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asyeah Nov 22. 2021

공감은 뜨거운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

-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읽고

대학교 막학년, 취업 시험 공부를 시작하느라 학교 도서관에서 밤까지 공부하고 혼자 자취방에 들어오는 쳇바퀴같은 일상이 이주일 쯤 반복되었을까, 하루에 한마디도 하지 않는 날들이 점점 늘어가 쌓일때쯤 우연히 지나가다 만난 친구를 붙잡고 너무 외롭다고 펑펑 운적이 있었다. 그때 그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저기 중광에 앉아있는 사람들 다 혼자야. 너만 혼자 아니야. 다 외로워".  별로 따뜻했던 말도 아니었는데, 힘들때마다 친구의 말을 떠올리며 그 시간을 버텨냈다. 익명의 다수지만 도서관 안에서 함께 숨을 쉬고 있는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느낌을 공유하고 있을거라는 생각에, 말은 못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공감하고 있을거라는 생각에 묘하게 동질감 느껴지며 위로가 되었던 것이다.


공감은 경험을 필수로 하고, 그것을 통해 우러나오는 동질감을 통해 완성된다.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 공감을 할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으며, 본래 '남의 중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는 말처럼 느껴보지 못한 타인의 고통은 더욱 더 평가절하된다. 사람에게서 진한 위로를 받았던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마, 다 잘될거야' 라는 깃털같은 말들에서보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통해 같은 어두움과 상처를 가진 사람이 내밀어준 손이었다. 급격하게 친해질수 있었던 관계들의 시작을 돌아보면 전부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으면서 시간가는줄 모르고 서로의 사정에 대해 격한 공감을 나눌때였다.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의 책에서도 내가 생각했던 것과 똑같은 구절이 나온다.


어떤 책이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으려면 그 작품이 그 누군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 위로는 단지 뜨거운 인간애와 따뜻한 제스처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나를 위로할 수는 없다.



나 역시도 경험하지 못해서 제대로 공감을 못해준 경험이 있었다. 엄마를 잃은 친구에게 '힘내, 기도할게'라는 말밖에 할수가 없었다. 슬픈 마음이야 컸지만 감히 헤어리지 못할 아픔 앞에서 어떤 말을 해야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고 결국 별 도움이 되지 못한것 같아서 무기력해졌다. 그래서 공감은 뜨거운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렸을때와 달리, 열정적인 마음만 가지고 말을 들어주는 것으로는 온전히 마음을 치유받지 못한다.




인간은 타인의 슬픔을 내것만큼 느낄 수 없다. 지구상 모든 생물의 한계이자, 그 한계로 점점 더 외로워진다. 책의 아래의 구절에서는 인간 존재에 대한 결함으로 타인을 느끼지 못하는 한계를 서술했다.

인간에게 특정한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바로 결함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과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


따라서 작가는 '고통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노력조차 왠지 점점 없어져만 가는것 같다. 언제부턴가 오그라든다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자신의 슬픔과 아픔을 드러내는데 더더욱 인색해진것 같다. 반면 서점에 가면 '널 이해해'라는 힐링용 에세이들이 차고 넘친다. 어른의 세계란 더이상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받기보다 스스로 내 마음을 이해해야 하는 세상같기도 하다. 학교라는 공동체에서 벗어나 제각기 삶의 모습이 달라지면서 더이상 주변사람들의 말에 크게 공감을 할수도, 받을수도 없는 날들이 늘어만간다. 비슷한 경험 속에서 선생님을 흉내내며 웃고, 과제의 너무함에 대해서, 잠수탄 남친때문에 이별한 아픔에 대해서 서로 공감하며 밤을 지새웠던 시간들이 살짝 그립다.

 

매거진의 이전글 칭찬이 가진 선한 영향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