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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승주 May 09. 2021

“그래도 우리, 사람 살리는 과거든요.”

존중

병원 안에는 여러 진료과가 있다. 흔히 어떤 장기를 다루는가에 따라 여러 개의 과로 나뉘지만, 학생들한테는 주로 ‘바이탈을 잡는 과’와 그렇지 않은 과로 나뉘게 된다. ‘바이탈을 잡는다’는 말은 생명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을 한다는 뜻이다. 즉 뇌출혈, 심근경색, 암과 같이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와 관련된 질병들을 다루는 과를 ‘바이탈을 잡는 과‘ 혹은 ‘바이탈 과’라고 부른다.


인기는 당연히 바이탈을 잡지 않는 과가 더 많다. ‘당연히‘라는 말이 야속하게 느껴지겠지만 실상이 그렇다.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일을 하다 보면 긴장 속에서 일할 수밖에 없고 사람들도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살릴 수 있는 환자를 놓치는 순간 의사가 짊어져야 할 짐도 크다. 미국의 경우 이러한 과들에 대해 높은 수가를 책정하여 금전적인 보상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힘든 근무 환경에 낮은 수가 문제까지 겹쳐진 상태라 상황이 훨씬 더 좋지 않다. 제 아무리 사명감을 가지고 의과대학에 입학한 학생이라도 이러한 현실을 알고 나면 제 발로 고됨의 굴레로 들어가긴 쉽지 않을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흉부외과나 신경외과와 같은 과들은 아예 실습 전부터 선택지에서 배제하는 학생들이 많다. 주변에서 흉부외과나 신경외과에 가겠다고 하면 “너는 참의사구나”라고 말하며 웃어 넘기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좋지 않은 성적을 받았을 때 “나는 흉부외과나 신경외과에 갈 거야”라며 강제로 사명감이 생겼다는 친구들도 있다. 뛰어난 학생들이 지원하여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일을 하여야 할 분야인데, 안타깝게도 사람을 살리는 의사에 대한 자조적인 태도는 학창시절부터 팽배해있다. 이처럼 안타까운 현실이 비단 개개인의 사명감에 관련된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분야에 대해서는 의사들을 유인할 현실적인 방안과 정책들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신경외과 실습을 돌며 한 선생님께 왜 신경외과를 선택하였는지, 요즘도 그렇게 힘든지 여쭤본 적이 있다. 선생님은 뇌를 수술로 다룬다는 점이 흥미로웠다고 했고, 이번주에도 월요일에 출근하여 목요일에 퇴근한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예전만큼 힘들지는 않다고 했다. 예전 인류에게는 체세포 분열을 통해 몸을 두 개로 분리하여 일하는 능력이 있었나 생각하고 있던 순간에 선생님이 덧붙였다.  

  “그래도 우리, 사람 살리는 과거든요.”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아를 실현하고 삶을 이끌어간다. 누군가에게는 부럽지 않은 통장 잔고가, 누군가에게는 여유로운 여가 시간들이, 누군가에는 뛰어난 연구 성과가,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람을 살리는 일 그 자체가 그들의 삶을 지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저수가 정책으로 보편적 의료를 달성하였으나 나는 종종 그로 인해 발생한 부작용들을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이 과도하게 짊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곤 했다. 그럼에도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퇴근하지 못하는 의사들이 다음주에도 묵묵히 병원에 나올 수 있는 건 사람을 살린다는 보람과 사회로부터의 존중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힘내십시오. 항상 멋있다고 생각하고, 존경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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