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극복의 환상 – 이겨냈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오는 감정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이겨냈다면서 왜 또 무서워요?”
“그때 해봤잖아요. 이제 괜찮은 거 아닌가요?”
“마음을 컨트롤 잘하면 트라우마는 극복할 수 있지 않나요? “
나는 그 질문 앞에서 한 번 멈춘다.
그리고 조용히, 속으로 되뇐다.
두려움은 선형이 아니다.
이겨낸다고 끝나지 않는다.
그 감정은, 다시 찾아올 수 있다.
두려움은 순환한다
나는 스쿠버다이빙을 배우고,
심지어 어드밴스드까지 취득했다.
그 뒤로 여러 번 바다에 들어갔고,
깊은 수심 속에서도 침착하게 호흡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느 한 장소에서,
예상치 못하게 숨이 막히는 감각이 다시 찾아왔다.
물속으로 내려가는 그 순간,
익숙해야 할 장비와 움직임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고
가슴이 조여왔다.
그 감정은 오래전,
내가 처음 물속에 들어갔을 때 느꼈던 바로 그것이었다.
“왜 다시 무섭지?”
그 질문 자체가 함정이다
그때 나는 당황했다.
이미 몇 번이나 해봤던 일인데,
왜 다시 무서울까?
하지만 곧 알아차렸다.
두려움은 ‘이겨낸 것’이 아니라,
‘계속 관계 맺어야 할 감정’이라는 것.
무언가를 한 번 성공했다고 해서
그에 대한 감정이 완전히 정리되는 건 아니다.
삶은 계속 바뀌고,
상황은 달라지고,
몸과 마음은 끊임없이 새롭게 반응한다.
진짜 극복은, 다시 만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
이제 나는 ‘두려움이 다시 찾아오는 순간’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이 감정을 다시 만나도 괜찮아”라는 마음이 준비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예전 같았으면
그 감정에 휘둘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감정의 파동을 느끼면서도
조금 더 천천히, 단단하게 대응하는 나를 본다.
이건 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두려움이 바뀐 게 아니다.
감정은 파도처럼 오고 간다
두려움은 파도처럼 반복된다.
하지만 그 파도가 나를 덮치더라도
이제 나는 물 위에 뜨는 법을 배웠다.
다시 물에 들어갈 때,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마음속으로 나에게 말한다.
“지금 다시 무섭지만,
이번에도 괜찮을 거야.”
그 믿음은
예전의 용기에서 온 것이 아니라,
수많은 감정의 순환을 통과해 온
내 안의 내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아직도 배우는 중이다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때로는 더 깊은 층에서,
더 조용하게,
혹은 더 낯선 얼굴로 다시 온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감정을 알아보는 사람이 되었고,
그와 함께 숨 쉬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진짜 극복이란,
두려움이 다시 찾아올 때
나 자신을 탓하지 않고,
그 감정의 재방문을 담담히 맞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