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문화 관련 유용했던 책들을 추천합니다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조직문화 담당자에게도 공부가 필수다. 조직문화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담당자가 만들어낼 수 있는 퍼포먼스가 천차만별이다. 다소 과장해서 표현하면, '조직문화 담당자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담당자의 조직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뛰어넘을 수 없다.'
조직문화 담당자는 자신의 일을 '오해'받기 쉽다. '문화'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다 보니 뭔가 말랑말랑하고 가벼운 일을 할 것 같은 이미지를 풍긴다. 실제로 그런 이미지 때문에 '조직문화 담당자=행사, 이벤트 하는 사람' 정도로 조직 내에서 인식되는 경우도 많다. 자칫하면 외부의 시선에 끌려다니며 이벤트만 지겹도록 하다가 '내가 이벤트 대행업체인가?'라는 현타가 오게 될 수 있다. (사실 나도 한때 겪었다).
그런데 '조직'과 '문화'라는 단어가 결합되면 결코 가볍지 않다. 조직문화는 조직의 생존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 벤처 투자가 피터 틸(Peter Thiel)이 에어비앤비에 투자를 한 후 '문화를 망치지 말라(Don't fuck up the culture)고 조언했던 것도 조직문화가 회사 전반에 영향을 주며, 그로 인해 회사의 흥망성쇠를 좌우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 아닐까.
조직문화 담당자는 회사에 광범위한 영향을 주는 굉장히 중요한 주제를 다루는 특수한 직무다. 어려운 주제인만큼 조직문화의 속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끊임없는 공부와 독서가 필요하다. 인터넷에 다양한 자료들이 많지만 신뢰할 수 있는 정제된 정보를 얻는 창구로는 책만 한 것이 없다.
그렇다면 조직문화 담당자로서 어떤 책을 어떤 순서로 읽어야 할까?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을 살펴보면 크게 '조직문화 전반에 대한 기본개념을 잡아주는 책', '자주 접하는 특정 개념을 소개하는 책', '다른 회사가 문화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으로 나눌 수 있었다. 이런 구분에 따라 지금까지 읽었던 책 중 유용했던 책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김성준, <조직문화 통찰> (클라우드 나인, 2019.08)
② 장재웅, 상효이재, <네이키드 애자일> (미래의 창, 2019.11)
무협지를 보면 항상 본격적인 무공을 배우기 전에 내공심법부터 배운다. 내공은 몸속을 도는 일종의 기운인데, 어떻게 기초내공을 쌓는가에 따라 똑같은 초식을 펼쳐도 실리는 힘이 달라진다. 내공을 튼튼히 쌓고 진도를 나가지 않으면 자칫하면 주화입마에 빠져 폐인이 되기도 한다. 탑을 높고 튼튼하게 지으려면 기반을 먼저 충실히 닦아야 한다.
조직문화 공부도 마찬가지다. 기본개념을 튼튼히 쌓고 시작해야 그 뒤에 학습하는 내용을 더 잘, 나만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추천하고 싶은 첫 번째 책은 <조직문화 통찰>이다*. 국민대 김성준 교수님이 쓰신 책으로, 조직문화 전반에 대한 기초개념을 충실히 잡아준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고 조직문화를 보는 눈이 확실히 틔였다. 조직문화 담당자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하는 개론서이자 필독서이다.
*책 소개 영상은 아니지만 김성준 교수님 인터뷰 영상을 통해 책 내용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EO, <직장인이 성취감을 느끼는 순간의 비밀> https://www.youtube.com/watch?v=69_97VXsYfQ
함께 읽으면 좋은 책으로는 <네이키드 애자일>을 추천한다. 조직문화 통찰을 통해 조직문화의 핵심 개념인 기본가정을 이해한 다음, <네이키드 애자일> 3장 '조직문화 혁신, 애자일 철학 이해가 먼저다: 테일러리즘과의 비교를 통해 알아본 애자일 철학'을 읽으면 다양한 기본가정이 조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테일러리즘과 애자일의 상반된 기본가정을 이해하면 전통 제조 대기업의 조직문화와 IT기업들의 조직문화 차이에 대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기초 내공을 쌓았다면 이제는 실전에서 활용되는 여러 초식들을 배워볼 차례다. 조직문화 일을 하다 보면 유독 자주 만나게 되는 핵심 개념들이 있다. 각각의 개념들을 이해한 채로 일하면 낯선 개념을 만나도 당황하지 않게 된다. 앞으로 조직문화 일을 하면서 자주 만나게 될 핵심 개념과 이를 설명해주는 대표적인 책들은 다음과 같다.
