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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승주 May 09. 2021

죽기 직전의 누군가로부터 “지옥에나 떨어져”라는 말을

지옥

병원에 있다 보면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때가 많습니다. 워낙 좁은 사회다 보니 제가 속해 있는 병원뿐만 아니라 다른 병원의 이야기 또한 심심찮게 들려옵니다. 아래 이야기 또한 그중 하나입니다. 당사자나 해당 병원의 입장에서는 거론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일 수도 있기에 이야기의 많은 부분들을 임의로 각색하였습니다. 언젠가 전해들은 이야기의 큰 맥락만 유지하였을 뿐, 본 이야기에 나오는 정보들은 모두 글쓴이가 임의로 재설정한 것으로 특정한 인물이나 병원을 지칭하는 것이 아님을 밝혀둡니다.




사람의  모습이 나오는 순간들이 있다. 어떤 일이든 극한의 상황에 이르렀을 때가 그러하다. 흔히들 술을 마셔보면  사람의  모습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셔본 적이 거의 없는 나는 을 통해 누군가의  모습을  적은 없다. 오히려  경우에는 의과대학에서 공부를 하다가 누군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적이 있다. 해야  일들이 본인의 역량을 넘어설 정도로 밀려오는데 시간은 턱없이 부족한 경우, 학생들의 스트레스는 극한으로 치닫는다. 그냥 어쩔  없는 일이니 생각하고 반쯤 포기해버리면 좋으려만,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까지 도달한 친구들은 불행하게도 대부분 그러한 방식으로  편하게 살아본 적이 없다. 그렇다 보니 극한의 상황에 놓이면 지나치게 예민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친구들이 있다.  친구들도 오죽하면 그러겠느냐마는, 다같이 힘든 상황인데 혼자만 얄밉게 구는 친구들이 가끔은 야속하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병원에는 ‘평판이라는 문화가 있다. 전공의를 선발할   과에서 여기저기 연락하여  친구가 괜찮은 친구인지, 소위 ‘ 나가는친구는 아닌지 평판을 확인하는 것이다.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친구들은 아무래도 평판이 좋지 않고, 평판이 좋지 않으면 전공의를 지원할 때에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너무 나의 모든 것들이 평가받는  아닌지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적어도 기본적인 인성은 갖춘 사람들과 일을 하고 싶은 병원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가 가지 않는  아니다.


언젠가 병원 생활을 하며 들었던 이야기 중엔 이런 사람도 있었다.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였는데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평소에 앓고 있던 질환이 급격히 악화되어 급히 병원에 입원하게  분이었다. 몸이 아파서 그런 건지, 일종의 섬망이 발생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원래 성격이  좋았던 분인지,  이유는 몰라도 할머니는 의료진에게 계속 짜증을 냈다. 그러던  특정 검사가 필요하여 검사실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도 할머니 짜증을 많이  모양이었다. 검사 도중 계속 몸을 움직여서 검사 결과도 자꾸 오류가 났다. 할머니를 검사실로 모시고  담당 인턴은 덩달아 짜증이 났다.

      “... 환자분 가만히  계세요. 검사가 자꾸  되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이렇게 불편한데  자꾸...”

      “가만히 계세요.”

인턴은 할머니의 말을 끊고 다시 검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또다시 실패. 인턴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다. 할 일도 태산이고 바빠 죽겠는데 왜 자꾸 괴롭히는 건지. 결국 인턴은 검지 손가락으로 할머니의 이마를 툭툭 밀며 말했다.

      “할머니 (툭) 가만히 (툭) 좀 (툭) 있으라니까요?”

순간 할머니의 얼굴이 빨개지고, 두 눈은 커다랗게 커졌다. 찰나에 벌어진 일에 잠깐 멍하니 있던 할머니는 이내 인턴을 잡아먹을 듯한 얼굴로 크게 소리쳤다.

      “니가 의사면 다야? 건방진 새끼. 내가 이거 다 신고할 거야. 너 같은 건 지옥에나 떨어져야 돼!”

도무지 끓어 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 없었던 걸까. 할머니의 분노는 할머니의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집어 삼켰고, 결국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이후 당황한 의료진들이 긴급 처치를 시행한 후 할머니를 급히 중환자실로 옮겨 체외막산소공급기(ECMO)를 포함하여 다양한 침습적 처치를 시행했지만, 할머니는 끝내 그 길로 사망하고 말았다.


도무지 협조가 되지 않는 할머니를 모욕과 권위로 제압해 볼 요량이었던 걸까. 죽기 직전의 누군가로부터 “지옥에나 떨어져”라는 말을 듣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 분노 섞인 저주는 인턴의 태도를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까, 아니면 그저 바쁜 와중에 운이 좋지 않아 본인을 힘들게 했던 기억 정도로만 남았을까.


매번 문장은 고상한 척 쓰고 있지만 나도 힘든 상황에서는 제법 예민해 질 때가 많다. 하지만 성숙하지 못한 인격으로 평판이 나빠지는 문제는 고사하더라도, 적어도 살 날이 며칠 남지 않은 환자들의 마음에 분노의 불씨를 지피는 의사는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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