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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H Jul 11. 2019

아침에는 '빵이랑'!

NO.3 - 달지만도 쓰지만도 않은 일상의 맛, '모파상'

에디터 - 리미

포토그래퍼 & 일러스트 - 융두, 석원


나는 소설이 재미있다


소설 속 이야기에는 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나온다. 약간의 집중력과 상상력만으로 진짜 현실에 있을 법한 캐릭터의 은밀한 야망이나 깜깜한 속내까지 읽어낼 수 있다. 실제라면 절대 알 수 없을 심연까지 보기도 한다는 것이 현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고전 소설도 마찬가지다. 시대 배경과 관습이 조금 다를 뿐이지 인물들이 보여주는 생각과 행동은 지금을 살아가는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현실과 오버랩되는 부분들을 찾는 것이 책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다.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는 밀당의 고수가 아닐 수 없고 (의도했든 안 했든), 이런 남주 때문에 속 끓이면서도 스스로의 마음에 솔직하고자 하는 ‘리지’에게서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모습이 보인다. <목로주점>의 줄거리는 언뜻 봐도 흡사 ‘사랑과 전쟁’이며, <1984>나 <동물농장>를 읽을 땐, 우리가 매일 읽고 보는 뉴스나 포털사이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멋진 신세계>는 어떤가? 디스토피아를 상상한 거 치고는 능률과 효율을 맹신하는 우리의 모습과 많은 부분이 비슷하다. 고전을 읽다 보면 소설이 절대 판타지가 아니란 걸 느낀다. 생활의 면면들이 스쳐 보이니, 그래서 더 웃기고 안타깝고 애석하다.


나에게 ‘기 드 모파상’의 글은 일말의 동정심이나 신파 없이 소시민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달콤 씁쓸함의 정수이다. 사람이 겪을 수 있는 희로애락을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공평하게 보여준다. 인간사 호사다마요, 흥진비래라 <여자의 일생> 마지막 문장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좋은 것도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닙니다.” (여자의 일생; Une Vie, 민음사). 카페 ‘모파상’의 사장님은 그래서 가게 이름을 ‘모파상’으로 지으셨을까?  한없이 딱딱해 보이지만 속은 더없이 촉촉한 카눌레와 달콤한 것 같은데 마냥 달지도 않은 밀크티를 팔아서? 좋지만도 나쁠 것만도 없는, 반전을 거듭하는 일상과 닮았다고 하면 비약일까? 아니면 그냥 사실주의와 프랑스식 디저트를 사랑하는 분일지도 모르겠다.



카눌레는 보르도 지방의 수도원에서 만들기 시작한 프랑스 전통 디저트이다. 나는 속으로 “대체 수도원에서 만든 달다구리가 얼마나 맛있겠나, 궁중에서 먹던 빵 정도 돼야 버터에 크림에 입안이 즐겁지 않겠어?” 생각했던 것 같다. 카페 ‘모파상’에서 주문했던 카눌레를 봤을 때도 그랬다. 생긴 건 딱딱하고 약간 탄 것 같이 생겨서(게다가 엄청 작아서) 기대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좀 놀랐다. 다른 집 카눌레와는 달리 속이 무지 촉촉하고 너무 달지 않아서 커피와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푸딩 같기도, 커스터드 크림 같기도 한 이 속이, 바삭한 밀랍과 조화를 잘 이룬다. 포장을 원한다면 카페 옆 ‘럼앤바닐라’에서 더 편하게 할 수 있다. 카페 ‘모파상’의 대표인 임 훈 셰프가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디저트지만 너무 달지 않기 때문에 꼭 커피와 마시지 않아도 된다. 메뉴에 준비되어 있는 홍차나 밀크티를 곁들여도 좋다. 얼죽아 (얼어 죽어도 아이스)에 아메리카노만 찾는 나지만 따뜻한 블랙티와 까눌레를 먹었을 때 즐거움이 배가 됐다. 좀 더 달달하게 먹고 싶을 때는 이름마저 ‘여자의 일생’인 밀크티를 마시면 된다. 홍차의 쌉싸래한 향과 달달 고소한 우유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반복되는 일상에 권태와 허무가 밀려오는 날 책 한 권 들고 평일 늦은 저녁에 혼자 카페에 방문해 보길 권한다. 연남동 골목에 위치해 비교적 조용하고 테이블마다 LED 스탠드도 있으니 밤에 책 읽기 딱 좋은 곳이다. 100년도 더 전 시대에 사람들은 어떤 하루를 반복했는지 나와는 얼마나 같고 다르게 사는지 읽어보자. 아마 살아가는 모습이 지금보다 크게 더 낫지도 나쁘지도 않다고 느낄 것 같다. 그때쯤 적당히 달달한 밀크티 한 잔 마시고 다들 뭐 별거 없네! 하며 권태와 허무는 자리에 두고 나오면 된다. 


*참고로 나는 카페에서 <여자의 일생>을 읽었고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는 교훈을 되새겼다.  



※ 위의 콘텐츠에 대한 모든 저작권은 '매거진 랑', 그리고 산하 에디터에게 전적으로 있음을 안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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