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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eah Jun 09. 2022

사람사는 냄새나는 소설

-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 을 읽고

드라마틱 하지 않아서 좋았다. 멋진 레스토랑에서 먹는 프렌치 코스요리라기 보단 그냥 매일 먹는 흰쌀밥같은 느낌.

자극적이지 않아서 확 끌려드는 맛은 없다가도 자꾸 밋밋한 맛이 생각나서 찾게 되는 그런 책일 것 같다.


사람 사는 냄새가 가끔 숨이 막힌다는 느낌이  때가 있다. 내가 어렸을  입던 티셔츠를 걸치고 새벽부터 일어나 제사음식 만드는 엄마의 뒷모습을  때가 그렇고, 차가운 바다에서 스러져 버린 수많은 어린아이들의 부모가 절규하는 모습이 그랬고,  맞이 자원봉사를   영등포 다닥다닥한 쪽방에서 추위에 떨며 살아가고 있는 1 가구 노인들의 주름살을  때가 그랬다.


질기고 어찌할 도리가 없는 명을 끌어안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인간사를 바라보다 보면 시장 족발집 뒷골목의 뿌연 연기를 지나갈 때처럼 숨이 턱 막히고 '생즉고'라는 말이 폐부 깊숙이 와 닿는다.


산다는 게 어쩐지 텁텁하고 아린 순간들은 자주 있는 반면, 기쁘고 행복한 일들은 건빵 안에 별사탕을 발견하는 것 마냥 드문드문 일어난다.

이 소설이 마치 그런 사람들의 인생을 담아 놓은 것 같았다. 가끔 행복하지만, 자주 고단한 그냥 평범한 인간들의 삶.


나약한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느끼는 희노애락의 모습들이 생각나 자꾸 마음을 찌른다.

그런 눈물의 비린내를 맡으며 완성되는 게 삶이라는 것 일텐데, 그 끝이 결국 허무한 죽음이라면 대체 우리는 왜 고통 가득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여러번 자문했다.


누군가는 한때 사랑했던 남자에게 살해당하고, 누군가는 사고로 남편을 잃고, 누군가의 남자친구는 바람을 피는 반면, 어떤 평범한 남자는 천재라 불리우는 잘난 여자를 몰래 짝사랑 한다.

캐디, 콜라텍 같은 알바를 하다가 우연히 좋은 기회를 얻기도 하고, 누군가는 십장을 하다 다치면서도 자식의 꿈을 응원해줄 수 밖에 없다.

또 누군가의 가족은 가습기 살균제 따위로 목숨을 잃기도, 씽크홀에 빠지기도 하며, 누군가의 친구는 차가운 침대 위에 올라가 아버지 없는 아이를 죽이고, 누군가는 시체운반원으로 365일 내내 쉬는 시간 없이 살아가기도 한다.


아마 내 주변의 사람들 이야기나, 친구의 지인의 누가 누가 그랬다더라 하는 얘기들을 엮으면 이 정도 이야깃거리가 나올 법했다.

타인의 악행으로, 사회 구조적인 잘못으로 짐을 짊어지고 사는 사람들의 담담한 이야기를 읽을 때면, '그건 네 탓은 아니야' 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주고 싶었다.


가장 위로를 해주고 싶었던 등장인물은 화물차 사고로 남편을 잃은 장유라와, 엄마와 동생의 자살을 목격한 정다운이었다.

특히 장유라 편에서는 인생의 힘든 계곡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문득 드는 생각들이  나타나 었다.


"p. 49. 유라는 길을 걷다가 유난히 불행을 모르는 듯한, 웃음기를 띤 깨끗한 얼굴들을 발견하면 갑자기 화가 났다. 불행을 모르는 얼굴들을 공격하고 싶은 기분이 되곤 했다. 왜 당신들은 불행을 모르느냐고 묻고 싶었다. 어리고 젊고 아직 나쁜일을 겪지 않은 얼굴들이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는 건 비틀린 위로였다."


티없이 맑고 순수한, 유난히 평탄하고 단순한 사람들의 동그랗고 완벽한 눈동자를 볼 때마다 어딘가 모르게 부러우면서도 속이 뒤틀렸다.

 너는 한번도 상처 받은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은 거니, 너도 똑같은 인간인데 똑같이 힘들어야지! 하고 소리치고 싶었었던  같다.




특히,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는 지워지지가 않았다.


"p. 357. 닮았어요. 눈 안에 심지가 있어요. 가장 의지했던 딸인거 알지요? 듣기 좋은 말을 잘하는 할아버지네. 승화는 웃었다. 오래된 상처를 그 말들이 연고처럼 덮었다. 승화는 한마디도 믿지 않고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고마웠다."


그러나 사람으로 받은 상처가 또 아무렇지 않게 사람으로 치유가 될 수 있기에 또, 우리는 용기를 내서 살아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



+) 수많은 소개팅 경험자로서 추가로 공감갔던 구절ㅎㅎ


p. 164 결혼은 그 나름대로의 노력이 계속 들어가지만 매일 안도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마음을 다 맡길수 있는 사람과 더 이상 얕은 계산 없이 팀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어둡고 어색했던 소개팅의 나날을 지나왔다는 점이 무엇보다 가장 큰 안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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