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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Mar 20. 2022

탈진실과 지식의 가치

#탈지식, #지식 경시, #지식의 필요성

탈진실


  현대에는 정보의 습득은 쉬우나 많은 정보량과, 고도화된 거짓으로 진위 파악은 더 어려워졌지요. 그런데 현대인들의 시간은 촉박하고 그런 상황에 빠른 결정들을 강요받습니다. 그러니 정보의 진위 파악보다는 빠르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쉽게 택하게 되었죠. 결국 진실을 찾는 것에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객관적 사실과 진실은 사고와 많은 사람들과의 공동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입니다. 그리고 인류는 오랜 시간 생존을 통해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DNA에 새기게 되었죠. 그래서 본능적으로 진실을 알고 싶어 하고, 판단과 예측의 근간으로 삼습니다.  


  여기까지 앞의 글에서 이야기한 탈진실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 속에서 진실의 가치와 중요성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많은 정보들과 고도화된 거짓이 떠돌아다니는 세상에서 객관적 사실과 진실을 보다 쉽고 빠르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바로 지식입니다.


 

정보와 지식의 차이

 

  쉽게 정보를 얻는다는 것은 쉽게 지식을 얻는다는 말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죠. 아주 포괄적인 단어인 지식은 단순한 정보와 다르게 표현하지요. 다양한 정보를 인식하고 활용하여 사고, 판단하기까지 이르는 것을 지식이라 합니다. 역사에 관한 정보가 많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을 많이 알고 있는 것에서 그치겠지만 역사에 관한 지식 많다고 한다면 정보 간의 인과관계까지 알아 역사의 흐름을 알고 그것을 미래에도 비교, 적용시킬 수 있는 정도의 의미가 되겠지요.


  요즘 태종 이방원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습니다. 태종의 일대기는 많은 작품 속에서 표현되어 상당히 유명하지요.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나 조선 건국에 이바지하고 왕자의 난으로 실권을 잡아 왕이 되었고, 아들인 세종에게 선위 한 것까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정보라면 그것을 통해 이방원의 의도와 주목적을 알 수 있겠죠. 조선이 왕권 중심의 중앙집권 국가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 권력을 나누어 가진 자들을 칼로써 제거하였으나 자신은 국가의 이념인 유교에 어긋난 군주라 생각하였기에 다져진 자리를 자신이 아니라 아들에게 물려준 것이라고요.


  또한 행동에 대해 평가도 할 수 있지요. '중세시대 막 탄생한 국가이기에 가장 빠르고 현실적인 방법을 택하여 형제와 처가, 사돈, 공신을 숙청한 권력의 괴물이 되는 것이 최선이다. 아니다, 국가는 이념과 규율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지기에 중세시대라도 죄 없는 이를 죽이는 것은 군주와 사람으로서 도를 넘은 것이며 어떤 이유라도 해서는 안된다.'라는 상반된 평가가 존재합니다. 그리하여 폭군이자 명군인 왕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조금 더 들어가면, 사고뭉치인 양녕을 왜 그리 아꼈는지, 그 결과가 계유정난까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생각할 수도 있겠죠.


  이렇게 여러 정보가 이어지고 쌓여 지식이 되어갑니다.



공부는 이제 지겹다


  그래서 지식을 얻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느낀 시간이 있지요. 지식을 얻는 것이 쉽다면 다들 10여 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학교에서 힘들게 공부하지 않을 겁니다.


  더욱이 시험을 위한 공부이니 얻는 것은 없는 것 같고 더욱 힘들기만 합니다. 원리와 응용은 짧게만 가르치고, 시험 문제 푸는 요령은 길게 가르치죠. 거기다 원리와 응용은 물론 문제 푸는 요령조차 주입식으로 가르칩니다. 그것을 위해 새벽까지 학원에 가고요. 지식=시험이라는 인식이 생기지 않을 수 없지요.


  그러다 보니 졸업 후 공부를 놓습니다. 졸업해도 어학점수와 취업 시험을 위한 공부만을 할 뿐이죠. 당연히 지식을 얻는데 관심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물론 지식의 재미를 알고 대학 이후 계속 공부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모두가 학생이었던 시절에 비하면 정말 소수이지요.

 

  거기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고등학교까지 배웠던 것으로 충분하다고 느낍니다. 전문직이 아니고서야 그 이상의 지식을 요구하는 일은 없지요. 대학 지식까지 요구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공에 맞춰 취직하는 대학 동창은 얼마나 되나요? 대학 입학 때까지만 해도 당연히 4년 공부한 시간과 노력을 써먹겠다고 생각하지요. 비싼 등록금을 냈으니 더욱 그렇지요. 하지만 졸업하고 보면 입학 때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죠. 그러다 보면 점점 지식이라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게 됩니다.



