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1학년, 전공 수업이라고는 일반화학과 실험뿐이다. 나머지는 필수 교양으로 채운다. 화학을 배우고 싶어서 입학했는데 일반화학뿐이라니. 하지만 실망할 틈이 없다. 일반화학이 가장 어렵기 때문이다. 왜냐면 유기화학, 무기화학, 분석화학, 물리화학 등 관련된 기초 내용이 다 들어있다.
머리말에 논했듯이 대학 오면 고등학교 때 배운 화학을 머릿속에서 지우라 한다. 그러니 이때까지 배운 지식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방해다. 거기다 기초는 학문, 운동, 음악, 어떤 분야이던지 재미가 없다. 그러니 어려울 수밖에. 하지만 잘해놓으면 이후 전공들을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실질적으로는 자격증을 따기 쉽다. 화학은 산업에 광범위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많은 전문 자격증에 도움이 된다. 물론 난 없다.
일반화학이 어렵다고 하지만 그래도 기초고 1학년이다. 그래서 열심히 하기보다는 논다. 하지만 2학년부터는 반대로 교양은 0~1과목뿐이고 나머지를 전공으로만 채운다. 이제 노는 시간은 끝이다. 한 학기에 3번 시험 치는 과목들이 많기에 벚꽃 필 무렵부터는 거의 매주 시험이다.
그중에 유기화학 수업은 누구나 화학이라면 떠올리는 구조식을 그리는 시간으로 이것을 토대로 화학반응에서 메커니즘을 그린다고 표현한다. 비전공자 말로는 외계어, 상형문자를 쓴다고 하거나 그림 그린다고 하는 과목이다. 그래서 드디어 화학을 배운다는 느낌이 난다.
하지만 바로 그리지 않고 다시 산성도, 탄소의 결합 종류, pKa, conjugation 등 기초적인 개념을 다시 익히고 초딩 때부터 배우는 산염기 반응을 지나 그럴듯한 전문가 냄새가 나는 반응들이 나오는데 그게 SN1 반응과 SN2 반응이다. 전문가 냄새는 나지만 시작이기에 어렵지 않다. 그래서 첫 번째 이야기는 이 SN1과 SN2로 시작해 관심을 끌려한다. (여기서 N은 아랫 첨자로 표기해야 하나 브런치에서 첨자가 되지 않아 그대로 표기하였습니다. 또한 이후 +, -도 마찬가지로 윗 첨자 표기하지 못했습니다.)
SN1과 SN2란?
여기서 SN은 Substitution Nucleophilic (친핵성 치환)을 뜻한다. 그리고 1과 2는 rate-determining step(RDS, 속도결정 단계)에서 작용하는 분자의 숫자를 의미한다. 말 그대로 살펴보면 Substitution(치환)은 대체, 있던 것을 새로운 것으로 바꾼다는 명사이고, Nucleo - philic은 핵을 좋아하는 뜻의 형용사이다. 이들을 합쳐 놓으면 '핵을 좋아하는 물질이(로) 바뀌는 반응'이라는 말이다.
그럼 핵을 좋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속도결정 단계는 무엇일까?라고 궁금해지면 이과생이겠지? 하지만 문과생들에게는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로 이런 의문조차 들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처음부터 파고들면 너무 어렵다. 그래서 이 부분은 다음 시간에 자세히 설명하고 SN1과 SN2을 이해할 정도만 알아보자.
다소 전문적인 추가 설명이 있겠으나 이 시간에는 완전히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오늘은 용어를 말 그대로 받아들이자. 어릴 때 단어를 문자 그 자체로 배우듯이 말이다. 그래도 길지 않으니 집중하자.
단순히 설명하자면 nucleophile(친핵체)란 (+) charge를 따라가는 분자, RDS(속도 결정 단계)는 가장 중요한 순간(Romance determining step, 연애 결정 단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SN1반응과 SN2반응의 메커니즘은 그림 1과 같다. 이때 C는 탄소, X은 Halide로 가글에 포함되어 있는 F(불소), 수돗물에 포함된 Cl(염소), 빨간약의 I(요오드)와 같은 할로겐족을 말하며, R은 alkyl, aryl로 탄소와 수소로만 이루어진 화합물을 말한다. 그리고 Nu은 앞서 말한 nucleophile이다. 여기서 색이 표시된 C, X, Nu의 이동을 중심적으로 보면 된다.
