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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의 언덕의 리스본

여행 32 ~ 33일. 포르투갈 2~3일

by 어린왕자

2014년 7월

포르투에서 리스본(리즈보아)


도미토리가 아니고 호텔이라 너무나 조용해서 편안히 늦게까지 자버렸나 봐. 서둘러 정리하고 체크아웃했어. 다음 장소는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이야.


이번에는 버스를 타고 갈 거야. 포르투갈은 버스가 편리하다고 해. 왜 수도로 가는 직행 기차가 없을까? 난 버스보다 기차가 편한데.


아무튼 버스 터미널은 바로 근처라 금방 도착했어. 왜 유럽의 시외 터미널은 일반 빌딩 같은 곳 안에 있는 건지. 미리 알고 가지 않으면 절대 못 찾을 걸? 대합실도 엄청 작고, 임시 공간 같아서 어제의 화려한 포르투는 없고 시골스러운 포르투가 있었어.


리스본으로 가는 버스는 자주 있어서 쉽게 표를 살 수 있었지. 이곳도 대학생 할인이 있어. 유럽 학교만 되는 건지는 정확히 모르겠어. 우리는 해당사항이 아니라 부럽다고만 생각했으니까 자세히 묻지도 않았지. 직원 아저씨 저희 대학생이 아니니까 묻지 말아 줄래요! 배 아프니까!


30분 정도 시간이 남아, 앉아서 기다리는데 몸상태가 좋지 않았어. 약간 울렁거린다고 해야 하나? 여행한 지 한 달이 넘자 체력이 다 한 건가 싶었어. 그래서 가방을 안고 푹 처져 반수면 상태에 있었어.


출발 시간이 다 되어서 버스를 타러 갔어. 타는 곳 비주얼이 버스 창고야. 상 벤투 역이랑 너무 달랐지. 하지만 버스는 리무진 버스 수준의 신식 고급이라 아주 편했어.


버스가 포르투를 구경하다 이내 시외로 빠져나가자 중요한 것이 생각났어. 휴대폰 배터리를 충전기랑 놓고 왔다는 걸. 아...... 왜 이제야 생각났을까. 내 휴대폰 배터리는 태생적으로 용량이 적은데 어쩌나. 리스본에서 왔다 갔다 비용과 시간을 생각하니 보내줘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 그동안 고마웠어......




안녕? 리스본


리스본까지 거리가 상당해. 3시간 반 정도 걸렸던 거 같아. 리스본 버스 터미널에서 지하철로 갔어. 거기서 포르투와 비슷한 교통카드 viva card를 구매했어. 포르투의 andante 카드와 동일하게 사용하면 돼. 지하철로 한참을 가 헤스타우레도레스 (Restauradores) 역에 내렸어.


게하를 향해 걸어가다 언덕을 오르는 노란색 미니 트램이 발견했어. 깜찍하더라! 부산에도 전쟁 이후에 만들어진 동네들이 이 리스본 지형과 같은데, 이런 게 있으면 얼마나 편할까 싶었어. 몇 년 후에 부산에도 생겼다는 기사를 통해 알게 됐지. 이때는 천천히 올라가는 작은 트램이 귀엽고 오래된 물건이지만 신선했어.


그리고 우리가 이 경사에 캐리어를 끌고 가게 될 거라는 걸 깨달았어. 어릴 적 친척 어른댁에 갈 때마다 짧은 다리로 이와 같은 길을 걸어올라 가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랐어. 귀여운 미니 트램을 타고 싶지만 방향이 달라 더 오래 걸릴 테니 더운 날에 짐 끌고 가야지 어쩔 수 있나. 천천히 걸어 게하에 도착해 간단한 설명과 물 한잔을 얻어먹고 리스본 구경에 나섰어.


리스본 야경




언덕의 리스본

날은 밝지만, 4시간 이동으로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향했어. 이번에는 스테이크 가게로 고고. 언덕길을 따라가 일반 주택들을 지나갔어. 하얀 무채색이 많긴 해도 포르투보다는 훨씬 다양한 색으로 채색되어있었어. 이곳도 빨래를 집 밖에다 널어놓아서 그걸로 이곳은 딸 둘 키우는 집, 부부만 사는 집과 같이 호적 사항을 추측할 수 있었지.


그리고 문 위에 집주소로 보이는 숫자가 보였어. 한쪽은 홀수대로, 반대쪽은 짝수대로 진행되며 적혀있었어. 종종 빈 번호는 집이 없어진 건가? 그리고 좁은 문마다 번호가 있어서 층마다 들어가는 입구를 달리 해놓은 건지 그냥 문마다 다 있는 건지 궁금하고 신기했어.


