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농 키아우에서 탄, 이 12인승 승합차엔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중간중간 가정집 앞이나 가게 앞에 정차하며 사람들을 태우는데 그 사람들이 탈까 말까 망설이기까지 하는 바람에 시간은 점점 지체되고 있다. 오늘 저녁 6시, 치앙마이 행 버스를 탈 계획인데 그들 때문에 버스를 놓친다면 또 하루를 루앙프라방에서 보내게 될 테고, 예정에 없던 지출이 늘어나는 것이 전혀 달갑지 않았다. 덥고 목까지 말라 빨리 루앙프라방에 도착했으면 좋겠는데 현지인들이 차를 세우고 흥정하는 탓에 자꾸만 지체된다.
웬 여행사 앞에차를 세우니, 말끔한 와이셔츠를 입은 내 아버지 또래의 남자가 이것저것 운전기사에게 묻다가 또 딴청을 부린다. 운전기사가 오히려 애걸복걸하는 추세다. 한참을 버티더니 남자의 아들로 추정되는 이가 음료수 한잔을 건네자 그제야 음료수를 들고 승합차에 올랐다. 그러곤 내 뒷자리에 앉자마자, 온 몸이 끈끈해 죽겠는데 내 팔을 쿡쿡 찌르며 루앙프라방에 가느냐고 묻는다.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고 고개를 돌리려는데 라오스 어로 대화를 시작한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미 짜증이 나 있는 상황인데다, 이 사람 때문에 많이 지체되어 말도 섞기 싫은데 자기 좋자고 자기 말로 떠든다. 그냥 자는 척 상모 돌리기를 시전했다. 그러자 그도 더 이상 내게 말을 붙이지 않았다.
그렇게 꽤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내려주고 반복하다가 4시간 후, 루앙프라방에 도착했다.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드디어 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아끼고 아껴 두 번 접어 깊숙이 보관해오던 그 마지막 50달러를 환전했다.
40만 낍. 차비로는 넉넉했지만, 국경을 넘어야 하므로 혹시나 더 돈이 필요할지 몰라 끝끝내 쓰지 않기로 맘먹고 아껴두었던 것이다. 환전 하자마자 터미널에서 치앙마이행 버스 티켓을 사려고 보니, 아니 이게 웬걸, 여긴 훼이싸이행 버스 티켓만 팔지 뭔가! 치앙마이 행 버스를 타려면 다른 터미널로 갔어야 했다. 매표소 남자는 내가 치앙마이 행 버스에 대해 묻자 어딘가로 황급히 전화를 걸더니 수화기를 나에게 넘겼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듣기 좋은 정확한 발음의 영어였다. 치앙마이로 갈 계획이라고 하자, 수화기 너머로 중저음 목소리의 남자가 훼이싸이까지 가서 치앙마이행 버스로 갈아타라고 알려주었다.
-내일 아침, 7시에 훼이싸이 도착이에요.-
그의 말을 듣고 나는 아! 그러지 뭐, 하고는 훼이싸이행 버스 티켓을 냉큼 사고 말았다. 각종 버스 출발 시간이 촤르르르 그려진 커다란 시간표가 걸린 거대한 터미널을 상상하고 만 것이다. 며칠 전 농 키아우행 미니밴을 타며 거쳤던 터미널에서 확인했던 치앙마이행 버스의 가격과 비교를 해도 너무나 저렴했다. 이쯤 되면 예상했던 바를 걱정하거나 의심할 법도 한데, 반 값도 안 되는 금액에 싸다며 아무 생각 없이 좋다고 신이 나, 당장 도처에 널린 구멍가게에서 물과 좋아하는 태국산 에너지 드링크, 귤, 과자 등등 음식을 사재기했다. 훼이싸이행 버스 출발 시간은 아직 한 시간 정도 여유도 있으니, 잘됐다 신난다 하고는 그동안 주린 수분을 맘껏 보충했다. 훼이싸이 터미널에서 갈아탈 치앙마이 행 차비를 어림잡아도 넉넉하니 문제 될 것도 없어 보였다.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화장실을 한 번 다녀오고, 내가 탈 차는 어떤 것인지 둘러보았다. 이상하게 외국인이 별로 없다. 왜지? 여행자는 다 어디로 간 거지? 툭툭을 타고 이동하라는 손짓에 '훼이싸이? 훼이싸이?' 하고 묻고 순순히 툭툭에 올랐다. 유일한 외국인 남자와 인사를 나누곤 이야기를 텄다.
프랑스 청년 가브리엘. 훼이싸이에는 '기븐 익스피리언스'를 체험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돈이 넉넉했으면 나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짚라인과 트레킹을 거쳐 나무집 1일 숙박까지 해보고 싶었는데, 지금은 태국 ATM기에서 돈을 뽑아 오지 않으면 그럴 돈이 없다. 가브리엘과 대화를 나누다가 알게 된 것은 우리가 탈 버스가 가장 저렴한 버스라는 것이다. 뭐 버스가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미니밴보다 버스가 더 좋은 거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는 와중에 버스가 도착했다. 아주 오래된 그리고 낯이 익은 한국어 이름을 달고 있다.
'땡땡 전세 관광'
여러 차례의 수학여행과 엠티, 농활 등등, 이미 저 전세관광 버스는 나에게 전혀 낯설지 않은 모습이 아니던가?