대학의 특수성


   물론 취업난이 계속되면서 전공으로 취업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덕분에 대학이 취업학교로 변해가고 있지요. 허나 지식을 얻는다는 것에는 변함없는 거 같습니다만 기업에서 해주어야 하는 일을 대학으로 떠넘기는 거 같아 아쉽습니다. 때문에 대학에서 느끼고 배워야 할 지식들이 줄어들 수밖에 없으니까요.


  대학은 화학 전공자라도 문학, 경제, 역사 수업을 들을 수 있고, 심지어 유학자들의 '이기론'도 접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것도 오랜 시간 연구해온 전공 교수가 해주는 강의이지요. 그리고 그런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얻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요. 대학의 특수성은 깊이 있는 전공은 물론 다양한 학문을 접할 수 있고, 다른 전공자들과 교류할 수 있는 것에서 나옵니다. 이후에는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을 테니까요. 있더라도 대학의 자유로움과 아직 직업 관념이 잡혀있지 않은 이와의 대화는 없다고 봐야겠지요.

 


착각


  그런데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면 하나의 큰 착각을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것은 많은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사회이기에 가능하지요. 우리는 일상에서 스마트 폰이나 컴퓨터로 몇 글자 검색어를 통해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 정보가 우리의 지식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궁금한 것이 생기면 스마트 폰 하나면 쉽게 해결됩니다. TV를 보다가도 연예인 나이가 궁금하면 몇 글자로 찾을 수 있지요. 그러다 그들의 가십을 찾고, 생활 정보를 찾다 보면 익숙해집니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 정보라 생각되기에 모든 정보를 여과없이 받아들이게 되지요. 그러면서 많은 정보가 지식이 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습니다. 여기에 탈진실에서 말한 요소들과 학교의 주입식 교육 영향이 합쳐지지요.

 

  그러다 보면 단순한 정보를 넘어선 복잡하고 미묘한 정보들, 그들의 생각, 판단까지 우리는 들었다는 이유로,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진실 혹은 자신의 지식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지식은 쌓인다

 

  물론 빠르게 지식이 될 때도 있습니다. 익숙하고 이미 배경지식을 쌓아놓은 정보가 있기 때문이죠. 가지고 있는 정보와 연결됨으로써 정확한 해석과 판단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복잡한 정보는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서 많은 과정이 필요합니다. 'A는 B와 같다'는 문장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A와 B의 정보를 알아야만 같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도 그 정보의 진위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비슷한 과정을 반복적으로 거쳐야 합니다. 그런데 A와 B를 정확히 알고 있다면 어떨까요? A와 B를 비교하는 과정만 거치면 되기에 그 과정은 아주 간단해집니다. 정확히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정보만을 가지고 있더라도 과정에 드는 시간과 노력은 줄어들게 되지요. 그렇기에 '지식을 쌓는다'라고 표현하는 것이겠죠.


  이를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은 독해력입니다. 글을 읽다 보면 모르는 단어들만으로도 독해가 막히게 됩니다. 하지만 주위의 단어와 문맥을 통해 단어의 뜻을 모르더라도 충분히 유추가 되지요. 또한 어원에서도 유추가 가능합니다. 그렇게 다양한 배경지식을 이용하면 모르는 단어가 있더라도 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추할 수 없다면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사전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전에 나오는 단어의 뜻도 글이지요. 결국 풀이의 단어를 모른다면 또 단어를 찾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렇기에 글을 처음 배우는 어린 시절에는 단어가 단순하고 일상적인 내용들을 배우게 하는 것이죠. 그 과정을 쌓고 쌓다 보면 빠른 독해력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조금 난해한 글이라도 의도를 파악할 수 있게 되지요.



미디어에서 지식


  우리의 문명은 지식들이 쌓여 여기까지 도달하였습니다. 그래서 지식의 가치는 늘 높게 평가되었고, 후대에 반드시 전해주어야 할 것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정보와 지식을 구분하지 않으려는 현재에는 어떨까요? 이를 미디어를 통해 조금 살펴봅시다.


