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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eah Apr 07. 2022

슬픔이 기쁨에게

- <우리는 미화되었다>를 읽고

당신은 재개발 구역에서 갈 곳 없이 내쫓긴 난장이의 부인이 가슴을 치며 맹물에 보리밥을 삼킬 때의 막막함을 평생 알지 못해도 된다. 당신은 차가운 바닷속에서 스러져버린 수많은 어린아이의 비명소리와 그 부모들의 찢어질 듯한 절규를 모른척 해도 괜찮다. 당신은 겨울에 손이 부르트면서 폐지를 줍는 노인들의 관절통과 영등포 다닥다닥한 쪽방에서 추운 겨울 말동무할 자원봉사자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고독함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당신은 쇳물에 빠져 비명도 내지르지 못한 채 죽은 노동자와 1평짜리 고시원에 살며 최저임금을 위해 목숨 걸고 데모하는 사람들, 먼 타지의 공장에서 기계에 손이 잘려 평생을 반 불구로 살아가야 할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에 관심을 갖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당신은 힘이 세기 때문이다. 그 힘을 이용하여 당신은 부자가 되었고, 그래서 지하철 요금이 천 원인지 만원인지, 중위 아파트 가격이 5억인지 50억인지 따위는 알 필요가 없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자식을 미국 명문대나 의대에 쉽게 보내고, 앞길을 방해하는 사람이라면 눈앞에서 치워버릴 수 있는 권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힘으로 사람을 얻고, 사랑을 얻고, 너무 삶이 빛이 나는 나머지 세상을 보는 눈과 귀가 멀어버렸기 때문이다. 개돼지들에게 잠시 공감하듯 눈길 한번, 시장바닥에서 그들이 파는 천박한 순대 한 줄 먹어주기만 하면 그 힘을 아주 쉽게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힘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흐르지는 않는다. 머무르며 더욱 강력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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