걷다가 공원이나 골목 끝자락으로 가면 반대편 언덕에 있는 상조르즈 성을 볼 수 있어서 완만한 평지가 아니라 7개 언덕의 도시라는 걸 실감했어.

리스본 거리




셀프(?) 스테이크


15분쯤 걸어가 찾던 스테이크 가게에 들어갔어. 거리 구경하다 지나갈 뻔했지만 특이한 장면에 멈춰 서서 들어가게 됐어. 그것은 스테이크가 돌 위에 구워지고 있는 모습이었지. 한국처럼 불판이 있는 게 아니라 나무판으로 된 1인 상에 달궈진 돌이 있고 그 위에 생고기가 있었어. 고기를 원하는 만큼 익힌 다음, 같이 나온 3가지 소스에 찍어먹을 수 있었어.


유럽에서도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다는 게 좋긴 해도, 난 남이 구워주는 게 좋아. 그리고 돌이 워낙 뜨거워서 너무 금방 익어. 거기다 겉만 빠르게 익으니 굽는 게 쉽지 않았어. 어떤 부위는 너무 타버려서 돌에 눌어붙기까지 했지. 결국 고기는 괜찮았지만 스킬 부족으로 맛을 100% 다 느끼지 못했던 거 같아.


달궈진 돌 위에 익고 있는 스테이크




가장 오래된 서점


식당을 나와 산책할 겸 걸었어. 큰 거리를 따라 언덕을 내려가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인 bertrand를 만났어. 곧 300년이 돼. 어마어마하지. 입구는 작은데 들어가면 엄청 넓어. 안쪽에 건물 하나가 더 있어. 곳곳에 의자가 있어서 앉아 책을 볼 수 있게 해 놨어. 카페도 있고 한국의 대형 서점 같았지.


책은 사지 않고 나왔어. 다양한 언어로 된 책도 있지만 이미 가져온 책도 있고, 책은 밀도가 높으니까 비행기 짐 값을 늘릴 수는 없으니 말이야. 서점 외관이 파란 타일로 이쁘게 장식되어있어서 금방 눈에 띌 거야.


bertrand 서점 입구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

다음으로 근처에 있는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로 갔어. 이 엘리베이터는 무려 100년 전에 언덕 위로 쉽게 오르기 위해 만들어졌어. 그래서 반대로 언덕 위의 카르모 광장에서 구름다리를 통해 엘리베이터로 이동할 수 있어. 우리도 서점에서 왼쪽으로 틀어 카르모 광장으로 가서 구름다리를 통해 갔어.


구름다리에서 보는 쭉 뻗어 있는 리스본 거리는 하얀 돌 위에 주황 모자를 씌워 놓은 듯한 귀여운 모습이야. 다리를 다 건너면 엘리베이터를 감싸며 통로가 되어 있어서 리스본을 전방향으로 둘러볼 수 있어. 저녁때여서 달을 찾다 보니 타구스 강 하류와 강 반대편 건물들이 보였어. 건물이 워낙 작게 보여서 강이 엄청 크다는 걸 느낄 수 있었지. 과하게 보면 바다 건너 섬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개를 조금 돌려보니 언덕에는 노을빛이 반사되고 그 위로 상조르즈 성이 보였어. 엘리베이터 아래에는 직사각형의 거리와 높이가 같은 박스형의 건물로 채워져 있었어. 요즘으로 치면 사무 지역 같아 보였지. 대항해시대의 무역 중심지에 위치한 대기업 같은 느낌이랄까? 집들과 달리 무언가 정돈되고 깔끔한 느낌이 신기했어. 그리고 리스본 대지진 이후에 재건되어서 그런지 포르투에 비해서는 전체적으로 근대적인 느낌이 강했어. 처음 리스본에 왔을 때랑은 다른 느낌이야.


그리고 왔던 구름다리 쪽에는 카르모 수도원이 일부 파괴된 채 그대로 있고, 주위에는 복원 작업을 하는 건지 공사 중이었어. 수도원의 규모가 상당한데 골격만 남은 돔이 엄청났어. 출입이 되지 않는지 사람이 없었어. 나중에 복원되면 한 번 들리고 싶은 곳이야.