  과거에는 교양 프로그램이 제법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재미가 없었기에 기억이 납니다. 솔직히 너무 재미없게 만든 탓도 있지요. 교양이라면 무게 잡는 게 당연한 때였니까요. 그래서 교양 프로그램이 점점 줄어갔습니다. 지금은 케이블 채널에서 재밌게 만들어 가고 있죠. 다만 검증이 약한 문제로 부정확한 정보로 인해 종종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에는 퀴즈 프로그램이 방송사마다 있었고, 인기도 꽤 있었지만 어느 날부터 점점 사라졌습니다. 교양 시사 채널이라 불리는 곳도 자극적인 시사 내용이 더 많아졌습니다.


  예능에서 초등학생이 배우는 내용을 모르는 장면도 많지요. 이런 장면에 웃음이 나오는 것은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한 사람이 가질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또한 기억은 유한하기에 충분히 잊을 수도 있고요. 허나 사람들이 그것을 너무나 당연시 여깁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사칙연산의 우선순위를 모르고 자전과 공전을 모릅니다. 자신이 여행한 국가명과 도시명도 구분하지 못하거나 로스앤젤레스와 LA를 다른 도시라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부끄러워하는 모습에 웃으며 가볍게 넘길 수 있습니다.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드물게도 당당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능의 재능이라고 칭찬하기도 하고요. 심지어 교양 프로에서 일부러 자신만 모르는 말들을 쓴다고 불평도 하지요. 기우겠지만 대본이라도 모르는 것이 재주와 개성으로 비치고 있습니다.



지식을 가볍게 여기다


  그래도 그들은 자본주의의 중심인 돈을 잘 버는 사람이고, 재주가 있는 사람이며, 대중이 선호하는 사람이죠. 그러니 굳이 지식을 쌓을 필요가 있을까요? 특히 공부가 힘든 학생들에게는 더욱 필요 없다고 생각되겠지요. 지식을 쌓지 않아도 미디어에서 소위 '잘 나가는 사람' 보이니까요. 저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기도 하고, '돈만 잘 버는데 어때?'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이제 그것이 상식이 아니다고, 굳이 알 필요 없다고 하는 이도 많아졌습니다. 그런 소재로 인터넷상에서 토론도 이루어지지요. 초등 교육 내용이 상식이 아니라고 말이죠. 사는 데 문제없다는 이유로요.


  물론 모든 내용들을 기억할 수 없고, 교육과정도 다르며, 논란이 있는 점도 있습니다. 또한 상식의 기준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에게 험한 말을 하면서까지 토론해야 하는 중요한 것인가요? 토론 보다도 초등교육 과정이니 알아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하지만 길게 본다면 알 수 있을 겁니다. 과거 이런 소재로 대중에게 웃음을 주었던 사람들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알고 그것을 메우기 위해 공부하고 지식을 쌓아 현재에도 대중에게 사랑을 받는 건 물론이고 더 큰 사랑을 받는 이로 남아있다는 것을요. 심지어 상식이 많은 사람으로 대표되어 안티들도 팬으로 만들기도 하지요.


  사람들은 알고 느끼는 것이지요. 모름이 짧은 웃음과 인기를 얻을지는 몰라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요. 지식을 쌓음으로써 그 한계를 극복하여 더 인기를 얻고, 한 단계 나은 곳에서 오랜 기간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요. 그로 인해 좋은 동료들과 함께 할 수 있고, 그 모습에 대중들은 더 사랑과 관심을 주는 것이죠.



지식을 쌓기에 이점도 많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계속해서 변하고 있습니다. 그 속도도 빨라지고 있지요. 그래서 더욱더 새로운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식을 쌓는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것이 아니지요. 단순히 갖는가가 아니라 쌓는다는 동사가 그 느낌을 전해줍니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정보가 많아짐으로써 어려운 점도 있지요.


  허나, 과거보다 쉬워진 것도 사실입니다. 지도 교수님께서 라때를 이야기하신 적이 있습니다. 대학원생 때 도서관에서 책으로 묶인 논문을 며칠씩 걸려 눈으로, 손으로 일일이 찾아서 복사 순서를 기다리고 부탁을 해가며 공부했다고 하셨습니다. 그것도 있으면 다행이라고요. 도서관에 없으면 다른 기관에 연락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고 하셨지요. 반면 저는 컴퓨터를 이용해 키워드 몇 개로 논문을 몇 시간 만에 몇 편씩 찾았고, 모니터나 프린터로 쉽게 출력하여 보았습니다. 속도와 노력에서 비교하기가 어려울 정도이지요.



