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at my memory

Eat, My Memory

당신이 생각나는 접시 #no. 3 루앙프라방의 사과

by 오M삼min

나는 푸시산에 올라 앞으로 보이는 메콩강의 전경을 바라보다 문득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뒤쪽의 전망이 보고 싶었다. 사람들은 하나 둘 모여 어디에서 왔냐고 묻고 신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나에겐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아서 잠자코 나만의 시간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푸시산 전망대에 오르면 아름다운 메콩강의 전경을 바로 마주할 수 있다

계단을 돌아 메콩강이 보이는 전경을 뒤로하자 루앙프라방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아, 이것을 보기 위해서라면 혼자가 되어도 기뻐.

푸시산 꼭대기의 작은 사원을 돌아 메콩강을 뒤로 하면 아름다운 루앙프라방 시내의 전경이 펼쳐진다

벤치는 잠깐 내린 비에 젖어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고 구석의 마른자리에서 라오스 청춘의 데이트만이 이어졌다.


-사바이디-

자꾸만 눈이 맞은 청년에게 인사를 나누자 청년도 사바이디 하고 인사해주었다.


해가 지는 루앙프라방의 아름다움을 담고 싶었으나 나는 원최 기계와는 사이가 좋지 않다. 그냥 눈에라도 담자 싶어 연신 안경 사이로 흐르는 땀을 닦고 있었다.


-사바이디-


까까머리 청년이 웃으며 인사했다.

청년은 비움을 배우고 싶어 출가하여 사원에서 몇 년을 보내다 이제 막 사회로 나왔다고 한다. 머리를 길러 새로운 헤어 스타일로 잘라보고 싶다고 하며 해맑게 웃었다. 루앙프라방의 한 사원에서 몇 년을 보냈음에도 푸시산 전망대까지 오른 것은 오늘이 처음이란다.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띠링 띠링 하고 알람이 울려 청년은 잠깐만 실례, 하고는 메세지를 확인한 뒤, 능숙하고 빠른 손으로 답장을 보냈다.

-승려가 아이폰을 가질 수도 있어?-

-이봐, 세상은 변했어-

한국의 스님도 아이폰과 갤럭시를 쓰시는데 내가 너무 바보 같은 질문을 했구나 싶어 사과했다.


-루앙프라방에서 뭐 하고 싶은 거 없어? 내가 같이 갈게-

청년은 재미있을 것이란 확신에 찬 눈으로 물었다.

-사실 나는 고민 중이었어, 방비엥에 갈지 농키아우에 갈지. 난 결정을 잘 못하거든-

-와, 방비엥은 나도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야. 하지만 농키아우도 무척 아름다워-

해가 져 어둑어둑 해지자 우리는 푸시산을 내려가기로 했다. 오렌지 빛이 감도는 천으로 몸을 감싼 가사 차림의 청년 또래 승려들이 푸시산을 오르다 청년에게 반갑게 말을 걸었다. 승려의 한 손에 들려있는 플라스틱 컵에 담긴 망고 주스를 보자 아이폰에 관한 질문이 얼마나 바보스러웠는가 다시 한번 상기되었다. 한 순간 꼬꼬마들이 되어 입고 있는 가사로 청년을 감싸는 시늉을 하며 웃었다.

-헤이, 유 컴 투 씨미 투모로 애프터 5:30 파인드 미 위드 힘-

승려 중 하나가 나에게 그렇게 외치고 푸시산을 향해 내달렸다.

-저 친구는 저 사원에서 지내. 게다가 프랑스어를 정말 잘 해-

푸시산 밑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사원이다. 관광객이 방문하면 그들과 대화도 나누고 기도도 함께 한다고 한다.

-그럼 루앙프라방은 이제 떠나는 거야?-

나는 사실 루앙프라방이 내 기대와는 달랐노라고 얘기했다. 탁발하는 승려들 앞에서 반짝반짝 노골적인 플래시가 터지고, 무리의 관광객들은 미니밴을 타고 투어처럼 우르르 몰려와 자리 잡고 앉아서는 승려들에게 음식을 공양하는 와중에도 셀카를 찍어댔다. 무례하기는 동서양인 모두 마찬가지였다.

-맞아, 우리로서는 어쩔 땐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런 마음을 가져선 절대 안 돼-

심지어 전날 탁발에서 누군가는 카메라 드론을 띄워 영상을 기록했다. 새벽의 고요함 속에서 헬기라도 뜬 줄 알았다. 산을 내려오자 청년은 가방 속에서 사과 한쪽을 반을 갈라 나에게 내밀었다. 달콤하고 적당히 새콤한 사과, 예전에 먹어 본 홍옥이 생각났다. 이 더운 날씨에 신기하게도 아직 차가웠다.

-예전에 나는 이런 사과도 마음대로 먹을 수가 없었어. 우린 아침과 점심을 탁발 공양으로 얻은 것을 두 번에 나누어 먹고, 저녁엔 물이나 주스만 마실 수 있거든. 그런데 이젠 그럴 수 있게 되었네, 헤헤-

망고 주스를 들고 있었으나 비쩍 말랐던 꼬마 승려의 가녀린 팔뚝이 생각났다.

사회에 돌아온 기념으로 맥주라도 한 잔 같이 하려고 했는데 왜인지 이 순수한 영혼을 내가 타락시켜선 안될 것만 같다.


청년의 소중한 사과를 반씩이나 뺏어먹고도 농키아우로 갈지 방비엥으로 갈지 아직도 결정을 못하고 여행사 앞에서 우왕좌왕 하자 청년이 말했다.

-너무 생각을 많이 하지 마, 그냥 너 자신이 원하는 걸 믿어 봐. 그럼 그게 맞는 길이야-

별 거 아닌 말 같지만, 승려였던 젊은이가 말하니 무게감이 실리는 것 같다. 너무 많은 생각, 나는 언제나 그것에 질식하는 기분을 느끼곤 한다. 맞는 말이었다.

청년이 갈피를 잡은 내 마음을 나보다 먼저 눈치챘는지, 나를 데려다 주겠노라며 몇 걸음 더 동행하더니 이내 사거리에서 우뚝 멈춰서며 말했다.

-루앙프라방에 다시 돌아오면 또 만나-

청년이 두 팔을 벌렸다.

-아! 너 이제 승려가 아니니까 내가 안아줘도 되는 거구나?-

청년이 흐뭇하게 웃었다. 나는 가녀린 청년의 마른 등을 있는 힘껏 꼬옥 안아주었다.

-우와! 너는 사원을 떠나고 날 안아준 첫 번째 사람이야-

그 기분이 어떤 기분인지 대충은 알 것 같아 진심으로 청년을 감싸 안아주었다.


청년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 어둑어둑한 사원에서 꼬마 승려가 불경을 외우고 있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고 싶었지만 몰래라도 그를 방해하고 싶진 않아 조용히 그 곁을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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