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이 지나면 심심치 않게 가을이 다가온다는 것을 피부로 직감했는데 올해는 여전히 밤에도 실내온도는 30도를 기록 중이다.
다행히 장마는 끝나 빨래는 반나절 만에 마르고, 여전히 덥지만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도꽤나 서늘한 계절의 기운을 입었다.
종일 흐려 8월에 들어선 지 처음으로 땀 흘리지 않는 출근길이었다. 에어컨 바람이 미적지근하게 흐르는 승강장, 바람 같은 건 한 점 피부에 닿지 않는 깊고 깊은 환승 계단길, 참 지랄 맞은 여름이었다.
유독 올해는 셔츠를 적시는 땀이 참으로 지랄 맞았다.
긴 장마가 끝나고 나니,낡은 나무 처마를 타고 흐른 빗물 탓인지 창틀이 부분 부분 누렇게 물들었다.
하필이면 출근길에 이 누런 창틀이 어찌나 거슬리던지 당장 닦아내고 싶었지만, 가던 길은 지체 없이 가야 한다. 마음에 걸려도 먹고사는 길은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건 마음 한 구석에서 종일 때 묻은 창을 바라보고 있다. 마당에 우두커니 서서 손을 뻗어 쓱싹쓱싹 지워 내지도 못하고 꼭 닫힌 창을 생각하며 오늘 하루도 닫고 지낸다. 창틀에 내가 이염이라도 된 모양이다.
퇴근길 고무장갑과 세제를 사서 집으로 향할 때는 이미 땅거미 진 늦은 여름 길을 걷고 있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노을 지는 해는 당분간 만나지 못할 것이다. ‘설마, 안 지워지는 건 아니겠지?’
가만히 있는 창이 이유 없이 색이 바래고 때가 묻듯이 어느 하루는 가만히 내 할 일을 해도 타인의 무례함을 뒤집어쓴다. 어떤 무례함은 아무것도 아닌데도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서글프게도누렇게 빛바랜 얼룩은 창틀이 제 수명을 다하도록 지워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조금 긴장하고세제를 묻혀 힘을 주어 창틀의 누런 얼룩을 닦았다. 쓱싹쓱싹 여름이 제 기운을 다 한 늦은밤에 가로등 불빛에 의지하여 오늘의 무례함을 지운다. 사실 다 별 것 아니다. 훌훌 털어내면 기억조차 남지 않게 될 것이다.
지랄 맞은 더위가 물러가니 새끼 손톱만한 모기가 앵앵 신나게 나를 물어뜯는다. 몸뚱이는 어찌나 큰지 젖은 행주로 잡아도 딱히 반항하지도 않았다. 그만큼 굶주림에 눈이 멀었던 놈인지 아니면 사실 모기로 태어나 살아보니 하루가 별 거 없고 에라이 그냥 이 생을 끝내자, 하고 가만히 내 팔뚝에 내려앉아 이번 생을 마감할 작정이었던 놈인지도 모르겠다.
절간같이 조용한 마당에 쓱쓱 싹싹 창틀을 닦는 소리와 물소리만 나뒹군다. 7월부터 번갈아 울어댄 매미는 이제 제 계절이 끝난 것인지, 귀뚜라미 울음소리만 열대야가 걷힌 계절에답했다.
산 모기 서너 마리에게 뜯기도록 창틀을 닦았으나 여전히 누렇다. 깨끗하게 닦여 새하얀 모습을 드러내는 걸 보고 개운한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어쩌면 집주인은 훗날 샷시 교체비용을 물어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애석하게도 지금껏 딱히 상식적인 임대인은 만나보지 못했으니까.
원하는결과를 달성하지는 못했으나 몸을 움직인 탓일까, 오늘 묻혀온 타인의 무례함이 절반쯤은 씻겨 나간 것 같다. 노동을 통해서도 쉼을 얻을 수 있다니 참으로 배부른 소리다.
나는 그저 가만히 있어도 뾰죡해진 타인의 무례를 뒤집어쓰고 내 하루의 한 순간을 애써 지워야 하는 날도 있다.
옷에 튄 반찬 얼룩처럼 예상을 뒤엎고 잘 지워지지 않는 작은 얼룩이 되어 꽤 오래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긴 비에 누런 상흔을 입은 창문처럼, 오늘 얻은 나의 작은 얼룩도 이제 그만 못 본 체해야겠다. 매일같이 나를 뱉어내고 제 고집만 부리는 집인 줄만 알았는데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면 이 집도 마치 오늘의 나를 살아낸 것 같다.
창틀의 얼룩을 지우고 타인의 무례함도 씻어내고 싶었는데, 우리 모두 오늘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은 다했으니, 잠자리는 편안할 것이다.
창 밖에서 뜨거운 공기가 들어오지 않는 게 얼마만이던가?
온 동네 에어컨 실외기 소리도 잠잠하다. 며칠이 더 지나면 창가의 커튼이 바람에 살랑이는 것을 보며 잠에 들 것이다.
지대가 높은 탓인지 요 며칠 새벽 공기가 차가워 선풍기를 끄고 다시 잠에 들었다.
오늘의 때를 지울 만큼은 지운 셈 치고, 새로운 날에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며 이만 불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