① 심리적 안정감 (Psychological Safety)
: 에이미 에드먼슨, <두려움 없는 조직>(다산북스, 2019.10)
구글의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를 통해 효과적인 팀을 만드는 첫 번째 법칙이 '심리적 안정감'으로 밝혀지며 유명해진 개념이다. 심리적 안정감은 “조직 내에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해도 나에게 그 어떤 피해도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을 뜻한다. <두려움 없는 조직>은 하버드 경영대학원 에이미 에드먼슨(Amy C. Edmondson) 교수가 쓴 책으로 심리적 안정감의 개념과 심리적 안정감을 조직에 형성하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한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200명 이상의 구글러를 인터뷰, 180개 이상의 팀을 분석해 효과적인 팀을 만드는 5가지 비결을 밝혀냄
② 수평적 문화
: 김성남, <수평조직의 구조>(스리체어스, 2020.05)
최근 몇 년간 기존의 수직적이고 보수적인 조직문화로 인해 생기는 여러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으로 '수평적인 조직문화'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되었다. 그런데 정작 수평적인 문화가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 수 있는 것인지 명확히 설명해주는 자료는 많지 않다. 그런 답답함을 풀어준 책이 바로 김성남 작가가 쓴 <수평조직의 구조>다. 수평조직의 개념부터 구체적으로 수평적 조직을 설계하는 방법까지 담겼다. 두께는 얇지만 알차고 실속 있는 책이다.
③ 피드백 문화
:킴 스콧, <실리콘 밸리의 팀장들>(청림출판사, 2019.06)
최근 들어 스타트업, IT기업들의 조직문화를 소개할 때 솔직한 피드백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보인다. <실리콘밸리의 팀장들>의 저자 킴 스콧은 좋은 피드백이란 완전한 솔직함(Radical Candor)을 의미하여 완전한 솔직함은 '개인적 관심(Care Personally)'과 '직접적 대립(Challenge Directly)'으로 이뤄진다고 말한다. 피드백을 이야기할 때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책이니 읽어두면 좋다.
④ 권한위임
: L. 데이비드 마르케, <턴어라운드>(세종서적, 2020.06)
권한위임이 필요하다, 중요하다는 말은 자주 들었지만 역시나 권한위임이 잘 되는 문화나 조직을 어떻게 설계하는지 제대로 설명해주는 책이 없었다. 그런 갈증을 단번에 풀어준 책이 <턴어라운드>다. 특이하게 이 책은 조직문화 담당자가 아닌 미 핵잠수함 산타페함의 함장이었던 저자가 쓴 책이다. 매번 평가에서 꼴찌를 기록하던 산타페함에 권한위임 문화를 만들어 어떻게 조직을 바꾸었는지 굉장히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강추하는 책이다.
내공도 쌓았고 초식도 배웠다면 이제는 모의전투를 해볼 차례다. 다른 회사들이 문화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공부하다 보면 자신이 속한 조직의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갈지 조금 더 감을 잡을 수 있다. 다만 '조직문화로 유명한 회사이니 그들의 제도를 따라 하면 되겠지' 식의 접근방식은 위험하다는 것만 알아두자.
