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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M삼min Oct 26. 2024

안녕히, 더 나은 계절을 맞이하길.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닥에 내디딘 발이 시린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귓바퀴가 찬바람에 얼얼한지가 오랜만이라 10월 초 어느 날에 나는 연신 내 얼굴을 비비며 산꼴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내가 선택한 가난은 지난봄, 여름동안 다채로운 형태로 나를 못살게 굴었다.

 낡은 주택의 지층 살이는 벌레, 곰팡이, 지나치게 높은 습도로 많은 불편을 감당해야 했다. 어떤 은 내게 층간소음의 환멸을 안겨 주어, 9평 반을 선택하게 만든 13층의 그녀를 탓했고, 내가 지나쳐 온 여러 임대인들 또한 그 표적이 되어 심심치 않은 후회의 장을 낳았다.


 내가 선택한 가난은 냄새에서부터 풍겨 나왔다. 

찬장을 열면 풍기는 퀴퀴한 냄새는 찬장은 커녕 부엌을 제대로 쓸 엄두도 내지 못했고, 세탁 후 마른빨래에서 풍기는 여전히 퀴퀴한 향기도 기분까지 바짝 말리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내가 입은 옷에서 사람들이 싫어할만한 냄새가 나지 않을까? 향수로 가려도 덮이지 않는 세탁기가 뿜어내는 똥내인지 하수구 냄새인지, 혹은 세탁기 저 구석 어딘가에 단단히 똬리를 튼 곰팡이의 냄새인지 알 수 없는 향기가 온종일 내 주변을 가득 채울까 봐 두려웠다.

 몇 번 입지 않아 버리기엔 아까운, 곰팡이 핀 이너웨어가 새하얀 블라우스 너머로 남의 눈에 띌까 잔뜩 움츠러들었다. 

 내가 선택한 가난은 나를 단단히 숨기고 싶게 만들었다. 오늘 차림새가 맘에 들지 않는 어떤 날은 다른 날보다 더 주눅 들어 스스로를 꽁꽁 숨기고 싶은 지경에 이르렀다.

 

 곰팡이에서 해방된 줄만 알았던 9월과 10월에도, 뒤늦게 발견한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습한 이 낡은 주택이 잘못된 선택인지, 옷가지를 말리고 닦고 또 닦는 가난한 여름의 뒤태 수습해야만 했다.

 이직 선물로 엄마가 큰맘 먹고 선물한 양가죽 코트에 슬었던 하얀 곰팡이를 닦고 또 닦고 유분이 많은 크림을 이틀이 넘도록 바르고 또 말리고 잘 뉘어서 그늘에서 말리고, 그러는 동안 내가 선택한 가난이 짜증스러워 왈칵 눈물이 솟았다. 원래 사람이 힘들고 지치면 쉽게 감성적으로 바스러지기 마련이다.



 80프로를 웃돌던 햇볕 하나 들지 않는 옷방의 습도가 50프로 이내로 떨어진 10월, 실내온도 19도를 기록하던 이 낡은 집에서 또 미라가 된 알 수 없는 벌레 사체를 발견한다.

 여기저기 뿌려둔 살충제 탓에 이제는 산 것보다 죽은 것을 치우는 게 대부분이지만 옷방 구석, 쌓인 책들 사이에서 말라비틀어진 놈들을 수습할 때도, 사실은 종종 후회하고 있다.

 내가 선택한 이 가난한 형태의 9평 반 살이를.


  어른이 되고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은 나 스스로 내린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다.

 말라비틀어진 다리 많은 녀석의 사체를 심심찮게 주워 버린다. 깨끗하게 세탁해서 걸어둔 옷일지라도 탈탈 털어 입고 어제 신고 고이 벗어둔 신발이라도 탈탈 털어 신는 습관이 생겼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펼친 책에는 부끄럽게도 작고 하얀 거미가 집에서부터 따라와 책장 위를 어슬렁 거린다.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옆사람이 그것을 볼까 봐 조금 소리 나게 책장을 덮었다. 녀석이 나를 따라 회사에 가고 싶어 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포스트잇 플레그로 녀석의 잔해가 남은 페이지를 표시해 두고 애써 담담하게 몇 페이지 더 읽었다. 출근길은 그렇게 전보다 더 길어졌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깨끗한 티슈로 녀석을 잘 닦아 염하고, 책과 가방을 탈탈 털었다. 도대체 내가 무얼 하는지 궁금해하는 상사의 눈길에 뒤통수가 부끄러웠다.

 

 싱크대 개수구는 사용하고 곧바로 뚜껑으로 닫아둔다. 햇살이 좋으면 온 집안의 창을 열어 환기시킨다. 선물 받은 방향제와 피톤치드를 뿌리는 것도 일과 중에 하나가 되었다.

