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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안 Aug 23. 2021

조직문화 진단문항은 어떻게 개발해야 할까?

조직문화 진단 회고 2편

내부적으로 검토한 끝에 조직문화 진단을 외부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실시하기로 했다. 이 말은 문항 개발도 직접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문항 개발 프로세스를 하나씩 밟아나갔다.  


미리 밝히지만 내가 했던 방법이 정답은 아니다. 한번 해봤다고 전문가라도 된 것처럼 말할 생각도 없다. 다만 나처럼 어디서부터 뭘 해야될지 몰라서 답답한 담당자가 있다면, 내 경험이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글로 남긴다.  


1. 진단에 대한 감 잡기: 자료조사 


진단에 대한 기초지식이 1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단은 조직문화 진단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초 공부가 필요했다. 처음 감을 잡는데 유용했던 건 김성준 님의 책 <조직문화 통찰> '2부 어떻게 조직문화 보는 눈을 키울 수 있을까?_3. 설문조사를 해야 할까?' 파트였다. 조직문화진단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 대표적인 진단모델에 대한 소개, 문항 개발 시 유의사항 등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아쉬웠던 건 각 진단모델(7S 모델, 데니슨 모델 등)의 구체적인 설문문항이었다. 당장 설문 문항을 개발해야 하는 입장에서 진단 프레임뿐만 아니라 문항 하나하나가 궁금했다. 이 부분은 논문 검색을 통해 해결했다. RISS에 검색어로 조직문화 진단이나 7s 모델을 넣은 다음 검색되는 눈문을 죄다 다운받았다. 몇몇 논문들은 친절하게 부록으로 자신이 사용한 설문지를 첨부해 두었다. 이걸 참고하면 내가 궁금했던 진단모델의 구체적 설문을 볼 수 있었다.  


궁금했던 모델의 설문이 첨부된 논문을 발견할 때마다 어찌나 기분이 좋았던지. 만나본 적 없는 논문저자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거기다 논문은 앞부분에 연구주제와 관련된 선행 연구가 압축적으로 정리되어 있는데, 이 부분도 조직문화 진단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를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진단을 계기로 다른 업무 할 때도 논문검색을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앞서 연구한 선생님들 다들 복받으실 거예요


2. 백문이 불여일견: 벤치마킹 


우리 회사보다 앞서서 진단을 실시한 사례를 듣고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이고 싶었다. 그리하여 결정된 타사 벤치마킹. 조직문화 진단을 실시하고 있는 4개 대기업을 직접 방문해서 진단에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벤치마킹 기업을 선정한 기준은 우리 회사보다 규모가 더 크거나 우리 회사와 비슷한 역사를 가진 회사일 것 두 가지였다. 특히 후자의 조건을 가진 기업이 중요했는데, 경영진을 설득할 때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00 기업에서 하고 있습니다'라고 보고하면 설득이 훨씬 쉽다) 


컨택 포인트를 찾는 방법은 특별한 요령이 없었다. 사돈의 팔촌 인맥을 다 동원했다. 몇 년 전에 다른 이유로 벤치마킹갔던 기업 담당자를 통해 인사 부서 연락처를 물어보기도 하고, 와이프 친구 남편이 벤치마킹 가려는 회사에 근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와이프를 통해 연락처를 확보하기도 했다(여보 고마워!) 특히 한 기업은 포항에 회사가 있어서 KTX 타고 당일치기로 갔다 왔다. 열정 게이지 MAX를 찍던 때라 포항까지 가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나에게도 있었지..열정만수르이던 시절이(아련)

벤치마킹은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됐다. 우선 각 회사별로 어떤 진단 프레임을 활용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자세한 문항까지는 대외비라 볼 수 없었지만 진단 프레임까지는 대체로 알려주었다. 그것만 해도 큰 수확이었다. 그 외에도 설문 실시할 때 유의사항, 설문 결과 활용방법, 진단에 대한 조직 내 반응 같은 실무 관점에서 궁금했던 내용들을 들을 수 있었다.   


담당자 한분은 "메일로 물어봤으면 여기까지 안 알려드렸을텐데 직접 오셨으니까 알려드립니다"라고 했다. 실무자의 절박함은 같은 실무자가 가장 잘 안다. 애절한 눈빛으로 마주보고 물어보면 답변을 안 해주기가 어렵다.  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가서 물어보자. (다시 한번 도움 주신 여러 기업 담당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3. 우리 회사의 진짜 문제를 찾아서: 직원 인터뷰 


벤치마킹이 끝난 다음  '와 다른 회사는 진단 프레임이 체계적으로 잘 짜여져 있다'라고 생각했다. 진단을 실시한 역사가 길고, 컨설팅을 받거나 외부 전문가와 협업했기 때문에 진단도구의 완성도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전문가도 아닌데 개발할 수 있을까?' 살짝 기가 죽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의문도 남았다. '진단 프레임은 멋있게 짜여져 있지만 과연 이대로 진단을 실시하면 정말 조직문화가 좋아지는 걸까?' '보고서는 예쁘게 나올 것 같기는 한데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 걸까?' 처음부터 진단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진단 이후의 개선활동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우리 회사 상황에 맞는 진단 문항 개발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 


이렇게 하면 진짜 조직문화가 좋아지는 걸까??


