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화폐를 이용해서 경제 활동을 한다. 과거에는 이 역할을 특정 물건(가령 쌀)이 담당하기도 했고 금이나 은이 담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는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종이에 불과하다. 물건을 거래하고 경제 활동을 하는데 필요한 화폐를 오늘날에는 국가가 지위를 보장해 주고 제공한다. 각국의 중앙은행은 (만원권 오만원권 같은)지폐를 발행해 공급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폐만을 가지고 거래를 하지 않는다. 물건을 구입할 때 통장에 있는 돈을 연동한 카드를 사용하기도 하고 계좌이체를 하기도 한다. 실생활에서 이처럼 은행 통장에 있는 숫자 또한 돈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화폐는 단순히 지폐를 넘어 은행의 통장에 있으면서 화폐처럼 역할을 하는 숫자들도 포함해야 한다. 중앙은행이 직접 공급하는 화폐를 본원통화라고 하며 여기에 더해 이 은행 통장의 숫자를 어느 정도로 포함하느냐에 따라 M1, M2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러면 이처럼 화폐의 양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알아보자.
은행은 은행을 설립하는데 모은 돈(자기 자본)에 더해서 사람들에게 예금을 받아 또 다른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일을 한다. 자신의 자본과 부채로 갖게 되는 것을 자산이라고 하는데 다시 말하면 자산은 부채와 자기 자본이 되는 것이다. 예를들어 천만원짜리 자동차를 내돈 200만원과 800만원을 대출 받아 구매했다면 자산은 자동차 천만원이 되는 것이고 이것은 부채 800만원과 자기자본 200만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은행은 사람들에게 예금을 받는데 이것은 다시 돌려주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채가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빌려준 받을 돈은 자산이 된다. 현금을 100억을 발행했다고 생각해보자. 이 100억을 현찰로 들고 있을리는 거의 없다. 그래서 100억을 은행에 맡긴다. 은행은 이렇게 받은 돈을 누군가에게 빌려줄 것이다. 이때 은행은 100억 모두를 돌려주지 않는다. 만약에 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들이 돈을 가지러 온다면 돌려줘야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돈을 남겨둔다. 법적으로 일정 부분 이상은 반드시 은행에 남겨두어야 한다. 예금의 10%를 남겨두고 사람들에게 빌려준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100억을 예금 받고 10억을 남겨둔 후 90억을 B에게 빌려줄 것이다. 이렇게 빌려준 돈은 다시 돌고 돌아서 은행으로 다시 들어오게 된다. 그러면 은행은 여기에서 10%인 9억을 남겨두고 나머지 81억을 또다시 빌려줄 것이다. 그리고 이 81억이 돌고 돌아서 다시 은행으로 들어온다. 이런 일이 처음 100억이 모두 은행에 들어올 때까지 반복이 될 것이다. 그러면 은행에는 현금 100억이 있게 되는 것이고 사람들은 통장에 모두 합해서 1000억이라는 숫자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중앙은행은 100억이라는 돈을 발행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여기에 천억이라는 화폐가 더 생기게 된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돈을 모두 은행에 넣어두지 않기 때문에 이보다는 적은 통장 숫자가 생길 것이다. 또 은행이 돈을 더 조금만 빌려준다면 화폐의 양은 크게 늘어나지 않게 된다(2008년 금융위기 당시 이런일이 일어났다). 화폐의 양이 얼마나 불어나는지는 사람들과 은행에 달려있다.
화폐가 어떻게 생겨나는지 알아보았으니 이 화폐가 물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자. 어느 마을에 화폐는 총 만원이 있다. 이 마을에서는 만원짜리 사과가 10개가 거래된다. 사과는 총 10만원어치가 한해에 거래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10개의 사과 거래를 통해서 만원 화폐는 총 10번 이동하는 것이다. 이렇게 화폐가 이동하는 정도를 유통 속도라고 부른다. 이것을 표현하면 화폐의 양 * 유통 속도 = 가격 * 생산량(화폐 만원 * 10번 = 만원 * 사과 10개)이 되는 것이다. 데이비드 흄, 어빙 피셔와 같이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명목적인 화폐는 생산량에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앞의 예시에서 사과 10개는 생산 능력에 의해서 결정되지 화폐의 양을 늘린다고 해서 늘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화폐는 거래를 원활하게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고전파적 이분법의 맥락이다(<물가 이야기>글 참고). 그래서 화폐를 10배 늘린다면 생산량은 변하지 않고 물가가 10배 늘어난다고 생각한 것이다. 마을의 화폐가 10만원이 된다면 사과는 그대로 10개 생산되고 사과의 가격만 10만원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유통속도는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이 가능한데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이 유통속도가 사회적인 제도와 관습에 의해서 변하지 않고 일정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물가는 오로지 화폐의 양에 의해서만 결정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 중 한 분인 밀턴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은 언제나 어디서나 화폐 이야기다 (Inflation is always and everywhere a monetary phenomenon)"이라고 표현했다.
앞서 은행 통장의 숫자를 어디까지 포함하느냐에 따라 통화량을 M1 혹은 M2라고 정의할 수 있다고 했다. 언제든지 은행에서 돈을 찾을 수 있는 통장(이것을 요구불 예금이라고 한다)만을 포함한 것을 M1, 저축성 예금등까지 포함한 통화량을 M2라고 한다. 밀턴 프리드먼은 앞서 말한 유통속도가 일정한 화폐를 M2라고 주장했다.
M2의 화폐 유통속도 (출처: Federal Reserver Bank of St.Louis)
위의 그래프는 M2의 화페 유통속도를 나타낸다. 90년대 이전까지는 일정하지만 그 후로는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
2008년 이후 화폐 양과 물가 (출처:BLS, Board of Goernors)
위 그래프는 2008년 이후 중앙은행의 화폐 발행(파란색)과 M2(빨간색) 그리고 인플레이션(초록색)을 나타낸 것이다.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화폐는 중앙은행에서 발행한 화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앙은행에서 본원통화를 발행하지만 실제 화폐는 은행을 통해서 창출된다. 금융위기 당시에 중앙은행은 화폐를 엄청나게 발행했지만 은행은 금융위기를 겪은 터라 이 화폐를 사람들에게 빌려주지 않고 미친 듯이 비축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화폐는 그만큼 엄청나게 늘어나지 않았다. 물론 화폐 유통속도가 불안정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화폐는 중앙은행의 본원통화만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