카르모 수도원


사진기를 내려놓고 풍경을 감상하는데, 구름다리 아래 있는 거리에서 바이올린 소리가 들렸어. 그 소리의 주인공은 많은 사람들을 모여들게 한 어린아이였어. 기교가 화려하지 않아도 나이에 비해 상당한 실력인 거 같았어. 형도 놀라며 유럽 와서 들었던 버스킹 중에 가장 좋다고 했어. 곡명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바흐였던 거 같아. 멋진 바이올린 연주와 노을 진 리스본은 나에게 은은한 따뜻함을 선사해줬어.


엘리베이터에서 본 리스본


그런데 엘리베이터로 가는 길이 뚜렷이 기억이 나지 않아. 그냥 길을 따라가고 있는데 갑자기 서서 파티하고 있던 옥상 식당이 있어서 깜짝 놀라 사람 사이를 지나갔어. 그리고 구름다리를 거쳐 엘리베이터에 도착했어.


그곳에서 근대의 리스본을 바라보고 반대로 나올 때는 식당을 지나 오래된 중세 시대 아치문 같은 곳을 나오니 작은 카르모 광장이 있었어. 그래서 뭔가 여러 시간대의 다른 곳으로 순간 이동하는 포탈을 타고 갔다 나온 느낌이 잔잔히 남아있어.


엘리베이터에서 본 리스본




알칸타라 전망대


광장 따라 길을 걸어가면 하얀 성 로치 성당(Igreja de São Roque)과 밖에서도 작품이 보이는 미술관이 보여. 하지만 이미 늦은 시간. 굳게 문이 닫혀 있어서 그대로 지나쳐 갔어.


그러다 반가운 트램을 만났어. 리스본에 처음 도착했을 때 언덕을 오르던 그 트램이야. 왔다 갔다 하는 트램은 항상 만차였어. 리스본 언덕은 만만치 않은 거 같아.


오르락 내리락 노란 트램


조금 더 걸으면 탁 트이는 공간이 나와. 알칸타라 전망대. 리스본이 다 보이는 곳으로 산을 깎아 만든 정원에 끝에는 난간대가 설치되어 있어서 리스본 베란다 같았어. 이런 곳이 있었다니 갈 때는 못 봤는데. 확실히 명당인지 대포 렌즈와 삼각대를 설치한 카메라들이 많았어. 나는 삼각대가 없기에 숨 참아가며 찍어야지.


오른쪽 하늘에는 달과 타구스강이 보이고, 왼쪽 끝에는 많은 음식들과 함께 차려입은 사람들이 파티를 하고 있었어. 해가 지면서 하얀 건물들이 붉게 물드고 서서히 지상의 별들이 밝아져 왔어. 조금씩 변하는 광경에 자리를 뜰 수가 없었지. 포르투처럼 언덕과 강이 이루는 풍경과 함께 정말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대도시 풍경이었어.


밤이 될수록 상대적으로 전망대가 더 밝아져 리스본의 야경은 자세히 볼 수 없었던 거 같아. 그리고 왠지 본듯한 풍경에 낯설지가 않았어. 어느덧 늦은 밤 시간이 되어서 게하로 돌아갔어. 어제처럼 아무 생각 없이 왔지만 포르투갈의 또 다른 풍경을 보고 느낀 날이었어.


리스본 베란다




리스본 트램 타기


오늘의 시작점도 헤스타우라도레스 광장. 이곳에서 트램을 타고 코메르시우 광장 앞에 내려 노란 신식 트램을 탔어. 당연히 트램 번호는 기억이 나질 않지. 외관만 기억 날뿐. 옛 트램은 포르투에서 봤던 트램과 같았는데, 신식 트램은 두세 개를 연달아 붙여 놓아 마치 량수가 작은 지하철 같았어. 언덕을 오르던 작은 노란 트램에 비해면 엄청 길어.


코메르시우 광장에 정차한 옛 트램


그런데 목적지가 왜 이렇게 먼 거야. 점점 밖의 풍경이 시골 읍내 같아지고, 트램으로 10분이면 갈 거리로 예상했지만 게하에서 나온 지 1시간이 넘었어. 그러다 줄 서 있는 파란 식당을 봤어. '여기 맛있나 보다'하고 지나가는데, 다음 정거장인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 내렸어. 이곳에서 거의 다 내리기 때문에 놓치지 않고 내릴 수 있었어. 하얀 수도원은 화려한 외관과 크기에 궁전 같아. 눈에 안 띌 수 없어. 반대편에는 넓은 공원이 있어 지나왔던 읍내 같은 거리와는 다르게 관광지 같았지.