그보다는 이런 제도가 작동할 수 있는 토대는 무엇인지, 각 조직의 문화에는 어떤 기본가정이 있을지를 생각하며 읽는 걸 추천한다.(이런 점 때문에 조직문화 통찰을 가장 먼저 읽는 것이 좋다) 이렇게 비판적으로 읽어야만 우리 조직의 토양에서 작동할 수 있는 제도와 그렇지 않은 제도를 가려낼 수 있고, 응용해서 새로운 제도를 기획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① 넷플릭스 조직문화를 알려주는 책
: 리드 헤이스팅스, 에린 마이어 <규칙없음>, 알에이치코리아(2020.09)
개인적으로 애증의 책이다. 넷플릭스 문화를 좋아하지 않지만, 조직문화 담당자 입장에서 이 책만큼 문화를 어떻게 형성하고 관리하는지는 실제 사례를 곁들여서 체계적으로 쓰인 책을 찾기 쉽지 않다. 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와 <컬쳐맵>의 저자 에린 마이어 교수가 대담하는 방식의 구성도 좋다. (심지어 책도 잘 쓰는, 일을 너무 잘해서 뭔가 얄미운 넷플릭스) 이 책을 읽으며 강한 '맥락'을 통해 조직을 움직이는 그들의 방식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은 책을 요약한 다음 자료를 참고해도 좋다
https://brunch.co.kr/@easyahn/252
② 구글의 조직문화를 알려주는 책
: 라즐로복, <구글의 아침은 자유가 시작된다>, 알에이치코리아(2015.05)
사놓고 몇 년 동안 안 읽다가 신규 프로그램 기획 아이디어를 얻으려고 열어보았다가 깜짝 놀랐다. '내가 이렇게 좋은 책을 지금까지 안 읽고 있었다니!' 놀라울 정도로 구글의 인사제도 전반에 대해 자세히 기록해 두었다. 지금 조직에서 시도해보고 싶은 레퍼런스가 무궁무진하게 담겨 있는 책이다. 이 정도면 거의 내부문서를 공개한 수준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은 midas HRi에서 책을 요약한 다음 자료를 참고해도 좋다.
https://www.midashri.com/blog/google-workrules
https://www.midashri.com/blog/google-workrules2
여기까지 책을 읽으면 어디 가서 조직문화 이야기할 때 말발(?)이 크게 부족하지 않는 걸 느끼게 된다. 그다음부터는 나의 관심사에 맞춰 조금 더 세부 주제를 파고들어 보자. 최근에는 조직문화를 바꿀 수 있는 구체적 방법론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행동설계, UX 쪽의 지혜를 빌리고 있다. 기본을 닦았다면 이제부터는 피플 데이터, 직원경험, 리더십, 조직개발 등등 나만의 무기를 만들 차례다.
책을 소개하긴 했는데 '이걸 어떻게 다 읽어?'라는 생각부터 들까 봐 노파심부터 생긴다. 책이 출간된 시기를 보면 대략 알겠지만 앞서 말한 책들은 2년 반에 걸쳐 틈틈이 읽은 책들이다. 절대 하루아침에 읽은 책들이 아니다. 그러니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천천히 읽어보자. 읽고 나면 내가 속한 조직의 문화를 보는 눈이 확실히 달라진다. 그래도 책 읽기에 부감담을 느끼는 사람을 위해 나만의 책 읽기 요령을 살짝 공개한다.
책을 읽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갖지 않아도 된다. 목차를 보다가 마음에 드는 챕터부터 읽어보자.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책을 무작정 넘기다가 말 그대로 꽂히는 부분부터 읽어도 된다. 그렇게 한 단락, 한 챕터만 읽고 다른 책으로 넘어가도 된다.
책 한 권에 들어있는 모든 정보가 나에게 100% 필요한 정보는 아닐 수 있다. 맛있는 반찬만 골라먹는 것처럼 필요한 정보만 쏙쏙 얌체처럼 빼먹자. 우리는 항상 시간에 쫓기는 바쁜 현대인들 아니던가.
다독가로 유명한 이동진 평론가도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다음 책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여러 책을 읽는다고 말한다. 하나의 체계를 갖춘 정보 꾸러미(책 한 권)를 습득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파편화된 정보(책의 일부)를 여럿 습득해 연결하고 결합해서 새로운 인사이트를 만들어내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자신의 의지만으로 꾸준히 읽는 것은 한계가 있다. 유튜브도 봐야 하고, 넷플릭스에 새로 업데이트된 드라마도 챙겨야 한다. 각종 유혹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책을 읽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세팅하는 걸 추천한다. 간편한 방법으로는 독서모임 가입이 있다.
