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빗자루가 필요한 것 같다.
버리는데 돈이 들면 방치된다. (ERP)
시력 0.05 미만의 쌩 눈에도 마당에 날아들어온 낙엽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한 구석 시멘트 바닥을 뚫고 큼직하게 자란 열매까지 맺은 잡초는 긴 장마를 버티지 못하고 죽어 바짝 말라가고 있고, 손바닥만 한 낙엽은 초여름부터 몇 차례 마당에 날아들었다.
이 집에서 처음 맞이한 주말, 마당 한구석을 떡 하니 차지한 녀석이 눈이 들어왔다. 이건 누가 봐도 쓰임을 다 한 것 같은데 버리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버리는데 돈이 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태초부터 앙상한 나무 손잡이는 여전히 제 쓰임을 다 하지 않았다는데 풍성했던 빗자루 솔은 다 닳고 낡아 빠져 뼈대를 드러내고 있다. 열심히 살아온 것은 틀림없는 모양새다. 그리고 폐기물 스티커 한 장이 사기 싫어, 그대로 있던 곳에 방치되어 나에게 넘겨졌다.
버릴 때도 돈이 든다. 쓰임을 다 한 빗자루 하나를 버리는데도 돈이 드니 소유주는 버리는 방법보다는 방치를 택했다. 그 소유주가 바뀌어서 자연히 누군가 버려줄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마당 한 구석에 방치되어, 한때의 제 모습을 한 새 빗자루가 제 쓰임을 하는 꼴을 지켜볼 녀석을 보니 측은한 마음이 든다.
*Early Retirement Program (ERP)
회사는 ERP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회사가 얼마나 챙겨줄지, 과연 내가 대상자일지 술렁이고 있다.
마당 쓰는 빗자루를 버릴 때도 돈이 드는데, 사람을 합법적으로 폐기한다니 돈이 들어야 마땅하다. 회사는 꽤 오래전부터 쉬쉬하면서 외부에서 폐기 전문가를 섭외했다. 어느 정도 진척이 있는지 이제 이 사실을 공식화했다.
트렌드에 뒤떨어진다는 것, 쓰임을 다 했다는 것, 사실은 새로운 도구로 너를 교체하고 싶다는 것, 그 모든 과정을 잡음 없이 깔끔하게 치르기 위해 소유주들은 많은 시간을 들여 일정 자금을 확보했다.
폐기물은 제때 가져가주면 속이 시원한 법이다. 수거일에 가져갈 수 있도록 정해진 룰을 숙지하고 따른다. 내다 놓은 폐기물이 눈앞에 사라지지 않을 때 이 모든 과정을 번복해야 한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전 과정을 꼼꼼히 복기하며.
낡고 오래된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화살이 꽂힌다. ‘요즘 사람들’과 기성세대가 첨예하게 대립한다. 버리는 건 확정인데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가져가는 게 맞을지 누가 맞던 상관없다는 태도로 날카로운 화살을 쏘아 올린다.
-요즘 누가 빗자루로 청소를 하나, 알아서 척척 돌아가는 로봇 청소기가 있는데-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네, 마당이나 계단은 빗자루로 쓸어야 하거늘-
-그래서 얼마나 준데?-
이제 사람들은 제 눈에 꼴 뵈기 싫은 사람들이 이 기회에 나가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품는다. 제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고 여긴다. 저 하나의 기준이 마치 회사 전체가 지향해야 할 합리적인 기준인 것처럼, 오냐오냐 키운 자식들은 제 요구조건에 순응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의 쓸모를 솔이 낡아 빠진 빗자루 마냥 폐기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꽤 오랜 시간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지고 묵묵히 비질을 해온 사람들도 말한다.
-제 손으로 비질이라는 걸 해본 적도 없으면서 그냥 청소기 스위치 하나 켜보고 혼자 다 한 줄 알지!-
모니터 앞에 앉아서 딱히 열심히 일하지 않고 시간이나 때우는 부서장들이 나가주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과, 할 줄 아는 거 하나 없으면서 회사가 좀 오냐오냐 해준다고 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가는 줄 아는 어린 팀장들이 좀 나가야 한다는 사람들이, 저마다 정보 교환 목적을 가장하여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화살을 쏘며 아슬아슬하게 일상을 유지하려 애쓴다.
다 부질없는 짓이다.
오직 소유주만이 물건의 쓸모를 규정할 수 있다. 정말로 닳고 닳아 뼈대가 보여 쓰임이 얼마 남지 않는 것들이 버려질 수 있고, 멀쩡하지만 트렌드에 뒤떨어져 소유주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버려질 수 있다. 잘 작동하지만 오래된 휴대폰, 약정이 남은 렌탈 가전 등 품목은 다양하다.
버릴 것을 추렸으니 그냥 버리면 되는 줄 알았는데 폐기 비용이 물품마다 다르게 발생한다. 시원찮은 렌탈 가전들은 이제 그만 반품하고 싶은데, 심지어 이것들은 위약금까지 줘야 한다.
다 같이 어려운 때에 쓸모와 가성비를 잘 추려서 어디 한 번 생활비 좀 아껴 보자는데 위약금과 폐기 비용 지출은 불가피하다. 매달 나가는 돈 줄여서 절약하겠다는데 일단은 돈을 쓰게 생겼다.
미국은 쓰레기 버릴 때 분리수거 같은 것도 안 하고 그냥 시커먼 봉투에 마구 담아서 내다 놓으면 되는데 한국은 왜 이렇게 까다로운지 소유주들은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쓸모를 규정하는 것은 먹이사슬 최상위의 포식자가 휘두를 수 있는 가장 날카로운 칼인데 그 조차 맘대로 휘두를 수 없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90만 원씨가 보기에는 자본주의 경쟁사회 안에서 회사가 불필요한 관용을 모든 ‘도구’들에게 지나치게 남용하는 것 같다.
위약금 계산기를 두들기고 할당된 폐기물 스티커를 세어보던 소유주는 이 새로운 미니멀리즘이란 트렌드를 위해 합의점을 찾는다. 위약금을 지불하면서까지 사용계약을 해지할 것, 돈 들여서 폐기할 바에 좀 더 두고 쓸 것을 구분하기로 한다. 다 버리고 새로 장만할 돈은 없으니, 어디 눈에 안 띄는 곳에 방치해 두면 될 작은 가재도구들은 굳이 돈을 들여 폐기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얼마 준데?"
"야! 우리 같은 가성비 직원은 나가도 티도 안 나는데, 나가라고 돈 쓰겠냐?"
9만 원씨를 내다 버리는데 회사가 얼마의 돈을 허용할지 한편으론 궁금했지만, 아무래도 회사는 폐기 비용이 아까워 지금 이대로 마당에 9만 원씨를 방치하는 쪽을 선택할 모양이다.
버리는데 돈이 들어 두고 간 빗자루는 여전히 실낱 같은 제 쓸모를 입증하려 마당 한 구석을 지키고 있다.
나는 쓸모를 다한 노쇠한 그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새로 사면 비싸게 사야 하니 그냥저냥 참고 쓸만해 방치될 나와 함께, 아직은 이 마당에서 몇 계절을 꽤 아늑하게 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