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밀의 끝
[누나]
[누나, 누나누나 누나]
그날 이후, 진도하는 '누나'라는 호칭이 꽤나 익숙해 진 듯 하였다. 아침부터 메신저가 쉴 새 없이 울렸다. .
[응, 응응응. 왜? ㅋㅋ]
‘누나’라며 나를 찾는 그의 모습이 괜스레 귀엽다.
[우리 오늘 이거 보자.]
대화창에 뜬 건 인기 영화의 예매권.
시간은 퇴근 무렵, 회사 근처라 칼퇴만 한다면 충분히 맞출 수 있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책상 위엔 아직 처리하지 못한 업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나는 쉽게 답을 하지 못했다.
[음… 오늘 칼퇴가 가능할까?]
[그럼 다음에 보면 되지~]
[응, 생각 좀 해보고 말해줄게]
입사한 지 어느덧 10개월.
아직 신입 티를 완전히 벗기엔 이르지만, 더 이상 ‘막내’가 아닌 회사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회의 내용을 따라가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내 의견도 내고 성과도 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전공과 무관하게 맡게 된 회계 업무는 쉽지 않았고, 물어볼 사수 하나 없는 나는 매일 벽에 부딪히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었다. 도망치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퇴사할 날이 온다 해도,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는 듣고 싶었다. 그래서 퇴근 후에도 회계 공부를 이어갔다.
그리고 그 곁엔, 늘 묵묵히 기다려주는 진도하가 있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영화표를 보낸 날은 하필 부가세 신고를 며칠 앞둔 시점이었다.
나는 혼자 작성한 신고서를 수십 번 고쳐보며 불안에 시달렸다.
스스로를 믿을 수 없었고, 초라함에 예민해졌다. 신경은 날카롭게 곤두섰다. 그런 나를 그는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더 붙잡아봐야 소용없다는 듯 컴퓨터의 전원을 내렸다.
그 순간, 대화창이 반짝였다.
[끝났어요?]
뒤돌아보니 역시 진도하였다. 퇴근 시간이 훌쩍 넘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진도하는 아무 말도 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를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미안함과 괘씸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잠깐만, 나 좀 봐요]
짧은 메시지를 남기고 나는 먼저 사무실을 나섰다.
우리 회사는 4층짜리 작은 빌딩의 꼭대기 층에 있었다.
그 위 옥상은 아무도 잘 찾지 않는 공간이었고, 종종 우리 둘만의 아지트가 되곤 했다.
“지원님~”
그의 목소리가 계단에 은근히 울려 퍼졌다.
“쉿. 다 퇴근하신 거 맞죠?”
“그럼요. 저만 지원님 기다렸죠.”
“하… 그러니까 왜요? 왜 기다리냐고요.”
예상치 못한 내 물음에 그는 잠시 멈칫했다.
“그야… 누나가 아직 안 갔으니까.”
나의 날 선 반응에 그의 목소리는 조금 낮아졌다.
“나 오늘 일 많다고 했잖아. 그런데 말도 없이 기다리고… 난 네가 기다리는 줄도 몰랐고…”
“난 괜찮아. 누나 기다리는 거…. 그러니까 화내지 말아“
그가 조심스레 나를 달래던 순간, 계단 아래쪽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모두 퇴근했을 시간인데…
나는 난간 사이로 몸을 숙여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친 건, 진도하와 같은 부서의 과장님과 부장님이었다.
“어어, 지원 씨였구나. 무슨 일 있어요?”
걱정스레 묻는 부장님의 목소리에,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얼마되지 않은 우리의 비밀 연애가, 들통날 위기에 처한 것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