그림 1. SN1 반응과 SN2 반응
메커니즘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왼쪽의 출발 물질(Starting mertrial)과 화살표 가장 끝인 오른쪽 아래의 생성 물질(product)은 두 반응 모두 같다. 다만 가장 큰 차이점은 RDS(속도결정 단계)에서의 상태이다. SN1의 RDS는 C에서 X가 분리되어 하나의 자리가 비며, 이때 X가 전자를 하나 가져가 (+) charge 상태가 되는 단계이다. 이 C의 상태를 carbocataion(탄소 양이온)이라 하고 매우 불안정한 상태이다. 이후 빈자리를 Nu-가 들어와 결합을 하는 것이다. SN2의 RDS는 SN1과 달리 X가 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Nu-가 C로 들어와 X와 Nu-가(이) 둘 다 어중간하게 결합된 상태이다. 이후 더 강한 Nncleophile(친핵체)인 Nu-가 C와 결합하고 X는 분리된다.
간단히 말해서 C를 중심으로 SN1은 RDS에서 X, 즉 1 분자만 반응하고 SN2는 RDS에서 X와 Nu, 즉 2 분자와 반응하는 것을 뜻한다.
화학반응과 연애
서론에서 말했듯이 이 반응을 배운 것은 대학교 2학년, 21살이다. 연애를 한창, 열심히 할 때이다. 고딩때부터 연애해온 커플부터 한 학기에 몇 번씩 애인이 바뀌는 사람, 썸만 있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애인이 바뀌는 과정은 2가지뿐이다. 눈치 빠른 사람은 알아챘겠지만 앞의 반응과 조금 비슷하지 않은가?
자, 여기서 반응을 시작하기 전 C를 주인공으로 X가 애인, Nu-가 새로이 다가오는 이성이라고 비유하면 애인과 헤어져 관계가 완전히 끊어진 후, 새로운 이성이 애인이 되는 상황을 SN1, 애인이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이성을 만나 애인이 바뀌는 상황을 SN2라고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위와 같은 반응이 분자 간의 상호 작용이라면 인간관계는 인간 간의 상호 작용이다. 인간도 분자로 구성되어 있으니 비슷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다른 반응도 다른 상황에 비슷한 부분이 있으나 SN1과 SN2는 꼭 21살 때의 본 사람들의 연애 방법이랑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 2. SN1 반응의 에너지 변화
그림 3. SN2 반응의 에너지 변화
그럼 이와같이 분자들이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Nncleophile를 비롯한 주어진 환경에서 더 안정된 분자로 되기 위해서이다. 그에 따라 분자는 SN1 반응이라면 그림 2와 같이, SN2 반응이라면 그림 3과 같이 에너지가 변한다. 그림과 같이 두 반응의 에너지 변화는 다르나 RDS에서 가장 에너지가 높은 상태가 된다. 이때를 transition state(전이 상태)라 한다. 이는 앞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이제 연애 시점에서 보자.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하지만 바뀌는 환경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많이 불안정해진다. 사람이 연애할 때 가장 에너지가 높아 불안정할 때가 언제인가? 만남과 헤어짐이다. 그 불안정을 해소하고 안정되고 싶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같은 분자라도 다른 경로로 반응하는 이유는 Nu-의 반응성이 가장 큰 요소이다. 하지만 X를 비롯한 C와 결합되어 있는 원자(R, H), 분자들보다 많은 용매, 그리고 촉매, 온도와 같은 주위 환경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반응은 천천히 미미하게 진행되고 심지어 진행되지도 않는다. 이것도 참 비슷하지 않은가? 둘의 관계에서 당사자인 둘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가족, 친구, 생활환경, 사고방식, 금전적, 시간적 여유 등 주위 환경이 둘의 관계의 진행 속도 혹은 지속 여부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도 말이다.
