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추워도 사진은 변하지 않는다
점점 날씨가 추눠진다. 강물이 얼어버리는 것은 물론 강물에서 자라는 것들도 멈춘다.
물 속에 뿌리를 펼쳐지고 물 위로 줄기와 잎, 꽃이 태어나던 연잎도 그렇다.
그 겨울의 순간은 말 그대로 순간이다. 봄이 되기 시작하면 그 얼음은 녹고 물 속에 박히고 있던 연씨는 팔을 편치듯 줄기와 잎을 키우기 시작한다.
그런 순간들을 직접 보기는 힘들다. 특히 물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 수 많은 것들은 눈으로 알기도 힘들뿐 아니라 일반적인 상태로 사진 찍기도 힘들다. 그나마 안심하고 물쪽을 만날 수 있고 그 안에 박힌 연씨를 만나기엔 겨울이 최고다. 대충 이제 막 겨울이구나 싶은 그럴 때는 위험하고, 한창 추울 때가 좋다.
고인 물이 깊이 얼어 있는 겨울의 중심일때.
그저 따뜻한 집안에서 라면이나 먹어야겠다는 그 추운 겨울 그때.
옷도 두툼하게 여럿 입어야 그나마 나갈 수 있을 때.
그래야만 비로소 얼은 물 위를 안심하고 걸어갈 수 있다. 더불어 쪼그려 앉은 상태로 물 위에 있는 다양한 것들을 꼼꼼하게 볼 수 있다.
추운 날엔 일반적으로 기껏해야 냉동에 있는 얼음을 꺼내는 게 다다. 아이스크림 꺼내는 게 그나마 즐겁기도 하고.
그러나 집 안에 있는 것 만이 존재하고 있는 전부는 아니다. 겨울일수록 밖으로 나가지 않는데, 그래서 겨울일수록 외롭기까지하다.
사실, 밖으로 나가본들 아름다운 꽃이 있지도 않고 나무들의 잎들도 후두둑 떨어져 있을 뿐이다. 그러니 외로울 수 밖에.
그렇다면 야외로 나가서 볼만 한 걸 찾아볼 수 밖에 없다. 흔하지 않은 동시에 아름답기까지 하면 딱 좋다.
눈이 내린다면 어느 곳이든 아름답게 보일 수 있지만, 눈 조차 없는 날이라면?
얼음이 깊게 퍼져 있는 곳이 그나마 볼만하다.
사진은 그런 게 아니던가.
어느 멈춘 순간. 사라지지 않는 순간. 변해버린 것들의 과거. 혹은 변하기 전의 아름다움.
저 얼음에 담겨 있는 연밥은 크게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연꽃이 핀 후, 그리고 연꽃이 피기 전. 그 둘을 담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얼음이다. 그리고 그 깊은 얼음 덕분에 그 위로 걸어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원래 연꽃의 씨앗은 최종적으로 위가 아닌 아래를 향한다. 그래서 고개를 숙인다. 아래를 바라보지만 자신이 키울 꽃은 위로 향하길 원하면서. 그래서 연꽃의 씨앗인 연씨는 보통 물쪽으로 향해 바라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론 물 위를 바라보는 연씨가 있기도 하다. 사실, 겨울 전에 이미 연밥은 속이 없는, 구멍만 뻥뻥 보이는 빈 모습이 많다. 스스로 그러길 바라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도 자주 생긴다.
사람도 그렇다. 키운 자식이 언젠간 자신을 떠나줄 알지만, 언젠가 꽃처럼 활짝 펴주길 바라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저 연씨들이 박혀있는 연밥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힘 내렴. 겨울이 끝나거든 언젠가 아름다운 연꽃이 될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저 연밥위에 ‘호-호-‘하고 입으로 따뜻하게 바람을 불었던 것 같다.
연꽃잎이 펼치기 시작하면 연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그저 꽃이 크고 예쁘다고 하지만 그 중심에 있는 연밥과 연씨에 대해서는 관심이 낮은 편이다. 시간이 흘러 연꽃의 잎들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더더욱 찾아오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꽃잎이 떨어진 꽃의 중심, 연밥을 좋아한다. 자신의 안에서 연씨들이 좀 더 튼튼해지길 바라는 모습 같달까.
지금은 12월. 점점 겨울의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조만간 매우 추워질 것이다.
그 겨울의 중심엔 얼음에 담겨있는 연밥과 연씨가 있다. 연꽃의 중심은 겨울의 중심을 버틸 것이다. 그동안 연꽃은 단 한 번도 포기한 적도 없었다. 심지어 물이 말라버린 땅 속에서도 죽지 않고 끝까지 버티고 버텼다. 그 말라버린 땅이 촉촉해지면 다시 뿌리는데 멈추지 않았다. 물 위로 꽃까지 보여주기까지 했다. 그 마음을 알 수는 없으나, 겨울의 얼음을 즐기고 있는 건 아닐까? 봄이 되기 시작하면 고생하고 고생해서 뿌리와 잎은 물론이고 꽃까지 펴야하니. 어쩐면 즐겁게 쉬고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도 모두 힘 내시길. 사람들의 행복도 저 연꽃처럼 아름다운 날이 오길 빌어본다.
더불어, 저 겨울을 즐기는 연밥처럼 겨울에도 사진 찍기를 포기하지 마시길.
* 얼음이 보이는 모든 사진은 매우 추웠던 날이 이어졌을 때 촬영했습니다. 얼음이 깊어 안심하고 올라가서 찍을 수 있었습니다. 대충 추운 정도에는 저 곳 위는 위험할 수 있습니다.
* 모든 사진은 Zeiss Batis 2/40 + SONY a9으로 촬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