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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Jun 06. 2021

Solvent(용매) 그리고 주변 환경과 말

SN1, SN2 반응에서의 용매 효과

시험과 과제에 둘러싸인 화학과


  자유를 얻은 대학 1학년, 공부보다는 에탄올 혼합물과 이성에 대한 탐구에 집중했다. 도서관에 가도 공부와 동기들의 리포트를 복사하는데 30분, 나머지 시간은 수다로 채웠다. 2학년이 되어 현실은 한 발짝 더 다가왔고, 밀려드는 과제와 시험에 일주일 2~3일은 야자를 해야 했다. 하지만 특이한 우리 학번은 1년 동안 동기들과의 친목뿐 아니라 도서관도 친해진 걸까? 도서관에서 지내는 것에 익숙해져 갔다. 그곳에서 조금씩 화학에 재미를 붙이며 자신의 힘으로 학업을 채워갔다. 그리고 휴게실에서 마시는 캔 커피와 수다가 재밌었고, 과제를 마치고 야식을 먹으며 반주하던 밤이 즐거웠다. 그렇게 우리는 그런 대학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옛 말이 있다. 인간의 성장에 주위의 환경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대학교는 자유롭지만 학교이기에 공부가 본업이다. 하지만 공부의 목적은 각자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리고 사람인란 주위 사람들을 따라간다. 


  대학의 목적이 학문으로 출발했지만 현재의 일반적인 목적은 졸업 후 좋은 직장에 취업이다. 그래서 학점 관리에 어학, 자격증, 봉사활동 등 소위 취업 준비를 한다. 하지만 우리 학번은 특이하게 전공 공부에 전념해 하나둘씩 대학원 진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물론 연구원이 되기 위해서는 석사 이상의 학위가 반드시 필요하므로 그런 이유도 있다. 하지만 연구원이란 것도 학문에 흥미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리하여 3학년이 지나자 동기들은 회사 선택 대신 학교 그리고 세부 전공 선택에 대해 이야기하고 같이 고민했다.


  분자 또한 마찬가지이다. 용매, 온도, 촉매 등 다양한 주위 환경에 영향을 받고 적응하고 변화한다. 그중에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심지어 당사자인 분자보다 더 많이 존재하는 solvent(용매)는 의외로 가볍게 여겨진다. 오늘은 이 solvent에 대해 알아보고, 그에 따라 SN1, SN2 반응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자.

(이번 글부터 기초적인 화학 개념 설명이 많습니다. 유의하시고 조금 집중해주세요)




Solvent(용매)란?
 

  초딩때 기억을 떠올리면 설탕물은 용액(solution), 설탕은 용질(solute), 물은 용매이다. 꼬꼬마적 설탕이나 소금이 물에 녹는 모습을 매번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하얀 알갱이가 물과 만나면 서서히 사라지는 장면이 마법 같아 보였다. 화학을 배운 지금도 여전히 신기하다. 소금이 물분자와 만나 Na+, Cl-로 되고, 상호작용하며 균형을 맞추는 것이 말이다.


그림 1. 용질(solute), 용매(soluvent), 용액(solution)의 분자 상태


  화학에서 녹인다(dissolve)는 것은 소금이 물에 들어가 소금물이 되고 소금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만이 아니다. solvent는 서로 뭉쳐진 분자 하나하나 사이로 들어가 상호작용하여 분리시키거나 이들 속에서 분자들이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게 하여 활동성을 높여준다. 만약 집에만 산소가 있다면 특수한 장비가 없이는 밖으로 나갈 수 없고 외부와의 접촉은 현관문, 창문과 같이 외부와 연결된 곳으로만 가능하다. 하지만 산소가 집 외부에도 있다면 밖으로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 것이다. 


  solvent는 이 예시에서 산소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에 따라 분자 사이에 다른 반응물, Nu-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만약 반응물 분자와 Nu-이 고체라면 표면에 있는 분자만이 접촉하여 반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solvent속에서는 분자가 하나하나 분리되어 각자 반응할 수 있다. 이처럼 반응에서 solvent는 아주 중요하며 어떤 solvent를 사용하냐에 따라 반응성과 반응할 확률, 속도에 영향을 주어 경로뿐 아니라 여부도 달라지게 한다.




