리고 짐도 같이 옮겨 놨는데 캐리어 손잡이가 부서졌데? 그때, 하는 말이 '원래 부서진 거 아니었냐'라고 묻더라고. 어이가 없어서 긴 말은 하지 않았어. 손잡이 안 부서져 있었다고, 손잡이도 없이 어떻게 옮겨겠냐고 대답해줬어. 사람 떠 보는 것도 아니고 정말 기분 나쁘더라.


씻고 잠시 쉬다가 게하에서 제공해준 바에 가서 월드컵을 보러 갔어. 결과는 역시나 그렇지. 난 그냥 베네치아 구경이나 할걸. 기분도 별로고 해서 베네치아 골목을 산책했어. 불빛이 물에 비치는 도시 야경은 상당히 이뻐.


산책을 마치고 게하로 돌아왔더니 스탭 한 분이 방에 들어왔어. 내일 아침에 캐리어 가게 가서 새 걸로 바꿔준다고 했어. 그나마 다행이었지. 아직 한 달이 남았는데, 손잡이 없는 캐리어를 끌고 다닐 수 없으니까. 하지만 캐리어가 동생 거라 너무 마음이 그랬어. 뭐라고 해야 되나 싶었지. 거기다 딱 봐도 사장 돈이 아니라 자기돈으로 해줄 거 같았어. 그리고 손잡이 부순 사람은 다른 사람 같은데 말이야. 이래저래 짜증이 나더라.


스탭이 나가고 침대에 앉아 카메라에 사진을 확인했는데, 사진이 없어. 짜증이 더 확~! 피렌체 두오모 오르는 날부터 이틀 동안 사진이 저장되지 않았어. 오늘 조심해야 하는 날인가 싶었지. 하루 동안 별일이 다 있다 생각되더라. 형이 SD카드를 복구해보겠다고 해서 형에게 줬지만 한국에서 돌아와도 사진은 없었어. 카메라를 난생처음 써봐서 이유를 모르겠어. 아마 경고 메시지가 떴지만 몰랐던 게 아닐까 싶어. 다시 피렌체와 베네치아에 올 이유가 생겼다고 형이 위로해줬어.


그리고 잘 시간이 되어서 방에 불을 끄고 눈을 감고는 한참을 생각하는 중에 밤늦게 문이 열리더라고. 이 방에 다른 숙박객이 없다고 들었는데. 본인 휴대폰 불빛에 비쳐 보이는 얼굴로 봐서는 스탭 같았어. 내 위의 이층 침대로 올라가 눕더라고. 아~ 어이없어. 형은 잠든 거 같아 아침에 한 마디 하자고 생각하고 말았어. 지금 큰 소리 치면 숙박객들 다 깰 테고 또 예약을 잘 못 받아서 잘 곳도 없어 들어온 거 같아서 지금 말해봤자 불편하기만 할 뿐이니까 그대로 잠들었어. 정말 오늘 가지가지한다. 유럽에서 가장 힘든 날이었어. 이 날 액댐 해서 '유럽여행을 무사히 재미나게 잘 갔다 왔나 봐'라고 생각해.





여행도 인생의 한 부분이기에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겠지요. 하지만 비를 맞아 젖은 거부터 햄버거 일, 게하에서 방을 두 번이나 옮기고, 캐리어 손잡이가 부서지고, 몰래 방에 들어와서 자고, 카메라에 사진도 없고 이 날은 정말 몰아서 지나간 느낌이었답니다.


정말 화가 나면 목소리가 오히려 낮아지고 차분해지죠. 아마 같이 간 형이 아니었다면 화가 나서 다른 숙소 구해달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리고 햄버거는 모르는 아저씨 때문에 괜찮아졌지요. 사람 때문에 짜증 난 일은 사람 때문에 괜찮아지는 거 같아요. 여행에서 안 좋았던 일은 좋았던 일로 잊어야겠지요.


이 날은 전해드리지 않으려고 했어요. 쓰면서도 기억과 같이 감정들이 떠올라 짜증 나서 쓰다 멈추다 쓰다 멈추다를 반복했답니다. 보통은 머리에서 정리한 후 한 번에 쓰는 타입인데 말이죠. 하지만 첫 말처럼 여행에서 좋았던 일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이런 일도 있다는 걸 알면 덜 황당하고 덜 화가 난답니다. 의외에 상황에 내 손을 벗어났다는 생각이 더 화를 나게 하니까요. 그래서 여행에서 안 좋았던 일들도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다만 안 그래도 긴 글인데 더 읽기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네요. 긴 글에는 재미가 있어야 읽히는 법인데 말이죠. '음 여행 가면 이런 일도 있구나. 나라면 이래야겠다 하면서 읽으면 괜찮지 않을까요?' 하는 짧은 바람입니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는 제 사진으로 돌아온답니다. 제가 찍지 않은 랜드마크는 형 사진을 빌려오겠지만요. 기대해주세요~~

keyword
이전 18화두오모와 미켈란젤로 광장. 피렌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