우리의 목적지는 제로니무스가 아니야. 구글맵을 확인하고 트램이 왔던 길로 걸어갔어. 설마 했더니 우리가 찾던 곳은 방금 봤던 줄이 서있던 식당이었어.


제로니무스 수도원




파스테이스 드 벨렝 (Pastéis de Belém)


이곳은 식당이 아니라 빵집. 이름은 파스테이스 드 벨렝. 에그타르트의 원조. 제로니무스 수도원의 레시피를 200년 전쯤에 전수받아 판매하고 있다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야.


그때, 날씨가 무지 더웠어. 유럽에서 이런 더위는 겪어 본 적이 없을 정도야. 거기다 햇볕은 얼마나 따가운지 녹아내릴 거 같았어. 이런 상황에 줄을 선다는 건 무리일 거라 걱정했는데, 그 줄은 포장 줄이라 의외로 바로 입장.


포르투갈은 건물 입구는 조그마해. 하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엄청 커. 해리포터에서 나오는 건물들처럼 말이야. 허나 빈자리가 없었어. 그때 직원 한 분의 안내에 따라 더 안으로 들어갔어. 그리고 안에는 더 큰 공간이 있었어.


빈자리에 앉아 에그타르트 4개에 형이 포르투에서 엄청 좋아한 맥주인 슈퍼복(super bock) 한병, 그리고 처음 본 에스프레소 라지 사이즈 2잔을 주문했어. 주문하고 나니 뒤에 조리실을 보였어. 정말 크더라. 엄청난 양의 에그타르트가 있어서 작은 공장 수준이었지. 이만한 사람들의 수요를 감당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겠지 생각했어. 그리고 일부러 유리창으로 안을 볼 수 있게 만든 거 같아. 정말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곳이었어.


파스테이스를 찾으러 가자


조금 있다 주문한 음식들이 나왔어. 에그타르트는 주먹만 한 크기에 검은 캐러멜 소스가 엄청 맛있어 보였어. 라지 에스프레소는 정말 컸어. 일반의 3배 정도? 얼른 사진을 찍고 에그타르트를 한입 베어 먹었더니 엄청~ 맛있어. 그런데 엄청엄청 달아. 너무 단 것을 먹을 때 찌릿하면서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 알아? 옆에 슈가파우더가 있는데 이걸 뿌려서 먹는 건 엄두도 못 내겠더라. 시나몬도 있지만 옛 기억 때문에 별로 좋아하지 않아.


단 기운을 조금 떨치려고 에스프레소를 마셔봤어. 유럽의 에스프레소는 달아. 기본적으로 설탕이 있는 거 같더라고. 그래도 라지 사이즈라 추가로 주는 설탕을 넣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했는데 에그타르트가 달아서 그럴 필요가 없었지. 그래도 이상했어. 에스프레소가 너무 달아. 설탕 커피야. 이내 에그타르트 때문에 그런가 보다 했지. 그래서 에그타르트 베어 먹고 에스프레소 한잔 마시니 말 그대로 꿀맛. 금방 4개를 다 먹어버려서 4개를 추가 주문했어.


그리고 기다리면서 슈퍼 복 맥주를 한잔씩 마셨더니 정말 시원하고 좋더라. 그렇게 입안을 리셋하고 새로운 에그타르트를 맞이했어. 맛있어서 후딱 다 먹긴 했었도 너무 달아서 입안에 단 맛이 사라지지 않았어. 머리가 띵할 정도였어. 당에 취해 버린 거야. 그래서 천천히 에스프레소를 마시는데 이것도 달아달아달아! 스페인에서는 다 짜더니 포르투갈은 다 달아. 단 것을 좋아하는 나지만 예민한 편이라 더 그랬을 거야. 그래도 우리에게는 슈퍼복이 있지. 깔끔하게 맥주로 마무리하니 오히려 에그타르트와 에스프레소가 더 땡기더라. 오묘한 조합의 티키타카였어.



당을 과충전 하고는 길을 건너 공원으로 갔어. 그러다 엄청 큰 베라르도 현대 미술관을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향했어.




첫날은 늦게 리스본에 도착하여 한 것이 딱히 없어서 다음날 이야기를 조금 이어봤어요. 미술관까지 할까 싶었지만 작품 감상평이 길어져 에그타르트까지 전하는 게 좋을 듯싶어요. 그래서 다음 주는 미술관 이야기부터 전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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