Solvent의 구분
 

  우선 solvent는 polarity(극성)에 따라 polar(극성)와 non-polar(비극성)로 나뉘며 다시 polar 중에 protic(양성자성)과 aprotic(비양성자성)으로 구분된다.


그림 2. solvent의 구분


polar(극성)와 non-polar(비극성)


  여기서 polarity란 자석의 극 또는 기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극성이 크다'나 '강하다'는 'N극과 S극 차이가 크다' 혹은 '기압 차가 크다'란 의미로, 분자에서는 '전자 분포도 차이가 크다 혹은 +, - charge의 차이가 크다'는 뜻이 된다. 이 차이는 자석 혹은 바람처럼 반대 극과의 반응성을 크게 해 준다.


  우리가 매번 본 C-X의 관계에서도 극성을 가진다. halogen인 X는 C보다 전자(electron)를 끌어당기는 힘인 electronegativty(전기 음성도)가 강하다. 그리하여 C보다 X에 전자가 치중되어있다. 따라서 분리될 때도 X가 전자를 가져가는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공유 결합되어 있더라고 한쪽이 더 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과의 관계도 늘 공평한 것이 아닌 것처럼, 그 공평하지 않는 관계 때문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이 때문에 C는 상대적으로 +, X는 - charge를 띄고 polarity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림 3. polar(극성)와 nopolar(비극성)의 전자 분포


proton(양성자)


  그럼 protic은 무엇일까? 화학에 관심이 있다면 proton(양성자)에서 이 말이 나왔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proton부터 출발해 보자. 


  앞서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였다. 이때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된다. 이 양성자는 + charge를 띄고 중성자는 중성이라 원자핵은 + charge를 갖는다. 추가로 수소(hydrogen) 원자는 중성자가 없고 양성자 1개와 전자 1개로 구성되어있다. 따라서 수소가 전자를 잃을 경우 양성자만 존재한다. 그래서 H+를 양성자라 하고 이를 발견한 러더퍼드는 그리스어로 첫 번째라는 의미의 proton이란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이다. 주위에서 혹시 H+를 보았다면 수소 양이온을 표기하였기보다 양성자라는 의미로 표기한 것이다. 같은 것이지만 말이다. 


protic(양성자성)과 aprotic(비양성자성) 


  따라서 proton에서 ic 성질을 나타내는 어미를 붙여 양성자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이를 풀어쓰면 전자가 풍부한 원자와 결합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전자가 부족한 수소는 전자가 풍부한 원자와 약한 결합을 하는데 이를 수소 결합(hydrogen bond)이라고 한다. aprotic(비양성자성)은 'a'가 있으므로 반대로 이러한 양성자 성질이 없다는 의미가 된다.


그림 4. 수소(hydrogen)의 구성(왼) protic solvent와 X-의 수소 결합


solvent의 구분과 solubility(용해도)


  그럼 가장 익숙한 solvent인 물(H2O)은 어디에 속할까? 우선 물은 산소(O)와 수소(H)로 구성되어 있다. 이때 산소는 수소보다 높은 electronegativty를 가져 전자를 강하게 끌어당긴다. 따라서 전자는 수소보다 산소에 치중되어 있다. 그러므로 polar 용매이다. 그리고 수소가 산소로 인해 전자가 부족한 상태가 되므로 양성자(H+)의 성질을 띤다. 따라서 종합해 보면 물은 polar protic (극성 양성자성) solvent인 것이다.


  하나 더 추가한다면 solvent의 극성에 따라 녹는 여부와 녹는 정도(solubility)가 달라진다. 어릴 적 유유상종(類類相從),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린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분자도 기본적으로 polar는 polar에 녹고 non-polar는 non-polar에 녹는다. 물(polar)과 기름(non-polar)이 섞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이다. 따라서 polar한 물에 non-polar 분자를 넣어봤자 녹지 않으므로 solvent로서 역할을 할 수 없다. 물론 방법은 있지만 그에 따라 반응물에 영향을 주는 변수가 늘어난다.