 볕 좋은 주말에는 마당에 나가 살충제를 도포한다. 종종 창틀을 닦는다.

 층간소음에서 벗어났지만 홀로 이 모든 것을 감당해 낸 주말 새벽은 종종 맘이 무거워 잠을 설친다. 일상은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그런데도 버거워졌다. 12시간 집을 비우고 돌아오면 가로등만 밝은 을씨년스러운 마당을 종종걸음으로 지나쳐 왜인지 여전히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집으로 돌아온다.

 일주일에 두어 번, 퇴근길엔 동네 마트에서 와인  한 병을 집어온다. 이제는 나를 알아보는 캐셔와 마트 사장님이 반갑다.





 새로운 인생을 준비할 시간을 버느냐, 그냥 폐기 스티커를 붙이지 않은 채 남아있어야 하느냐, 쉽지 않은 결정이다.  남거나 떠나거나 모든 대상자들은 쉬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일확천금을 주겠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이 지독한 노동에서 약 2년 정도 해방시켜 주겠다는 유혹은 하루하루 기어이 버텨내는 노동자에게는 참으로 달콤한 유혹이었다.

 두드려 맞은 것 같은 삐걱대는 몸을 일으켜 땀을 뻘뻘 흘려가며 사람으로 가득 찬 지하철을 버티면 이제 하루의 시작이다. 계절이 흐르고 시간이 가는 것도 모르고 점심 먹고 또 꾸역꾸역 버티면 하루가 가고 일주일이 흐른다. 주말이 오면 밀린 집안일이 아우성친다.

 차 한 잔 마시면서 고민할 시간 같은 건 없었다. 빨리 신청하면 두 달치 월급을 더 준단다. 밥줄이 걸린 어쩌면 인생이 걸린 문제가 마치 여행 프로모션 티켓을 판매하는 것처럼 ‘초특가 마지막 찬스’ ‘사장님이 미쳤어요’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온종일 대상자들을 따라다녔다.

 버려질 것인가, 방치될 것인가?

 경기 안 좋아 취업 시장이 얼어붙었다는 말은 늘상 들었다. 회사에 앉아 주어진 업무를 표면적으로 하는 동안에도 호두알만 한 머리를 굴린다. 계산기를 두들긴다. 먹고사는 일에 계산기를 두들기는 건 생각보다 무척 피로한 일이다.

 먹고사는 고민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채우자 하루가 멀다 하고 아등바등하는 삶에 치를 떤다. 열심히만 살아온 내가 통째로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얼마나 더 열심히 살았어야 했을까? 계산기만 만지작 거리다 ‘사장님이 미쳤어요’ 얼리버드 기간을 날렸다. 마음이 멀리 떠나, 하는 일마다 잦은 실수가 나왔다. 자질구레한 실수들이 여기저기서 탄성을 질러대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낡고 닳아 어느 곳 하나 반짝거리지 않는 나라는 인간은 한 마리의 맹수 '리처드 파커' 같은 은행 빚을 구명정에 태우고 망망대해를 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어떤 선택이 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일까? 얼리버드를 놓치고 희망퇴직 신청 마감일까지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었다. 나에게는 표류할 용기 같은 건 없다. 그것만은 잘 알 수 있었다.
 

 

 혹독하게도 약이 바짝 오른 지독한 여름과 함께 친애하는 동료들을 떠나보냈다.

 나는 여전히 마당에 남겨진 낡아빠진 빗자루마냥 자리를 지키고 있다.


 폐기 스티커에 내 품번을 붙이지 못한, 용기 한 스푼이 부족했던 나를 후회한다.

 지독한 여름이었다, 장마도 긴긴 열대야도, 매일같이 쌓이던 폭염경보도. 그리고 이제 손을 들어 인사할 수 없는 동료들이 떠나간 자리도.

 지독하게 나를 괴롭히던 여름이 많은 것들을 가지고 나를 떠나갔다.

 그 여름을 보내자 앞머리 한 줌이 새하얗게 세었다.


  방치된 빗자루에 벌레가 꼬이고 먼지가 내려앉듯, 떠나간 동료들의  자리가 슬며시 나에게 내려앉는다. 버거운 일상은 이미 예견했던 수순이었다.

 지독한 여름을 보낸 나는 방치되어 곪아가고 있다. 어쩌면 더 이상 세탁세제 향을 풍기지 않는 내 옷가지들은 이미 곪고 닳은 나에게서 풍기는 향인지도 모른다.

 나는 닳았다. 이미 나이보다 한참 닳고 늙었다.




 우산 없이 아침을 떠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두어 방울 비가 내린다. 곰팡이가 잘 스는 집에 젖은 가죽신을 신고 들어 오는 게 싫었는데, 집에 도착하고야 빗줄기가 거세게 쏟아진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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