독서모임을 가입하면 책을 읽어야 하는 명확한 데드라인이 생긴다. 일명 '똥줄의 마법'이 발생해서 벼락치기를 해서라도, 억지로라도 책을 읽게 된다. 독서모임에 꾸준히 참여하면 규칙적인 책 읽기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독서모임의 또 다른 장점은 책 한 권을 다양한 관점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모두는 고작 1인분의 인생밖에 살지 못한다. 각자의 경험에 비추어 책을 이해해야 하는데, 이 폭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함께 읽으면 혼자 읽기의 근원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보다 다양한 사람의 시선에서 책을 읽을 수 있고, 그들의 경험까지 함께 들을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조직문화 관련 책을 읽는 모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독서모임 서비스 트레바리의 '요즘 뭐해? HR人-조조'
유료 독서모임 커뮤니티 '트레바리'에서 운영 중인 클럽으로 1달에 한번 조직문화 관련된 책을 읽는 모임이다. 어쩌다 보니 2 시즌째 참여 중이다. 최근에는 코로나 상황에 맞춰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신청기간이 따로 정해져 있어 당장은 신청이 어렵다.
https://trevari.co.kr/clubs/show?clubID=fc2a065a-2237-4d13-be9e-fec561943d75&tagID=ONLINE
② 원티드(Wanted)의 '스터디 살롱'
채용 플랫폼 원티드(Wanted)에서 운영하는 HR 전문 커뮤니티 인살롱에서는 다양한 스터디 살롱을 운영한다. 트레바리보다는 HR에 훨씬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모임의 성격에 따라 주기적으로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들이 있다. 관심 있는 주제의 모임이 있는지 찾아보자.
https://hr.wanted.co.kr/study/
③ 쿠퍼실리테이션의 '톡서클럽'
조직개발 전문 컬설팅 기업 쿠퍼실리테이션에서 운영하는 독서모임으로, 클럽별로 전문 퍼실리테이터가 모임을 리드한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끌렸지만 2주에 한 권 읽는 일정이 빡세서 포기했다.(요즘 원체 벌려놓은 일들이 많아서 수습하기 바빴다) 하드코어(?)하게 책을 읽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 아쉽지만 이 모임도 현재는 신청이 마감되었다.
https://koofa.kr/courses/65
딱 한 줄이라도 좋으니까 책을 읽고 난 뒤 자신의 생각을 적어보자. 책을 읽는 과정이 입력이라면 글로 적는 과정은 출력이다. 입력과 출력을 함께 하면 생각이 정리되고 경험이 재배치된다. 이 과정에서 책의 내용이 진짜 내 것이 된다. 단기 기억이 장기기억으로 전환되어 훨씬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은 전혀 갖지 않아도 된다. 스스로 생각을 정리해보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 스마트폰의 메모장 앱에 혼자서 끄적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렇게 한 줄 한 줄 꾸준히 쓰다 보면 나만의 생각 자산이 쌓인다. 당장은 큰 효과를 보지 못하겠지만 꾸준히 하면 정말 큰 힘이 된다.
조금 더 스스로 동기부여하고 싶다면 블로그나 SNS에 생각을 정리해서 올려보자. 좋아요 횟수가 올라가면 그 자체로 재미가 생긴다. 내 생각에 공감해주는 사람이 하나 둘 생겨나면 힘이 생겨 더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선순환 구조가 생긴다. 처음이 어렵지 한번 궤도에 오르면 전보다 훨씬 힘이 덜 든다.
어차피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오늘부터 당장 한번 해보면 어떨까? 하다가 잘 안되면 그냥 당분간은 쉬자. 그러다가 다시 이 글이 문득 생각나면 다시 시도해보자. 그러다 느슨하게라도 나만의 리듬을 만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