Solvent에 따른 반응 선호도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용매가 SN1, SN2 반응 선호도에 어떤 영향을 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SN1 반응은 용매의 polarity가 높을수록 유리하고 SN2 반응은 polar aprotic (극성 비양성자성) 용매가 유리하다.


그림 5. SN1과 SN2 메커니즘


  왜?!! 늘 그렇듯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시 앞서 익힌 SN1, SN2 메커니즘과 내용들을 떠올리자. RDS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하였다. SN1의 RDS는 C+가 생성되는 단계로 이 C+가 안정될수록 유리하다. 저번 글에서는 C+주위에 R이 전자를 주기에 상대적으로 안정된다고 하였다. 


  그럼 solvent도 그렇지 않을까? 예로 들었던 polar인 물을 대입해 보자. 물(H2O)에서 산소(O)에 전자가 치중되어 전자가 풍부하다. 그리하여 C+를 둘러싸 전자가 많은 환경으로 만들어주어 상대적으로 안정화시켜준다. C+ R로 인해 비어있는 감정을 덜 느끼듯이, solvent가 C+의 빈 마음을 일부 채워주는 것이다.


그림 6. polar protic (극성 양성자성) solvent와 이온의 상호 작용


  그럼 SN2 반응에서 같은 polar지만 protic solvent는 왜 불리할까? protic 용매는 전자가 부족한 H+과 같은 성질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전자가 풍부한 Nu- 이런 solvent의 수소에도 전자를 주게 된다.(그림6) 즉, solvent에 둘러싸여 안정화된다. 


  그런데 SN2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Nu-의 nucleophilicity(친핵성도)이다. 새로운 이성인 Nu-의 nucleophilicity를 떨어뜨렸으니 C-X의 사이를 파고들지 못한다. 혹은 Nu-에 다수의 H2O들이 관심을 보이므로 C까지 가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aprotic이라면 Nu-에 대한 영향은 없다.(그림 7) 따라서 aprotic 용매에서 상대적으로 더 강한 nucleophilicity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림 7. polar aprotic (극성 비양성자성) solvent와 이온의 상호 작용


  이처럼 solvent에 둘러싸여 상호작용하는 것을 solvate(용매화)라 한다. 따라서 polar protic solvent는 + charge ion (양이온, cation)과 - charge ion (음이온, anion) 둘 다 solvate 하고, polar aproic solvet는 + charge ion만을 solvate 하고 - charge ion은 solvate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SN1 반응에서 중요한 cation 생성에는 모든 polar solvent가 유리하지만 Nu-의 nucleophilicity가 중요한 SN2 반응에서는 polar solvent 중에 aprotic solvent만이 유리하다.



solvent와 사람들의 말, 소문 그리고 언론의 유사성


  solvent처럼 인간사회에서 사람들과 결합되어 있지 않지만 가장 많고 가장 영향받는 건 무엇일까? 그건 바로 '말'이다. 남들, 가깝지도 않은 사람들이지만 다수가 하는 말은 귀를 기울이게 되고, 신뢰하게 된다. 그로 인해 당사자들과 그들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소위 평판이라는 것으로 사람의 가치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 결과로 대학 시절, 주위 사람들의 말에 의해 혹은 소문에 의해 만나고 헤어지는 연애사를 보거나 들었을 것이다. 좋은 결과도 있지만 나쁜 결과도 있다.


  더 크게 보자면 대학시절, 나와 주변은 대다수가 대학생이었다. 그래서 대학생들이 하는 공부, 알바, 연애, 미래들을 주로 이야기했다. 친구들을 만나면 자본주의, 정치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지만 다른 세대와 다른 집단들의 생각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대학생 집단이라는 고체인 것이다. 다른 집단과 혼합되기 위해서는 solvent가 필요하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 생각을 쉽게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언론이다.