지식에 대한 가치


  시간에 따라 많은 것이 변해갑니다. 지식에 대한 생각도 변하겠지요. 하지만 지식의 가치가 가벼워지는 시대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흐름은 지식을 쌓는 방법의 변화에서 오는 과도기의 현상으로 생각됩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얻기 어렵기보다 귀찮고, 힘들고, 혼란스럽다고 느끼게 되고, 얻기 쉬운만큼 그 가치를 가벼이 여기게 되며, 자신이 지식을 쌓는 것은 어렵다고 하면서 남의 지식은 쉽게 생각하는 현상을 보이는 것이지요. 또한 과도한 시험과 암기에 대한 스트레스와 모든 지식을 시험으로 연결시키는 사회가 더욱 이러한 현상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식을 시험과 분리하고 생활과 연결시켜 인식한다면, 지식도 자본이라는 것을 상기한다면, 조금 더 지식의 가치와 재미를 알게 해 준다면 이 현상들은 사라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앞서 메이저 미디어의 예를 살펴보았지만 정작 유튜브와 같은 미디어에서는 꾸준히 다뤄지고 있지요. 과학, 역사, 철학, 예술 등 분야도 다양합니다. 심지어 메이저 미디어보다 더 재밌고 정확하게 보여주는 채널도 있지요. 물론 소수의 작업이다 보니 검증 측면에서 약한 것이 사실입니다. 100%의 정확성이 어려운 환경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점은 대중들은 지식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좋은 채널을 공유하며 의견을 나누기도 합니다. 그리고 EBS의 다큐 프라임이나 지식e는 호평받으며 챙겨 보는 이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늘 배움과 학문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한때 침탈과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어 오늘 사는 것이 우선이라 글을 놓았을 때가 잠시 있었지만, 학구열은 어느 민족에 비교할 바가 되지 않았습니다. 조선말에도 자식들을 위해 서당만은 반드시 보냈습니다. 빚을 내서라도, 돈이 없으면 무나 배추라도 값을 대신했습니다. 덕분에 조선에 온 외국인들은 글 모르는 이가 없다는 사실에 신기해했지요. 물론 한글의 영향도 크지만 선조들은 모름에서 오는 불이익과 지식이 보다 나은 자신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을 알고 느끼고 계셨던 겁니다.



자신에게 물음

 

  어르신들이 하시던 말씀이 있었습니다. '글자는 제 이름 석자 쓰는 정도면 된다.', '돈만 잘 벌면 된다.'라고요. 그리고 또 다른 말씀도 있지요. '아는 만큼 보인다', '본디 사람은 배워야 한다.' 여러분은 어느 말이 더 머리와 가슴에 다가오시나요?  




  계획은 우크라니아에 대하여 글을 쓰려고 하였습니다. 우리나라도 같은 일을 겪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아무리 좋은 의도라지만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필사적인데 말이죠. 그래도 언급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더 기억될 수 있고 응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푸틴의 행동이 심해질수록 뭔가 망설여졌습니다. 그렇게 쓰다 지우다 망설이다 다 지워버렸습니다. 그래서 휴전이 된 후나, 시간을 더 들여 깊게 고민해서 쓰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도 다시 한번 기억하자는 생각에 이렇게 언급이라도 해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번 글인 탈진실에서 빼버렸던 탈지식에 관한 이야기를 수정하여 보여드리기로 하였습니다. (앞의 글들과 겹치는 부분은 있는데 안 보신 분들을 위해서 줄여서 보여드렸습니다. 그래도 앞의 글을 보시고 연결해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지식은 정확한 정보, 진실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참 망설여지더라고요. 잘난 것도 없는데 잘난 척하는 건 아닌지, 공부하라는 잔소리처럼 들리는 건 아닌지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혜, 매너와 같이 더 쓸 내용들이 많았는데 더 쓰지 않았습니다. 너무 길기도 하고요. 그 내용은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하겠습니다. 


  한국인들이 똑똑함, 스마트 그리고 지식에 대한 존중을 가지는 그런 모습들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왠지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여러 가지 이유들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이 틀리더라도 같이 생각해보았으면 싶었습니다. 사람만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우리이고, 대한민국이니까요.


  요즘 망설이는 덕분에 글이 막히고 있습니다. 업로드 시간이 너무 걸리는 거 같아 답답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화학 글에 집중하고 싶은데 대선과 우크라니아 전쟁으로 전 세계의 많은 것들이 빠르게 변하는 것 같아 생각 없이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은 아닌 거 같습니다. 그래서 하는 것 없이 머릿속만 복잡하네요.


  모두, 머릿속이 복잡해도 마음만은 편하기를 바라며 오늘 글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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