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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Nov 22. 2021

일식과 월식 그리고 지식

#앎으로서의 변화, #지식의 영향, #지식과 감정

 금요일 긴 월식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녁 하늘을 올려다보며 신비한 자연현상을 즐겼지요. 요즘은 망원경이 없이도 유튜브로 아주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현대에는 가끔씩 찾아오는 우주 이벤트로 여기지만 오랜 과거에는 우리처럼 여유롭게 볼 수 있는 즐거운 이벤트가 아니었습니다.



두려움


  고대 사람들은 해가 떠 있는 시간에 밖에서 활동하고 해가 지는 시간에는 실내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매일 세상을 밝게 비춰주는 해와 달이 어둡게 변하여 세상이 어둠으로 물드는 자체가 사람들에게 막연한 두려움을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각을 많은 부분에 의지하는 인간에게는 어둠은 본능적인 두려움이니깐요. 더욱이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을 조절할 수 없으니 현재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미래에는 일어날 거라는 불안이 생기게 되지요. 미래의 불안은 사람들을, 문명을 움츠려 들게 하였습니다. 중세 시대까지도 불길한 징조로 생각되어 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도 했지요. 모른다는 것은 두려움, 불안으로 연결됩니다.



당연함


  시간이 지나 천문학과 수학이 발전하면서 반복되는 자연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사람들은 해가 아침에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듯이, 달이 한 달 주기로 모양을 달리하듯이 일식과 월식은 자연스럽고 반복되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에는 시작하는 시간에서 끝나는 시간을 초 단위로 예측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무지에서 오는 두려운 대상이 아니게 된 것이죠.



일식과 월식이란?


  그럼 이참에 일식과 월식을 조금 더 살펴볼까요?


  일식은 지구와 해 사이에 달이 들어가 해를 가리는 현상을, 월식은 해와 달 사이에 지구가 들어가 해를 가리는 현상을 말하지요. 이름대로 말한다면 달이 해를 가리는 것을 일식, 지구가 달을 가리는 것을 월식이라 합니다.



일식과 월식은 매달 일어나지 않는다.


  이는 해 주위를 지구가 공전하고, 지구 주위를 달이 공전하기에 가능한 현상입니다. 그렇다면 그믐달이 뜰 때마다 일식이, 보름달이 뜰 때마다 월식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매달 일어나지 않지요. 그 이유는 달이 지구를 공전하는 궤도(백도)가 지구가 해를 공전하는 궤도(황도)보다 약 5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죠. 즉 해, 지구, 달이 서로 딱 맞게 일직선에 놓이는 현상이 드물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지구도 자전하기에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보기가 어려운 것이죠. 일식이라면 낮이어야 하고, 월식이라면 밤이어야 볼 수 있을 테니까요.



월식은 일식보다 자주


  그래도 부분만 가려진다는 부분 일식과 부분 월식은 꽤 보셨을 겁니다. 하지만 완전히 가려진다는 개기 일식은 평생 한번 보기도 힘들지요. 좁은 지역에서만 관측이 가능하기에 개기 일식 보러 가는 해외여행상품이 있을 정도로 귀한 구경입니다. 그에 비해 개기 월식은 조금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왜냐면 지구가 달 보다 크기 때문이죠.



지구와 해 사이에는 금성, 수성도 있다.


  또한 지구와 해 사이에 달만 있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수성과 금성도 있지요. 하지만 수성과 금성으로 인한 일식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거리와 크기가 맞지 않기 때문에 해를 완전히 가릴 수 없습니다. 신기하게도 해와 달의 크기 비와 거리 비가 거의 비슷하기에 해, 달, 지구의 관계에서만 일식이 가능하지요. 조금 편안하게 말을 한다면 달이 해를 딱 가릴 만큼의 크기이고, 거리에 위치해있다는 것이죠. 따라서 달이 지구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기에 오랜 시간 뒤에는 개기 일식을 볼 수가 없습니다.



변하는 일식


  또 그와 비슷한 이유로 개기 일식을 보기 힘들지요. 달의 공전 궤도는 완전한 원이 아니라 타원입니다. 그래서 지구 혹은 해와의 거리가 변하지요. 그에 따라 해를 완전히 가릴 수 없어 달이 해안에 갇혀 있는 형태를 가질 때도 있습니다. 그것을 금환일식이라고 부릅니다. 마치 금색의 고리로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요. 말 그대로 달이 미쳐 가리지 못한 해의 테두리만이 금색으로 밝게 빛나기 때문입니다. 순우리말로 한다면 금고리 해(가림)라고 할 수 있겠네요.



붉은 달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리면 개기 월식에는 일식과 달리 주인공인 달이 보입니다. 보통 때와 다른 어두운 붉은 달을 볼 수 있지요. 왜 일식과 달리 달이 보이는 걸까요? 달은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실 겁니다. 우리가 보는 달 빛은 태양빛을 반사한 빛이죠. 붉은빛은 해의 노을빛과 같은 현상입니다. 지구의 대기를 통과한 빛 중 파장이 짧을수록 많이 산란되므로 파장이 긴 붉은빛만이 남아 달에 도달하여 다시 반사되어 지구로 도달하기에 우리는 붉은 달을 보는 것이죠. 월식에는 햇빛이 지구를 거쳐 가기에 약한 붉은빛만이 반사되어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신비함


  조금 더 알아보니 어떠한 느낌이 드시나요? 당연하기도 하지만 신기하지 않나요? 단순히 자주 볼 수 없는 거대한 이벤트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우연의 산물이라고 하기에 아름답고 신기한 현상입니다. 더 나아가 우주의 경이로움도 느낄 수 있지요. 그래서 과학이 발전한 현대라도 사람들이 소원을 비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고 보니 이유는 다르지만 좋은 미래, 행복한 미래를 바라는 의도는 과거 하늘에 지내는 제사와 같을지도 모르겠네요.