  어떠한 상황에 SN2 반응을 하여 빠르게 문제점인 X를 제거하고 Nu로 대체해야 한다는 의견이 수렴되어 일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solvent가 polar aprotic이라면 반응이 빠르게 진행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Nu-이 빠르게 들어오고 싶어도 solvent에 의해 Nu-의 힘이 빠져버린다. 


  언론은 solvent처럼 우리와 바로 결합되어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대하게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그래서 소위 힘 있는 자들은 이 solvent를 조작하여 자신의 영향력을 직접 보이지 않고도 당사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Nu-이 충분히 강하다면 SN2 반응이 혹은 C+가 solvent에 영향 없이도 충분히 안정될 수 있다면 SN1 반응이 결국 일어난다. 다만 천천히 조금씩 일어날 뿐이다. 대부분 반응물이 반응하여 그들이 변할 뿐 solvent는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solvent의 영향력은 반응물이 느끼는 거리보다 크다. 때론 solvsis(가용매 반응)처럼 solvent가 Nu- 되어 직접 반응에 참가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평소 산소를 의식하지 못하듯이, 반응식에서 solvent 표기를 잊듯이, 사람들의 말과 언론에 둘러싸여 있지만 크게 의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영향력은 대단하며 실생활에, 반응에 결과를 바꿀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 


  그래서 흔한 것이라고, 가벼운 것이라고 해서 쉽게 생각하지 말고, 쉽게 판단하지 말고, 쉽게 선택하지 말고, 유심히 생각하고 정확히 판단하여 선택해야 한다. 그것으로 나와 우리의 인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Chemistry And Life. 2021, 1, 6-8



Clayden, Greeves, Warren and Worthers Organic chemistry, Oxford University Press(2001), p332~334, 428~429

Francis A. Carey organic chemistry』, 유기화학교재연구회 공역, 자유아카데미(2004), p376~379



solventless(용매 없는)


  반응이 끝나면 solvent 속에서는 결과물(product)뿐만 아니라 남은 반응물, 부산물, 촉매 등이 혼합된 상태가 됩니다. 그리고 필요한 결과물만 분리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버려집니다. 그로 인해 환경적인 문제가 발생하지요. solvent는 양이 가장 많으므로 분리하여 재활용할 수도 있지만 생산 비용이 더 쌉니다. 종종 뉴스에서 불법유출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래서 solventless(용매 없는 반응)라는 분야가 연구되고 일부 반응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solvent가 없다면 환경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이득이기 때문이죠. 또한 solvent를 제거나 분리하지 않고 계속 사용하는 반응도 있습니다. 또한 쉬운 방법으로는 결과물과 solvent만 남는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결과물을 분리 후 그대로 사용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쉽지 않으니 절대다수 반응에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장점이 더 많아 계속 연구되고 있습니다. 모두에게 이로운 것을 찾는 것도 학자의 일이니까요.



  오랜만에 글을 보여드립니다. 지웠다 섰다를 정말 많이 반복했어요. 어려운 것에서 쉬운 것으로 넘어간다고 생각했는데 화학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쉬운 것이 어디 있겠어요? 어떤 것이든지 처음 접하는 것은 쉽지가 않지요. 그리고 글처럼 solvent에 익숙해져서 간단히 설명하는 것으로 구상을 마쳤는데 막상 쓰다 보니 이렇게 많은 기본적인 개념까지 설명해야 가능한 존재였어요. 새삼 기본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사실 다른 글도 구상하고 있어서 더 걸린 것도 있습니다. 


  덤에 썼던 solventless도 빼버릴까 싶었지만 사고의 전환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학부생 때는 solvent는 산소처럼 가볍게, 당연하게 여겼어요. 하지만 대학원생이 되고 solvent가 반응의 여부를 좌우한다는 것을 직접 느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지요. 그런데 그런 solvent 없이 한다니 새로웠고 저에게 자극을 주었어요. 연재 주제와 관련이 크지 않다고 생각해 정보만 전해드렸어요.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이에 관련된 이야기도 해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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