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연애 Ⅱ

- 가을 밤

by 그래

“아! 아직 퇴근 안 하셨어요? 하하. 저 통화를 좀 하느라구요.”
“아, 그랬구나. 네, 통화 마저 하세요.”

‘휴.’

짧은 한숨을 뒤로 하고, 진도하를 바라보았다.


그는 멀뚱히 서서 움츠린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느껴지자, 나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든.. 나는!”
“알겠어요. 누나 마음, 너무 잘 알겠어요.” “네?!”

순간, 내가 무슨 말을 했더라— 기억을 더듬어 봐도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누나, 나한테 미안해서 그러는 거잖아요. 난 괜찮아요.”
“응?!”

마음속 깊이 꾹꾹 눌러 담아 두었던 일기장의 페이지가 휙—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털어놓을 길이 없어 간직해 두었던 마음을 누군가 불쑥 들춰본 듯했다.
감춰 둔 마음이 들키니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런데도, 담담한 그의 태도에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가요, 이만.”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내 손목을 잡고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끌려가듯 내려간 사무실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늦은 퇴근길, 우리는 가까운 버스정류장을 그냥 지나쳤다.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어서, 선선한 바람을 핑계 삼아 두세 정거장쯤 걸었다.


“사람 참 많다.”
“맞아요.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도 참 많네. 우리처럼?”

웃으며 장난치듯 말하는 진도하의 모습에 나도 피식 웃음이 났다.


“아까는 미안했어. 그러면 안 됐는데.”

내 말에 진도하의 걸음이 잠시 멈췄다.


그는 이내 나를 돌려세우며 말했다.

“괜찮아. 다 괜찮아. 귀여웠어.”
“내가? 그게 뭐가 귀여워. 못된 거지. 내가 까맣게 잊어놓곤, 되레 화를 내고.”
“응, 그래서 귀여웠어. 성질 나쁜 고양이 같달까?”

“뭐어?!”


불안하고 날카로웠던 하루가, 그의 ‘괜찮다’ 한마디에 스르르 녹아내렸다.
별일이었던 하루가, 별것 아닌 하루로 마무리되는 게 새삼 신기했다.

그는 언제나 그렇게, 모로 난 내 가장자리를 조용히 다듬어 주는 사람이었다.

“버스 왔다. 어서 타.”
“힝. 아쉽다. 먼저 갈게.”

급히 도착한 마지막 버스에 올라탔다.


커다란 창문 밖으로 진도하가 두 손을 흔들었다.
번쩍이는 도심 속에서도, 오롯이 나를 향한 그 손짓이 가장 반짝였다.

나는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밤바람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어느새, 가을이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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