지식


  사람은 무지에서 오는 불안과 그로 인해 조절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려움의 대상에 대한 지식을 가짐으로써,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것을 인지함으로써, 자연스러움이 된다면 불안과 두려움은 사라지지요. 그렇다고 반드시 안다고 해서 감정에 대한 자극이 무뎌지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신비함이나 경이로움을 가질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지식이란 단순히 앎과 물질의 용이성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안정도 주게 됩니다. 신체의 편의성뿐만 아니라 정신의 편의성도 주는 것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모르는 것에 호기심을 가지며 불안을 해소하고 안도하며 기쁨을 느끼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로스 주기


  사로스 주기는 약 18년 11.3일(6585.3213일)입니다. 이는 같은 모양의 일식과 월식이 되풀이되는 기간을 말합니다. 이를 계산한 이는 고대 바빌로니아인입니다. 과거 인류도 호기심에 대한 본능이 있었고 그에 따라 일식과 월식은 반복되는 자연현상이라는 것을 2500년 전에 알고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일식에 맞추어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는 일식이 언제 일어나는지 알아야 가능합니다. 일식과 월식은 보통 1시간 남짓 동안 일어나지요. 왕이 직접 하는 국가적인 행사를 1시간 만에 준비할 수는 없습니다. 간혹 사극을 보면 천문관이 예측을 잘못하여 문책을 받는 장면들이 종종 등장하곤 합니다. 이미 많은 문명에서 일식과 월식은 예측할 수 있는 자연현상이었던 것입니다.



지식의 독점과 감정의 이용


  사로스 주기로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시지 않나요? 천문학의 발달이 현대 수준에 이르지 않았기에 일식과 월식의 정체 및 의문점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대비할 수 있다는 것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상당히 줄여줄 수 있지요. 그런데 일식과 월식을 정확히 계산할 수 있음에도 두려움과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요?


  과거, 왕정에서는 해는 왕을 상징하기에 왕이 어둠에 가려진다는 것은 좋지 않은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끝이 아니지요. 왕정에서 통치자는 곧 국가이기 때문에 국가의 불안은 백성의 불안이 됩니다. 그리하여 이를 정확히 예측하여 나쁜 것을 막는 것이 국가를 이끄는 왕의 소임이었죠. 그렇기에 정확히 예측한다면 하늘을 읽을 줄 안다는 왕의 능력을 보이며 백성에게 안정감을 주지만 그 반대는 더 큰 불안감을 주게 됩니다.


  과거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소수인 지식인층(왕족, 귀족)들의 지식 독점입니다. 그리하여 교육받지 못한 대다수 계층들은 일식과 월식이 반복되는 자연현상이라는 것을 몰랐지요. 그들은 무지로 인해 두렵고 불안한 감정을 가지게 되고 왕은 독점한 지식을 통해 백성의 불안을 해소해주어 통치에 우위를 지킨 것이죠.  지식을 통해 다수의 감정을 조절, 이용한 것입니다.


  현대에 일식이나 월식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없는 것은 지식의 전달, 즉 교육때문입니다. 아직도 지식의 우위가 있지만 통치자들을 신의 대리인으로 생각하지는 않지요. 지구와 달은 자전과 공전을 하고 그에 따라 단지 달의 그림자 속으로, 지구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라는 단순한 지식을 모든 사람들이 앎으로써 말입니다.



지식이란?


  과학적 사실이 이렇게 생활의 편의성 혹은 과학만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감정, 더 나아가 사회 체계까지 영향을 줍니다. 어떠한 사실은 개인에서 출발하지만 지식으로 만드는 것은 문명 혹은 인류입니다. 그렇기에 과거 문명에서 지식의 축적을 어떠한 것보다 중요시 여겼으며, 지식의 전달이 끊겼을 때 암흑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앎이라는 것을, 지식이라는 것을 조금 더 소중히 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자신만이 아니라 같이 알고, 알아갔으면 합니다.


  어떠한 사실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대뇌 피질에 새기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감정으로 느끼며, 인식의 다양화와 전환으로 이끌어 행동의 변화에 이르러 생이 풍요로워지는 것이니깐요.




  어릴 때 배운 자연현상을 나이가 먹어서도 신비하게 바라보는 것에 출발하였습니다. 심지어 학자들도 신비하고 즐겁게 현상을 바라보며 즐깁니다. 학자들이라고, 알고 있다고 해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더 느끼는 감정이 많을 때도 있지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지만 아는 만큼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면서 안다는 것에 그치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많은 부분들이 아는 것에서 시작하니깐요.


  쓰다 보니 더 장황해지는 거 같아 뒷부분은 날려 버렸습니다. 이미 장황한 거 같기도 하고, 충분히 전달될 수 있을 거 같아서요. 모두 아는 것을 느끼며, 즐기며, 행동해보세요~^^


  그리고 은은한 드뷔시의 달빛과 들으며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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