그림 4. SN1과 SN2의 차이
이 많은 요소, 변수들 중에 가장 중요한 C와 X만을 두고 이야기하자면 SN1은 C와 X의 결합이 끊어져 C의 한자리가 빈 catation 상태로 불안정한 상태가 된다. 그전에는 약한 Nncleophile은 C와 X 사이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런데 이 불안정한 catation 상태가 되면 약한 친핵체라도 다가오기만 한다면 어렵지 않게 C와 결합이 가능하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닌가? 누군가 옆에 있을 때보다 없을 때 더 가까워지기 쉽다. 원자들은 룰대로 움직이는데 마치 사람의 마음과 같이 움직이는 건 마음도 그와 같은 게 아닐까?
하지만 사람은 세상의 99%가 아니라고 해도 마음이나 직감을 쫓아 1%로 일반적인 선택과 다른 선택을 하는 소수의 사람이 있다. 그럼 분자는 아닐 거 같은가? 분자도 마찬가지다. 같은 분자도 99% SN1 반응이 일어나지만 1% SN2 반응이 일어날 때도 있으며 심지어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분자도 있다. 알면 알수록 비슷한 부분이 더 많다는 건 나만 느끼는 걸까?
그 사람의 주위를 알면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다.
다른 요소들은 다음 편에서 자세히 이야기하자. 이왕 화학을 구경하는 김에 기본적인 건 알면 더 재밌고, 이해와 공감이 쉬울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요소들을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이 더 선호되는지 알 수 있다. 그 사람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주위 환경을 알 수록 그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했는지 이해할 수 있듯이 말이다.
20대의 연애는 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당시 연애 이야기를 다른 때보다 많이 했던 거 같다. 그중에도 헤어질 때의 예의라고 해야 하나? SN2 반응과 같은 일은 무례하고 상대에게 더 큰 상처를 준다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뭐, 지금도 SN1과 SN2반응 중 X의 입장이라면 SN2가 더 상처받겠지만 헤어짐이란 어떠한 경로를 거치든 늘 아픈 법인 거 같다. 결국 앞의 반응식처럼 시작 물질(Starting mertrial)과 생산물질(product)은 어떤 경로를 거치든 같을 뿐이다.
혹시 만남을 계속 지속하고 싶은가? 그럼 전이상태까지 에너지를 올리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절대 반응은 일어나지 않는다. 첫사랑과 영원한 사랑을 나누는 자도 있지만 모든 이가 첫사랑과 영원히 함께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어떤 분자들은 반응이 진행된다. C만 새로운 Nu를 만나 좋은 거 같은가? 아니다. X는 C와 분리될 때 C가 가지고 있던 전자 하나를 가져간다. 그래서 X-가 되고 혼자이나 전자를 가득 채운 상태가 된다. 이로 인해 C+보다, 본래의 X 원자보다 상대적으로 안정하며 다른 C+는 물론 Li+, Na+ 등등 다른 분자와 쉽게 결합할 수 있다. 결국 C가 Nu를 만나듯, X도 다른 원자, 분자를 만나게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럴 때는 쉽게 말할 수 있게 되더라. 이번에는' SN1냐? SN2냐?' 그리고 '그 경로가 어떻든 이번에도 예쁜 연애, 행복한 사랑을 해.'라고.
Chemistry And Life. 2021, 1, 1-2
Ref.
Clayden, Greeves, Warren and Worthers 『Organic chemistry』, Oxford University Press(2001), 411~414
Francis A. Carey 『organic chemistry』, 유기화학교재연구회 공역, 자유아카데미(2004), p355~372
그림을 수정하고 글을 몇 번이나 읽었어요. 이 정도면 충분할까? 이해할 수 있을까? 공감할 수 있을까? 라면서 계속 고민했어요. 늘 하는 고민이지만 좋은 글을 쓴다는 건 어려운 일인 거 같아요. 부족한 글이지만 자그마한 지식과 재미가 되길 바라봅니다. 그리고 오늘은 화학반응이라는 게 이렇게 비유가 가능하구나, 그리고 흥미를 느낄 수 있다면 충분할 거 같아요. 다음 글부터 이 반응을 토대로 부족한 화학 개념과 지식을 채워나갈 거예요. 글에서 논했던 것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시작할 계획이에요. 그럼 왜 이런 경로로 진행되는지 알 수 있답니다. 얘는 이렇게 생겨서 이렇게 행동하는구나라고요. 그러니 이번 글이 괜찮았다고 느끼신다면 다음 글도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