과거의 실패경험도 '멋있어 보이는 진단모델'이 아니라 '실용적인 진단모델'에 대한 고민을 깊게 했다. 사실 조직문화 진단은 내가 우리 회사에서 최초로 실시한 것이 아니다. 내가 부서에 오기 몇 년 전에 이미 외부 전문가와 협업해서 진단을 실시한 적이 있다. 


 그때는 진단결과가 경영진의 공감대를 끌어내는데 실패했다. 제대로 된 후속 활동도 당연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가 분석한 실패 원인은 진단 결과를 설명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학술적이었다는 것이다. 진단 결과에 번뜩이는 인사이트는 담겨있었지만 전달하는 방식이 너무 어려워서 경영진을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진단모델은 우리 회사의 상황에 맞는 실용적인 문항으로 구성되어야 했다.  


그러려면 우리회사에 맞는 문항을 완전히 새로 만들어야 했다. 진짜 우리 회사에 맞는 문항을 만들기 위해 임원부터 신입사원까지 40명의 직원을 부서원들과 함께 인터뷰했다. 인터뷰할 때의 핵심 질문은 '우리 회사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저해요소가 무엇인가?였다. 글로벌 사업이 최근 회사의 가장 중요한 이슈였기 때문에 선택한 질문이었다. 한 달 정도 팀원들과 나눠서 직원들을 인터뷰했다. 상황에 따라 1:1, 그룹 인터뷰 등 다양하게 실시했다.  


4. 지옥의 무한 수정을 견뎌라 : 문항 개발 


인터뷰 결과 정리는 질문별로 구분되어 있는 엑셀 양식을 하나 만들어서 부서원들에게 자신이 한 인터뷰 내용을 입력해달라고 부탁했다. 핵심적인 내용만 입력해달라고 부탁했는데도 하나의 엑셀 파일로 만드니 양이 많았다. 이 자료를 가지고 부서원들과 워크숍을 진행했다.  


워크샵 방법은 1. 취합된 엑셀 파일을 A3에 출력한 다음 자신이 분석할 부분을 나눠 갖는다.  2. 자신이 맡은 부분의 인터뷰 내용을 읽고 핵심 키워드를 포스트잇에 적는다. 3. 화이트보드에 키워드가 적힌 포스트잇을 붙인다. (어느 순간부터 비슷한 키워드가 반복되어서 일정한 키워드 뭉치들이 형성되었다) 4. 서로 토의하면서 포스트잇을 재배치하고 통합하는 작업을 반복한다. 이렇게 하니 얼추 인터뷰 결과 정리가 끝났다.  


그다음이 가장 어려웠다. 키워드는 나와있는데 이걸 어떻게 문항으로 만들어야 할지 막막했다. 여기서부터는 앞서 조사해두었던 기존 문항들의 설문 문항을 많이 참고했다. 인터뷰에서 나온 키워드를 측정할 수 있는 기존 문항이 있다면 그걸 참고하고, 없다면 직접 문항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초안을 부서원들과 회의하며 다르게 해석될 여지는 없는지, 원래 묻고 싶었던 내용을 제대로 묻고 있는지 등등을 검토하며 계속 수정했다.  

(키워드를 문항으로 만드는 과정은 아직도 어렵다. 이건 여러 번 해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지 않을까. 아직 공부&경험이 더 많이 필요하다.)   


이 시기에 큰 도움을 받은 건 데이나 님이다. 마침 데이나 님도 비슷한 업무를 진행했고, 그 과정을 나 같은 초보자를 위해 친절하게 브런치에 공유해주셨다.(https://brunch.co.kr/@winniethedana/64) 무턱대고 페북 메시지로 연락드렸는데 문항까지 공유해주셨다. 데이나 님이 작업한 문항도 큰 도움이 되었다. 갓데이나님 감사합니다. (사실 이 글로 데이나님이 쓰신 진단 회고에 영감을 얻었다 호호) 


그 뒤로도 지옥의 무한 수정이 있었다. 부서원들에게 보여주는 건 기본이었고, 비슷한 업무를 해봤던 선배들한테 연락해서 문항을 봐달라고 부탁했다. 3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파일럿 테스트를 하고 후기를 물어보기도 했다. 그리하여 총 38문항(객관식 35문항, 주관식 3문항)의 진단 문항이 완성되었다.    


문항 수는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했다. 진단을 실시하는 입장에서 문항수가 많으면 분석하기 좋지만, 진단에 참여하는 직원들 입장에서는 피로도가 너무 높아진다. 벤치마킹 갔던 기업 중에 원래는 80문항까지 갔다가 계속 줄여서 30문항 수준으로 갔다는 이야기도 참고했다. 문항이 너무 많으면 분석할 자신이 없기도 했다. 정말 꼭 필요한 질문만 남기려고 노력했다.     


문항 개발도 했고 이제 거의 끝났다..!라고 그 당시에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진단 결과 분석이라는 더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음을.... 

끝날 때까지는 끝난게 아니었음을 그때는 몰랐다 크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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