'서너 시간에 한 번씩 휴게소 들렀다 가겠지? 이 많은 사람들이 14시간 동안 화장실을 안 갈 리가 없잖아'
나의 생각과 많은 것이 달랐던 버스였다. 가브리엘을 제외한 그 어떤 사람도 영어를 하지 못했으며, 왜인지 몇 시간 뒤에는 에어컨에선 뜨거운 바람이 쏟아져 나왔다. 오늘 하루도 거의 이동하며 다 보냈는데, 치앙마이까지 쉬지 않고 이동한다면 꼬박 하루가 넘는 정말 긴 이동이 될 테니, 루앙프라방에서 하루 쉬다가 다음 날 버스를 타는 게 어떻겠냐는 자스민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마지막 샤워 시간이 언제였는지 매시간 손가락을 꼽아가며 내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나에게 다시 한 번 새삼스레 놀라고 있다. 게다가 몇 시간 후, 나는 고작 서너 개 까먹은 작은 귤 때문에 치욕스러운 순간까지 맞이해야만 했다.
버스는 가다가 길가에 자주 서는데, 사람들이 내리고 또 탈 뿐이고 왜인지 매번 정차할 때마다 차가운 물로 바퀴의 열을 식히고 있다. 남자들은 풀숲으로 들어갔다 하나 둘 돌아오기도 했다. 슬슬 불안해졌다. 뭐지, 나도 휴지 들고 풀숲으로 가야 하나, 그 이후로 나는 귤도 물도 먹을 수가 없었다. 갈증이 나는데 오줌이 마려웠다. 정말 싫다. 둘 중에 하나의 욕구에만 충실할 순 없는 것인가!
몇 차례 길에서 버스를 세우고 사람들이 내리고 타는 게 반복되었으나 터미널이나 휴게소처럼 보이는 곳은 없었다. 두 가지 욕구를 잊으려 억지로 잠을 청했으나 꼬불꼬불한 산골짜기 커브길마다 쿵 하고 큰 소리가 나도록 유리창에 이마를 자주 부딪히는 바람에 숙면을 취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인고의 시간을 정확히 6시간 보낸 후, 우리는 터미널과 굉장히 흡사한 곳에 정차했다. 나는 밖으로 뛰어 내려갔다.
-아이 륄리 니드 투 고 투 토일렛!-
바퀴에 열심히 물을 뿌리던 남자들에게 말했다. 엄청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남자들은 고개를 젓고 손을 저었다. 금세 떠나기라도 할 듯이 자꾸 차에 타라는 듯 손짓을 해서 다시 차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창밖에는 분명히 화장실이라고 파란 글씨로 꽤 정성 들여 쓴 표지판이 보였다. 나는 다시 뛰어내렸다.
-헤이 리슨! 아이 뤼~~~~~~얼리 니드 투 고 투 토일렛!-
가브리엘이 어느 새 따라 내려 이 상황을 구경하며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나는 정말 그를 한대 걷어 차 주고 싶었다. 그는 화장실이 급하면 다른 남자들처럼 풀 숲으로 스윽 사라졌다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
두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또 라오스 말로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며 손가락으로 버스를 가리켰다. 난 더 이상 양보할 수 없었다.
-룩.... 끄응!-
나는 허리를 숙여 배를 감싸 쥐는 시늉을 했다. 배가 아프지도, 큰 볼일 볼 생각이 없는데도 어쩔 수 없다. 그만한 행동보다 더 나은 세계 공용의 화장실 싸인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러자 남자들은 알았다는 듯 아하 오케이,하며 피식 웃었다. 나는 손가락을 쫘악 펼쳐 다섯을 보이며 5분만 기다려 달라 말하고 화장실로 뛰었다. 그 순간 버스에서 또 다른 라오스 여인 하나가 화장실로 뛰어오는 게 아닌가!
두 개의 화장실에서 우리는 드디어 엄청난 중압감에서 벗어남을 느끼고 또 서로가 그러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이제 남은 여정은 꽤 핑크빛 까지는 아니더라도, 누우런 황금빛이나 축축한 잿빛의 기운은 아니겠지 하는 안도감에 도취되려는 순간, 질척한 바닥에 미끄러져 변기통에 발을 빠트렸다.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역시 수도꼭지 따위는 없다. 플라스틱 통에 담긴 물은 그냥 봐도 더럽다. 잿빛이다. 통은 하얀데 물은 잿빛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발에 물을 뿌렸다. 이 물은 그런 용도가 절대 아니구나, 밖으로 달려 나가 타이어에 물을 뿌리던 남자들에게 물을 뿌리던 호스를 가리켰다.
또다. 그들은 역시나 고개를 흔들고 손을 휘저으며 내가 타고 온 버스를 가리킨다. 온몸에 힘이 다 빠진다. 참 안될 것도 안 되는 것도 많은 나라다. 내 옆자리 순박한 라오스 청년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자리에 앉았다. 정말 씻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오늘 아침 보트로 한 시간, 승합차로 4 시간, 그리고 이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 버스에서 6시간째 달렸다. 그리고 아직도 8시간이 남았다. 오랜 시간 나는 강을 넘었고 지금은 다시 산을 넘어 돌아가려 하고 있다.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한 처사였다.