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에 걸쳐 내가 강물을 따라 남의 나라에 흘러들었다면 역시 돌아가는데도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돌아가는 길은 잔걱정으로 가득 차 떠나온 길처럼 설렐 수만은 없게 된다.
내가 가져온 한 장의 atm카드는 라오스에선 사용이 불가능했고, 그걸 라오스에 도착한 지 3일이나 지나서야 알았다. 루앙프라방 여행자 거리의 ATM은 다 시도해 보았다. 한참 더운 시간에, 통풍은 하나도 되지 않는 와인색 비어 라오 티셔츠를 입고, 노인네처럼 헐떡이며 여행자 거리를 산 송장처럼 쏘다녔다. ATM 카드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중국, 미국, 베트남,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해당 국가의 해당 로고 부착 ATM 사용 가능'이라고 적혀 있다. 시커먼 ATM기 화면에 비친 내 땀 투성이 얼굴에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야 이 똥개야'
그날부터 나는 가지고 있던 얼마 안 되는 달러를 환전하며 저렴한 도시로, 저렴한 게스트 하우스로, 저렴한 식사로 연명하며 생각했던 것보다 더 길게 버티다, 이젠 정말 ATM 카드를 쓸 수 있는 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지점에 이른 것이다. 남은 돈은 약간의 낍과 50 달러,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동계획에 차질이 생기면 숙박비가 발생하게 된다.
어제 만난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자스민과 나는 아침 일찍 므앙응오이 누아를 떠났다. 옆 방 남자도 루앙프라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선착장에 나왔다. 농 키아우 터미널에서 루앙프라방 북부행 차표를 예매하고 남은 낍을 확인했다. 저렴하게 밥을 먹고 생수 한 병 정도 사면 딱 맞을 것 같았다. 12시 30분에 출발하는 다음 차표를 예매했다. 루앙프라방에서 태국, 치앙마이행 버스 시간은 6시, 12시 30분 차를 타도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자스민과 근처 식당을 기웃대는 순간, 누군가 식당까지 쫓아와 손짓을 한다. 터미널까지 바삐 걷더니 입구에서 또 손짓을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자스민이 황급히 차표 시간을 확인했다. 기괴하게 꼬아 쓴 11:00, 우리는 분명히 12:30 티켓을 예매했다.
-유 바이 티켓 나우, 고 나우-
응? 그런 게 어딨어? 차표를 팔던 남자는 나와 자스민을 떠밀며 차에 강제로 태우려고 까지 했다.
-익스큐즈미, 왓?-
자스민은 너무도 놀라 입까지 떡 벌렸다.
-노, 유 바이 티켓 나우, 고 나우-
12:30 티켓으로 바꾸려고 하자, 남자는 더 강력하게 우리를 차에 태우려고 밀었다. ' 유 바이 티켓 나우 고 나우' 무슨 유명한 광고 회사가 만든 전 국민운동 슬로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남자는 너무나도 당당했다.
한 커플이 그걸 보고 서 있다가 우리에게 돈을 지불하고 자신들이 11시 티켓을 사겠다고 나섰다. 두 사람에게 11시 티켓을 주고 받은 돈으로 다시 12시 반 티켓을 사려고 창구 앞에 섰다. 남자와의 실랑이에 지친 자스민이 나에게 차표 값을 내밀었다. 티켓 창고 앞에 서서 다음 티켓을 사겠다니, 남자가 말했다.
-노, 유 컴백 애프터 10 오어 15, 낫 나우-
왜지? 왜 지금은 다음 티켓을 팔지 않는 거지?
나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매달렸다.
-그냥 딱 두장만, 지금 살게요-
미소도 함께 날렸다.
-애프터 10!!오어 15!!-
남자가 핏대를 세우며 소리 질렀다. 자스민과 나는 식당으로 돌아갔다. 여기서는 더 이상 무엇을 할 기분도, 그럴 기운도없었다.
식당 앞에 붙여둔 메뉴판에 한 메뉴가 눈에 띄었다.
-모닝글로리, 난 이걸로 할래-
자스민도 같은 메뉴를 보고 있었나 보다.
모닝글로리, 동남아에 오면 항상 잊지 않고 며칠에 한 번씩은 먹는다. 베트남, 필리핀, 태국, 라오스 가는 곳마다 쉽게 주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고는 역시 베트남이다. 어느 나라도 베트남만큼 맛있게 요리하진 못한다. '라우 무이 싸우 또 이' 베트남에서는 그렇게 불렀던 것 같다. 음식을 주문하자 모녀로 보이는 두 여자가 부엌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가 밥통으로 추정되는 바구니를 엎어둔 솥 그릇에서 밥을 펐다. 또 펐다. 많이 펐다. 한 무더기로 펐다.
-설마 저걸 다 우리 주려는 건 아니겠지?-
맞았다. 우리는 접시에 꾹꾹 눌러 담긴 고봉밥을 받았다. 그리고 모닝글로리 접시도 받았다. 모녀가 손이 아주 큰 모양이다. 켜켜이 쌓인 그 고봉밥을, 그런대도 나는 다 비웠다. 작은 고추를 썰어 띄운 간장 양념을 밥에다 뿌려가며 입이 매울때마다 모닝글로리로 매운맛을 삭혀가며 배가 부르도록 싹싹 다 긁어먹었다.
나는 오늘 엄청난 이동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 날 저녁까지 제대로 된 식사는 이게 마지막 일지도 모른다. 단단히 배를 채우고 또 채운다. 동면을 준비하는 곰처럼.
12시에 우리는 터미널로 돌아갔다. 남자들이 모여서 신나게 공놀이를 하며 놀고 있다. 아무도 차표를 팔지 않는다. 이곳의 여자들은 바쁘다. 음식을 만들고, 아기를 돌보고, 가축을 먹이고, 청소하고 빨래한다. 그리고 남자들은 외국인에게 소리를 지르고 공놀이를 한다. 차표를 팔던 남자가 불룩 나온 배를 훌떡 까고는 슬슬 문지르더니 우리 쪽으로 걸어와 거침없이 가래침을 뱉기 시작했다.
여행지는 언제 여행자가 떠나는지 잘 안다. 자기 허락 없이 떠나면 이렇게 정을 똑 떼게 만든다. 떠날 때는 매몰차게 가라는 배려인지도 모른다. 떠나는 마음이 도착한 마음과 같지 않다고 아쉬워하거나 슬퍼할 필요는 없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기억이 미화되어 나는 이 모든 것을 망각하고, 언젠가 다시 돌아오게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